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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

by 방가房家 2023. 4. 25.

나는 웬디 도니거의 <<숨은 거미>>(implied spider)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왜 신화에 보편성이 존재하는지를 이야기하는 3장 도입부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인 ‘숨은 거미’가 그 보편성을 가리키는 은유인데, 본격적으로 은유를 풀어놓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듯 자기가 생각하는 보편성의 이유를 부드럽게 써놓았다.
어려운 개념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저명한 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아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모를 힘을 느꼈다. 도니거가 공들여 쓴 문장들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근거는 없다.) 보편성이라는 주제는 요즘 학자로서 옹호하기가 힘들고 따라서 기피하는 주제인데, 도니거는 평이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여기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같다’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게끔 서술되었다. 문제는 이 ‘같음’이 무엇에 의해 가능하냐는 것인데, 이 대목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인간 신경구조의 동일성, 융과 엘리아데가 말하는 원형(archetype) 등 요즘 시대에 지탱하기 어려운 무리한 보편 개념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도니거의 키워드는 ‘공유한다’(share)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같은 삶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 그것이 신화의 보편성의 기반이 된다. 이것이 쉬워 보이지만 매우 강력한, 그리고 도니거 전체 작업의 기반이 되는 주장이다.

그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같다”거나 “비슷하다”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는 많이 되풀이되어 이야기되는 한 신화가 다양하게 이야기되는 것들을 흔히 같은 것이라고 느끼며, 그것은 최소한 우리가 신화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누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본질적인 부분이 없다면 최소한 신화의 매력 일부를 잃어버릴 것이며 대개는 신화의 의미가 상실될 것이다. 다른 두 문화의 두 신화가 “같다”고 할 때, 우리는 거기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어떤 플롯이 있어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인간 조건을 드러내며 교차문화적 혹은 초문화적이라고 부르는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모들과 떨어질 것이며, 그분들이 돌아가실 것이며, 그리고 우리도 죽을 거라고, 살면서 깨우치는 것들을 우리는 공유한다. 섹스, 음식, 노래부르기, 춤추기, 일출, 일몰, 달빛, 강아지, 바닷가 가기 등의 기쁨을 우리는 공유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갖는다. 이러한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언가 공통된 것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특정한 기호와 성향을 공유한다. 그래서 동양에서 커피와 홍차를 들여왔을 때 어디서든 인기를 끌었던 것이고, 동양에서 어떤 신화들을 들여왔을 때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53-54)

이런 기반에서 도니거는 거대 보편이론이라고 공격받는 엘리아데, 레비-스트로스, 융의 비교 작업을 계승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들 대가들과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다른 학자 조셉 캠벨에 대한 도니거의 태도가 매우 가혹하다. “짜증나”에 가까운 반응이다. 도니거를 캠벨과 비슷한 계열의 학자로 놓았다가는 많이 혼나겠다.
20세기 위대한 비교연구자들의 덜떨어진 제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함정들에 많이 빠져서 비교에 오명을 씌웠다. 내가 조셉 캠밸한테 열받은 이유는, 그가 비교를 엉터리로 했고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올바른 비교가 가능하다고 설득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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