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유력 일간지 "The Arizona Republic"의 9월 21일자의 탑으로 오른 기사가 “투산 교구 파산하다”(Diocese files for bankruptcy)였다. (투산 교구는 피닉스, 갤럽 교구와 함께 애리조나의 3개의 교구 중 하나이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구이다. 옆의 지도 참조.) 아니, 가톨릭 교회가 파산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내 영어 독해를 의심해 보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파산하였다는 기사였다. 교구 재산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파산 신고와 그 갱생의 경제적 절차가 어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이해도 안 가고 모르겠다. 내가 눈여겨 본 것은 파산하게 된 이유였다. 그 이유가 파산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더 놀랍다.
투산 교구는 신부들의 신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물어주다가 교회 자산이 모자라 파산선고를 하게 되었다. 투산 교구는 2002년에만 22명의 피해자에게 1600만 불을 지급했다. 현재 34명의 피해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고, 그동안 여기저기 교회 건물과 땅을 팔아가며 빚을 갚아가던 교구는 지불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 320만불의 재산을 신고하고 파산신청을 해버린 것이다. 투산 교구의 파산은 워싱턴 주의 어느 교구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신부들의 성추행 폭로는 지난 2년간 미국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그 일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런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뉴스에서 전직 주교 재판하는 소식을 가끔 듣긴 했는데, 이참에 그동안 이 사건이 애리조나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찾아보았다.
0. 가톨릭 신부의 성추행 사건은 2002년 1월 [보스턴 글로브]지가 존 지오간 신부가 30년 동안 13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하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불거져 나왔다. 교회 측은 개인적인 탈선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성추행이 교회의 조직적인 문제임이 점차 드러나게 된다. 신부에 의한 성추행 사건은 펜실베니아, 캘리포니아, 그리고 애리조나를 비롯한 다른 주에서도 보고되기 시작한다.
1. 이러한 분위기에서, 피닉스 교구의 성추행 사례에 대한 조사단이 2002년 5월 조직된다. 피닉스 교구에서는 자체 조사를 통해 성추행 혐의로 3명의 신부의 사제직을 종신 금지한다.
2. 그러나 9월달에 조사단은 교구가 증거를 은폐하고 있다는 점을 추궁한다. 여론에 압력에 굴복해서 주교 오브라이언은 지난 30년간 50명 이상의 사제들이 성추행에 연관되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뒤이어 신부가 자신의 열살박이 아들을 성추행했다는 새로운 항의가 들어오는데, 오브라이언 주교는 이를 부인한다.
3. 2003년 5월 조사 결과, 오브라이언 주교는 수십년 동안 사제들의 성추행들을 의도적으로 은폐해 왔음을 인정한다. 7월, 주교는 집에 가다 행인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하고 바로 구속된다. 새로운 주교가 부임한다.
4. 재판 결과 피닉스 교구는 지난 34년 동안 신부들의 어린아이 추행으로 인해 270만불을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 금액은 투산 교구의 것보다는 적으며, 피닉스 교구는 재산도 더 많기 때문에 투산처럼 망할 염려(?)는 없다고 기사는 부연설명하고 있다.)
우리동네에서 복잡하게 진행된 일들을 세세히 나열해 보았는데, 요는 가톨릭 교회 신부들이 상습적으로 어린아이들을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져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주고 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미국 사제 조직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가톨릭 조직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차원의 논의도 필요하지만, 가톨릭의 독신 사제 제도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논의도 뒤따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이 많이 진행된 것으로 아는 데, 아직 찾아서 읽어본 것은 없다. 가령, 가톨릭의 독신 사제는 그 종교의 불변의 특성인 양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역사적으로 형성된 종교 제도이다. 독신 사제제도가 확립된 것은 중세인 1074년 교황 그레고리 7세 때이니,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독신 사제의 역사는 절반 정도이다. 중세 때 교황이나 주교들의 비리와 재산 축재가 너무 심하고, 특히 재산을 상속하면서 주교 자리가 종교권력화되었기 때문에 교회의 비리를 개혁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이러한 역사적 고찰에서 시작하여(그러니까 독신은 인간의 법이라는...), 사제직에 대한 문제제기는 가톨릭 교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게 짧아, 더 이상의 이야기는 뒤로 미룰 수밖에... (성추행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 신부들 사진들이 신문 사이트에 있길래 몇 장 올려 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