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뉴스는 그저 뉴스가 아니다.
뉴스는 온갖 종류의 불길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교통 사고, 살인 사건, 이전엔 듣지 못했던 엽기 행각, 이라크에서 들려오는 암울한 이야기와 세계 곳곳의 폭력, 불안한 경제, 그리고 기상 이변. 세계가 종국을 향한 방향을 지니고 가고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이런 사건들은 징조(sign)들로 읽힌다. 사건 하나하나가 종말이라는 커다란 드라마를 구성하는 텍스트로 읽힌다. 종말론은 역사의 격변기에 세계를 설명하는 유력한 틀로 사랑받아 왔다. 현대 역시 종말론이 사랑받는 시기이다. 뉴스가 종말론의 재료들을 너무나 충분히 제공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종말론을 통해 역사를 어떻게 의미화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끝도 없는 사례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독교의 요한계시록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미국 사람들이 현재의 역사의 추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뉴욕 타임즈의 2002년 7월 1일자 기사 "Apocalypse now"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02년도에 타임지와 CNN이 공동 조사했다는 설문의 결과가 다음과 같이 나왔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의 36%는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 사람들의 59%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 사람들의 35%는 911사태 이후 뉴스의 사건들이 세계의 종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주시하면서 보고 있다.
미국 사람들의 36%는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에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을 믿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미국 사람들의 17%는 자신의 생애 내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삼분의 일 정도의 미국 사람들이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이 아는 바의 성경을 통하여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부시를 찍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더구나 이 기사에 따르면 911사태 이후 기독교에 소원했던 사람들조차 세계사의 흐름을 기독교적 종말론의 시각으로 보는 데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 출판계에는 요한계시록의 구절을 인용하며 세계사의 추이를 읽어내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많이 올라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95년부터 나와 시리즈로 계속 출판되고 있는 "Left Behind" 시리즈이다. (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form/002-6549131-3088040 ) 지금까지 12권이 나와 있는데 엄청난 부수가 팔렸다고 한다. (이 시리즈에서 인용된 구절들을 차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살전4:16-17, 계6:3-4, 계7:1-8·8:7-12, 계9:1-11, 계11:7-12·13:3, 계11:14, 계12:12, 계16:4-9) 가장 많이 팔린 책은 700만 권이 팔렸으며, 대부분의 책이 300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시리즈에서는 전부터 이슬람 테러리스트, 즉 악의 세력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니 911사태 이후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이런 류의 세계 해석이 호응을 받게 되었다.
내가 어찌 이 방대한 시리즈를 읽을 시간이 있겠느냐만, 이 기사에 따르면 이 책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계사의 사건들이 이 책의 종말론을 구성한다: 세계 이차 대전, 그리고 히틀러라는 악한 존재. 그는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철저히 파멸한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그리고 19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켜내었는데, 이처럼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유지되는 과정에서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역사에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하든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반면에 사담 후세인은 바빌로니아를 재건하려는 불길한 존재였다. 1991년의 걸프만 전쟁에서 불길함이 가시화되었지만 미국의 주도로 잘 막아낸다. 드디어 2001년의 911 테러에 의해 악과의 전쟁은 전면적인 것이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이라크 전쟁은 악의 세력과의 최종적인 전쟁인 “아마게돈”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런 역사 읽기는 철저히 미국적인 것이다. 미국이 그리스도의 대행자로 하느님의 섭리를 이행하고 있으며, 이슬람은 철저히 악의 구현으로 괴멸의 대상이다. 공존의 가능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논리인데, 종말론이기에 이런 막가파식 논리가 가능할 것이다. 황당한 생각이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이런 생각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세계사의 흐름을 움직이는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설마 부시도 이런 식으로 세계의 흐름을 읽고 있어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단순한 놈일까?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 단순성에 오싹해진다.
게다가 미국 기독교의 이런 정치 의식은 결코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저런 정치 의식은 이른바 복음주의라는 진영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는 생각들이며,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의 의식과도 연장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정치 의식 얘기는 또 다른 긴 얘기가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미국 교회를 보면 한국 교회가 더 잘 이해된다는 평범한 사실만 지적하고 넘어간다.)
게다가 미국 기독교의 이런 정치 의식은 결코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저런 정치 의식은 이른바 복음주의라는 진영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는 생각들이며,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의 의식과도 연장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정치 의식 얘기는 또 다른 긴 얘기가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미국 교회를 보면 한국 교회가 더 잘 이해된다는 평범한 사실만 지적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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