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치나(Kachina)는 북미 원주민 주니족, 호피족에서 영적인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호피족의 예를 통해서 내가 이해한 것을 대강 정리해본다.
카치나는 호피족의 생활을 돌보아주는 영적인 존재들인데, 기본적으로 카치나를 이루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의 영이다. 조상들 중 훌륭한 분들은 하늘로 올라가서는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리하여 조상들의 기운은 호피족의 신성한 산인 샌프란시스코 봉(San Francisco Peaks)에 모여들어 거기서 구름을 형성한다. (샌프란시스코 봉은 플래그스탭 바로 북쪽에 위치한, 애리조나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Snowbowl"이라는 스키장이 있는 이 산은 호피 보호구역으로부터는 꽤 떨어진 곳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성스러운 순례지이다.)
애리조나 북동부 건조한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호피족은 파란 옥수수를 재배하며 살아간다. 관개수로가 있을 턱이 없는 이 지역의 옥수수 농사는 순전히 비에 의존한다. 사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강수량이 많지 않는 그 곳에서 비가 언제 얼마나 오는지는 호피족의 생존에 결부된 중요한 사안이다. 비는 서쪽 샌프란시스코 봉에서 형성되어 오는 구름에서 내린다. 조상의 영이 구름을 형성하여 비로 내리는 것이다. 조상의 덕(德)은 비라는 형태로 호피족 삶을 윤택하게 하여준다.
조상의 영이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 카치나에 얽힌 주된 믿음의 구조이지만, 그 외에도 카치나는 호피족 종교생활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로 등장하며 그 이미지가 카치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주로 떠올리는 내용들이다. 호피족의 중심적인 의례는 카치나 춤이다. 풍요에 감사드리고 또 기원하는 그 의례에서 참가자들은 화려하게 카치나 분장을 하고 춤을 춘다. 카치나 분장은 인형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인 잘 알려진 카치나 인형이다.
카치나 인형이 잘 알려진 것은 그것이 성공적으로 상업화된 북미원주민 관광 상품이기 때문이다. 드림 캐처, 모래 그림 등과 함께 ‘인디언’을 대표하는 상품이 되어 관광지나 기념품 가게에서 팔리고 있다. 카치나 인형은 수집가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고가의 상품으로 좀 차별화되었다는 점이 좀 다를 뿐, 원래의 종교적 맥락을 벗어나 기념품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카치나’라는 말을 들으면 카치나 인형을 생각한다. ‘차이나’라는 단어가 도자기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들을 때마다 카치나를 생각나게 하는 징검다리의 명곡 <뭉게구름>을 틀어보고 싶었다.
이 글은 조상의 음덕(陰德)을 기리는 추석 특집 포스팅이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푸른 하늘 벗삼아 훨훨 날아가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이 땅의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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