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스케줄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말저녁 드라마를 보는 일은 많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온가족을 겨냥한 시간대인 토일8-9시 드라마를 일부러 챙겨보는 일은 별로 없다. 그 시간대에 <소문난 칠공주>라는 빌어먹을 드라마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같은 시간 MBC에서 <누나>라는 드라마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거기서 주연을 한다는 김성수라는 연기자가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한다. (<풀하우스>나 <변호사>를 보지 않아서 이 연기자를 모른다.)
이 사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생활을 종교라고 부른다. 그것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님이 인터뷰 전반에서 느껴진다.
이 사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생활을 종교라고 부른다. 그것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님이 인터뷰 전반에서 느껴진다.
제 촬영이 아침 7시 시작이면, 저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6시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거든요. 메이크업 딱 하고 7시에 현장에 가요... 지금까지 3년 동안, 아침에 눈 뜨고 바로 현장에 간 적이 없어요... 그전에 준비를 다 해야해요. 내가 이 일을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이것에 대한 뭐랄까, 소중함이··· 뭐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각별하고 그래요. 장면 하나하나가 되게 소중하고. 어떤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느 순간 연기라는 일이 나한테 종교가 되어버린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기도 하는 것처럼, 물론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여유가 생기겠지만 지금은 뭐랄까 신성하게 접근하고 싶은··· 그런 게 있어요. (51-52)아침 10시 촬영이면 보통 7시,8시쯤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 5시,6시에 일어나요. 일어나서 운동하고, 그래야 붓기 빼고 메이크업하고 머리하고 가니까. 물론 화면에 잘 나오고 싶어서도 있지만, 얼굴이 부으면 표정 연기가 어색하거든요. 이게 밀접하게 신경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오종록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 “고기 많이 먹지 마라. 얼굴에 기름지면 얼굴을 컨트롤하기가 힘들어.” 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군더더기가 많으면 당연히 미세한 느낌을 못 느끼겠죠. “야 이놈아, 연기자는 수도자야. 투명한 곳에 그림을 그려야 되기 때문에 항상 깨끗해야 돼. 항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야 돼.” 그러려면 할 게 되게 많아요. 얼굴이 맑아야 되고. 저희 누나가 수녀거든요. 그 아주 편안한 얼굴로 씨익 웃는 섬세한 느낌들이 정말 좋단 말이에요. 삶이 복잡하지 않으니깐. 누나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열등감이 있으면 안 될 거 같다.
(“로망, 일상을 만나다,” <<드라마틱>>5호(2006.9.11), 52-55.)
일차적으로 그의 생활이 승려나 수사처럼 수련 또는 훈육(discipline)의 형태를 띤다는 의미에서 종교라고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더 많은 게 느껴진다. 연기가 그의 삶의 의미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그의 생활의 많은 행위들이 그 의미를 구현하는데 매우 높은 집중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종교랄지 신성한 접근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진한 울림을 얻는다.
더구나 표정을 살리기 위해서 얼굴의 붓기를 뺀다는 미세한 차원까지의 집중, 표정을 그려내는 화폭으로서 얼굴을 준비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얼굴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관리를 넘어서 일상의 번민을 없애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심성론으로 나아가는 뒷부분의 이야기에서, 그의 수양의 경지에 경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인터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틱>은 좋은 인터뷰를 이끌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 왔으며, 그게 양동근의 경우처럼 탐색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윤여정이나 이번의 김성수처럼 참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양측의 기(氣)의 주고받음이 담겨져 보이는 작품들을 말이다. 인터뷰 말미에서 시간이 새벽 2시가 다 되었고 다음날 5시에 일어나야할 김성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니까 김성수는 괜찮다고 하며 자신도 정말 즐거웠다고 인사를 한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 말이 예의상 하는 발화가 아닌, 진정이 어린 것이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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