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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페티시즘(fetishism)

by 방가房家 2023. 6. 1.

페티시즘(fetishism), 혹은 주물숭배는 종교 현상에서 유래한 말이되 종교 현상을 기술하는 용어는 못 된다. '주물숭배'라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특정 사물에 대한 경배,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해에서 비롯한 서술이다. 묵주 기도를 하는 천주교인이나, 탑돌이를 하는 불교인들도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페티시즘은 1700년대 유럽인이 아프리카인들의 종교 생활을 서술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페티시즘이 아프리카인들의 종교를 서술하는 용어가 아니라 “종교 없음”을 서술하기 위한 용어였다는 것이다.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 p.13.) 유럽인 여행자 로이어(Godefrey Loyer)의 1714년의 기록에 보면, “주물에 대한 경배는 의식(cult)도, 종교도 아니며 어떤 이성적인 면도 없다. 아무도 종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유럽인과의 타자와 만남에서 흔히 나타나는 “종교 없음”의 서술은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 금수(禽獸)라는 의미을 갖는다(따라서 마음대로 정복할 수 있고). 하찮은 물건이나 쪼물쪼물 모시는 그들은 종교가 없고 사람도 아니라는 맥락에서 페티시즘이라는 용어가 출현한 것이다.
나중에 “좋아, 아프리카에도 종교가 있다고 치자”라고 유럽인들의 자세가 바뀐 후에, 페티시즘은 아프리카인들이 경제적 가치를 알지 못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걔네들은 어떤 물건이 소중한지를 모르고, 하찮은 물건이나 숭배하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의 재화를 강탈해오는 것은 정당화되었다.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 p.15.)

주물 숭배라는 말, 세상에는 별별 종교가 다 있다고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장광설 속에 어김없이 포함되는 용어이다. 선교사들의 남의 종교 서술에 늘상 나타나는 단어이기도 하다. 민간 종교에 대한 학문적 서술 속에서도 아직 간간이 나타난다. 그러나, 종교학사에서는 구경할 수 있어도, 지금의 종교학에서 주물숭배는 종교에 대한 적절한 서술 개념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다.
페티시즘이 종교학의 서술 개념이 아니라고 해서, 그 말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맥락을 떠난 분야에서 언어로서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나 맑스가 이 말을 적절하게 구사하였고, 서양의 산업에서 계속 유행하면서 지금 많이 쓰이는 말이 되었다. 특히 맑스가 자본주의의 속성을 지적하기 위해 동원한 이 말은 물신숭배라고 적절히 번역되어 잘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가 요즘 많이 활용되고 있는 다른 분야는 난감하게도 포르노 산업에서이다. 이 용법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쉽지 않다. 나의 다년간의 음란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페티시/페티시즘은 다리와 같은 여성의 특정 부위가 물화(物化)되어 집착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리키기거나, 가죽 용품을 비롯한 다양한 물건들이 여성의 육체와 결합되어 성적인 쾌감을 증가시키는 장르(?)를 지칭하는 것 같다. 심리학적 용법에서 비롯된 듯한데, 이게 일본인들의 성적 취향과 결합하면서 팬티나 팬티스타킹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쪽으로도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검색해보니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Fetishism is the use of an inanimate object or a specific part of the body for physical or mental sexual stim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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