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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살법이 아닌 활법

by 방가房家 2023. 4. 25.

글과 그림으로 된 텍스트에서 글만 옮기는 것은 잘못된 인용방식이다. 장비의 문제도 있고, 정성도 부족한 탓이다. 하여튼 <바람의 파이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투기(鬪技)의 역사는 고대 인도의 요가에서 비롯되었다. 이 요가에서 체계화되기 시작한 권술은 불교를 타고 동방 여러나라로 전파, 중국에 들어가서는 소림권법이 되고 태국에서는 킥복싱이 되었으며, 일본에 가서는 유도나 가라테, 그리고 한국에서는 태껸이 된 것이다.

불교가 권술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절 입구 산문같은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왕의 모습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유난히 두드러진 복근과 부릅뜬 눈!
공격 태세로 치켜올리고 있는 왼쪽 정권과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는 오른쪽 수도!
천수관음의 그 수많은 손도 마찬가지. 천 개의 손이 그리는 그 자비로운 모양새가 격투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공방(攻防)의 폼이라는 점은 실로 흥미롭다.

석가모니 자신도 뛰어난 파이터였다. 후에 석가가 된 <고다마 싯다르타> 왕자는 <아스다라> 공주에게 장가가기 위해 다른 여러 구혼자들과 함께 갖가지 경기를 치르는데 달리기, 높이뛰기, 궁술, 마술 등 개인 경기는 물론 검술과 권술의 격투기로도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챔피언이 된다. 나중 그의 제자가 된 <오백나한>도 무술로는 석가를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이렇게 요가로부터 비롯된 권법이 불교의 발상과 함께 체계화되고 있을 즈음. 중국에서도 나름의 격투술이 생겨나고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명의 화타는 <오금(五禽)의 술(術)>이란 일종의 건강체조를 만들어 내는데... 이 <오금의 술>에 인도에서 온 수행승 <달마>가 호흡법과 요가에 바탕을 둔 십팔나한수(十八羅漢手)를 더하니 이게 바로 <소림권법>의 원류라.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길찾기, 2003) 2권, 17-19.)

문중에서 학맥이나 도맥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이야기는 신화화된 역사이다.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찾아보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긴 하지만, 신화의 의미를 아는 것에 필수적인 일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얼마나 훌륭한 파이터인지 알아보는 일은 나중으로 미룬다.
최배달의 무술 연마의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는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그가 터득해 나가는 무술 이론은 동아시아 종교 전통들의 교의들과 연관지어진다. 그래서 그의 무술 이론에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더불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무술 이론가는 노자와 장자이다. 이러한 언급들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몸과 마음의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마음의 수련과 몸의 수련은 동일한 것이었으며, 그래서 수련의 흐름은 곧 종교사였다.

종교는 평화를 지향하며 폭력과 종교가 연계되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이라는 상식적인 전제가 있다. 이것은 주로 종교인들이 조장하는 편견이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상식을 반박할 예들은 너무 많으니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상식 덕분에, 종교의 뿌리에는 원초적인 폭력이 존재한다는 지라르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들리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종교의 뿌리에 폭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실증적 논의의 수준을 벗어나는 기원론의 문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교는 언제나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변일진대, 종교가 폭력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점이다. (최근 종교학에서 양자의 관계가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브루스 링컨의 <<거룩한 테러>>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최배달의 무도 추구 과정을 따라가면서, “살법(殺法)이 아닌 활법(活法)”을 터득하려는 그의 평생의 노력을 숙연히 지켜보다 보면, 종교와 폭력이라는 ‘논의’ 자체가 무색해진다는 느낌마저 든다. 자신을 강하게 하는 과정은 도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언어의 경계는 옹색하다. 서구적인 논리에서 사고하던 내가 머쓱해진다. 그래서 피튀기는 싸움의 한복판에 “약함으로써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경구가 섬광처럼 꽂힐 때에도, 부처님이 최강의 파이터라고 할 때도, 나는 어색함을 느낄 수 없었다.

하나 부가하고 싶은 것은, 최배달이 세계 각지를 떠돌며 무도를 연마할 때, 그가 동양 권법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무술에 대한 비교 작업을 행했다는 점이다. 기(氣)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동양권의 무술을 출발점으로 해서 미국, 멕시코, 프랑스, 브라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주먹세계와 다양한 무술 전통들에 대한 비교 고찰을 일관성 있는 언어로 탐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하다. 비교 이론을 연구하는데 공부 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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