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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례학파의 종교 이론

by 방가房家 2023. 5. 8.

Robert Segal, "The Myth-Ritualist Theory of Religion," Journal of the Scientific Study of Religion 19-2 (1980): 173-185. 이 글을 토대로 하고 다른 글을 약간 보충하여 작성하였다.

 

 

신화의례학파의 종교 이론
신화의례 학파(Myth-and-Ritual School)의 다른 이름은 의례중심 학파(Ritual-dominant School)이다. 이들을 특정한 사람들이 모인 구체적인 학파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신화의 이해에 있어서 의례와의 상관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공유한 사람들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걸의 글은 신화의례학파 학자들의 주장을 요약 소개한 부분과, 이후 학자들의 신화와 의례에 대한 이론들과 비교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글에서는 신화의례학파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Jane Harrison>
1. 누가 신화의례학파인가?
신화 안에 숨어있는 의례를 찾아내 보여주는 로버트슨 스미스와 프레이저의 연구들로부터 지적인 자극을 받고 뒤르켐 사회학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신화 연구에서 의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나타났다. 특히 두 분야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성서학과 고대 근동 연구에서 후크(S. H. Hooke, 1874-1968)와 개스터(Theodore Gaster)의 저작에서이다. 그들에게 신화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고대 히브리 자료들을 현대의 관심에 더 적합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접근이 가장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분야는 히브리 시편 연구이다. 이 시들은 왕의 대관, 왕가의 의례 행위, 애도 등 공적 예식들과의 긴밀한 연관성 아래서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고전학 분야의 캠브리지 학파이다. 여기엔 (뒤르켐 영향을 많이 받은) 콘퍼드, 쿡, 길버트 머레이, 그리고 제인 해리슨이 포함된다.1) 이 글에서는 후크와 해리슨의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 신화의례학파는 타일러식의 주지주의적 설명, 즉 신화를 사유의 측면에서만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고 삶의 현실과의 관련성에 더욱 주목하는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고대 근동 사람들에 대해 후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들은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물음들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의 긴박한 문제들에 몰두했다. 그들에게 주요 문제는 생계의 수단을 확실히 하는 것, 해와 달이 제대로 운행하게 하는 것, 나일 강이 제 때 범람하도록 하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의 초기 거주자들은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관습적 행위 체계를 발전시켰다.”2)
 
3. 신화와 의례
신화의례학파는 신화와 제의 간에 모종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상정하는데, 그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씩 입장이 다르다. 로버트슨 스미스에 있어서 신화는 의례에 대한 설명인데 의례의 주술적 의미가 잊혀진 후에 발생한다. 해리슨과 후크에 있어서 신화는 의례의 대본이며 의례와 더불어 생겨난다. 해리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화는 실행된 제의, 행해진 것에 상응하는 발화(spoken correlative)이다.”3) “신화는 레고메논(legomonon, 말해진 것)이며 드로메논(dromenon, 행해진 것)에 대조되거나 관계된다.”4)
후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의례와 함께, 그리고 의례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이야기의 낭독이며, 이 이야기의 개요가 의례에서 행해진다. 이것이 신화이다. 신화의 반복은 의례의 수행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5)
 
신화와 의례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에 대해서 후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의례와 함께 의례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항상 발견되는 것이 의례에서 행해지는 아웃라인이 되는 이야기의 암송이다. 이것이 신화이고, 그것의 반복은 의례의 수행과 동일한 힘을 지닌다. 처음에는 말해진 것과 행해진 것은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나뉘어졌고 매우 다양한 문학적, 예술적, 종교적 형태들을 낳았다.”6) 해리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의례를 시작하게 했던 감정이 사라져서 의례가 전통으로서만 신성시되기는 하지만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 존재 이유는 신화 안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원인론적인 것으로 간주된다.”7) 후크가 보기에 이러한 신화의 원인론적, 설명적 기능은 신화가 의례와 결합해 있던, 그래서 주술적 힘을 가지고 있던 원래적 상태를 상실한 부차적인 기능이다. 해리슨 역시 설명적 기능을 퇴화된 것, ‘믿음의 쇠퇴’의 산물로 본다. (시걸은 신화와 의례가 결합되어 있는 원래의 상태를 주술적인 것으로 이해하는데, 이것은 이들의 논의를 프레이저 식의 논의로 한정시키는 좋지 않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4. 종교 이론의 차원에서 볼 때 신화의례학파의 논의는 종교에서 신화와 의례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 그리고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는 일반적인 이해를 지양하고 그 둘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 공헌이 있다. (시걸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 논의에 대한 공헌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프레이저에만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이들이 제시한 주제는 이후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논의된다. 뒤르켐은 신화와 의례의 상호관계성을 모두 인정하는 입장이었는데, 굳이 더 중요한 것을 꼽자면 의례가 종교 경험을 형성하는 주된 원인으로 연구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신화가 정당화를 통해 개인과 사회에 심리적 위안의 역할을 했음을 밝혔다. 그에게 신화는 (다른 사회 제도들과 함께) 의례를 설명하고 또 정당화하는 것으로 중요시되었다. 래드클리프-브라운은 뒤르켐을 좇아 의례를 종교의 핵심으로 보았기 때문에 ‘영혼에 대한 믿음은 제의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이야기하였다. 메리 더글러스는 의례의 상징적 의미를,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의 구조적 의미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타일러의 주지주의적 입장과 어느 정도 친연성이 있다.
 
5. 성스러움의 경험이 언어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신화이고 행위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의례라는 것은 이제 종교학에서 하나의 공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신화의례학파의 논의는 신화와 의례를 동질적인 경험의 산물로 보는 이러한 공리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된다.
신화의례학파의 논의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물론 신화와 의례의 관계인데, 신화에 있어서 의례의 중요성을 얼마나 경직되게 혹은 유연하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예를 들어 의례의 우선성을 이야기하는 역사적 우선성이라는 기원론으로 놓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한다면 이들 논의의 생산성이 차단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클럭혼은 이러한 경직성을 풀고 상호의존성을 장고하는 의미있는 수정을 제안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후크와 그의 동료들이 근동에서 신화와 의례의 관계 연구에서 매우 눈부신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리노프스키와 래드클리프-브라운이 보여준 상호의존성 체계의 오직 한쪽 면만 강조한 것은 아쉽다. 신화는 항상 신화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후크가 지적한 것은 많은 문화에서 관찰된 사실들과 매우 일치되는 견해였다... 후크는 “작용하는 무언가로서의 신화의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 올바르게 언급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신화는) 의례를 떠나서는 죽는다”라고 언급했을 때, 그는 신화가 의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앞에서 보인 것처럼 입증된 자료들에 위배된다.
종합하면, 사실들에 입각할 때 의례가 신화의 ‘원인’이라든지 그 반대라는 식의 보편적 일반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들의 관계는 복합적인 상호의존성이며, 이는 다른 문화들 안에서 다르게 구조화되고 같은 문화 안에서도 시기에 따라 다르게 구조화된다.(55-56)


1) William G. Doty, Mythography: The Study of Myths and Rituals (Tuscaloosa: The University of Alabama Press, 1986), 74.
2) Samuel H. Hooke (ed.), Myth and Ritual (London: Oxford University, 1933), 2-3.
3) Jane E. Harrison, Themis, 2nd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1927), 328.
4) Jane E. Harrison, The Prolegomena to the Study of Greek Religion, 3rd ed. (New York: World, 1922), 378.
5) Samuel H. Hooke (ed.), The Labyrinth (London: SPCK, 1935), v.
6) Samuel H. Hooke, The Labyrinth, v-vi.
7) Jane E. Harrison, Themi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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