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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이미지

파란 옥수수

by 방가房家 2023. 4. 11.

나는 인디안밥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북미원주민들에 대한 이미지를 심는데 큰 역할을 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팔리고 있는 제품이다. 켈로그나 포스트의 시리얼 제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전에는, 인디언밥은 우유에 타먹을 수 있는 과자로 조리퐁과 함께 이 방면의 선구자 역할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과자에 우유를 부으면 대번에 기름이 떠오르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그런 것도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우유를 부어 먹는 과자가 있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었다. 지금의 과자 포장에는 우유를 부어 즐기라는 안내문은 사라졌다.

며칠 전 한국 슈퍼에서 인디안밥을 샀다. 디자인이 새로워졌다. 이전 도안의 노회한 인디안 대신에 농심의 마스코트인 너구리(너구리와 관련된 북미원주민 신화는 들어본 적이 없다)가 깜찍하게 아파치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제품도 이런 디자인으로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번에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인디안밥이 옥수수 스낵이라는 점이었다. “인디안들의 밥은 옥수수이다”라는 명제, 상당히 정확하다. 물론 모든 북미원주민들에 해당한다기보다는 남서부의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들에 더 적합한 서술이겠지만, 많은 북미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고 그것이 그들 종교 생활에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밥이라는 말, 이전에는 “개밥”에서처럼 다소 경멸적인 뉘앙스마저 느껴진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밥이야말로 우리 삶의 본체를 제공하는 성스러운 물질로 한국인의 삶에서 자리매김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옥수수는 인디안들의 밥이다”라는 명제는 밥이 우리 삶에서 가지는 종교적 위치를 인지하면서 옥수수가 북미인디언들의 삶의 본체인 성스러운 음식임을 암시하는 오묘한 “번역”이다.
내가 아는 북미원주민으로는, 애리조나 북동부와 뉴멕시코 북서부에 걸쳐 살아가는 호피족이 있다. 그들은 건조한 고원지대에서 관개시설도 없이 옥수수를 재배한다. 호피족들은 24가지 종류의 옥수수들을 구분한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옥수수들, 그 중에서 흰, 노란, 붉은, 그리고 파란 옥수수는 네 방위를 상징하며 그들의 상징 세계를 구성한다. 그들이 주로 재배하는 옥수수는 블루 콘, 파란 옥수수이다. 그들 신화에 따르면, 이 세계를 창조한 분(Spider Grandmother)이 여러 옥수수들을 놓고 각 부족 사람들로 하여금 골라가게 했다. 호피족 사람들은 굼떠서, 남들이 골라가고 남아있는 파란 옥수수를 갖게 되었는데, 이 파란 옥수수는 호피족 사람들의 고되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히 유지되는 생활을 상징한다. 농경 문화의 종교 생활에서 흔히 그러하듯, 호피족의 삶의 주기는 옥수수와 함께 구성된다. (참고: The Hopi Today) 아이가 태어나면 옥수수를 아이 입에 물리며 이것이 네가 평생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리며 자연에 인사를 드리고, 옥수수 농사와 추수에 맞추어 의례들이 준비된다.
슈퍼에서 파란 옥수수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파란 옥수수는 다소 거칠어 직접 먹기보다는 다른 식품으로 가공해서 먹는다고 한다. 호피족 사람들은 파란 옥수수를 갈아서 물에 갠 뒤 석판에 구워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낸다. 이 식품을 피키(piiki)라고 부른다. 슈퍼에서 볼 수 있는 식품으로는 파란 옥수수로 만든 감자칩이 있다. 파란 옥수수 특유의 거친 맛이 느껴지는, 담백하고도 구수한 제품으로, 내가 애용하는 과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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