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A. Tweed,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Victorian Culture & the Limits of Dissent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1992]).
미국의 불교 수용 과정을 다룬, 잘 정리된 책이다.(번역서가 나와 있지만 번역 상태가 좋지 않아 인용하기 힘들다.) 우리는 보통 서양 종교가 아시아에 어떻게 선교되었는가에 대해서 연구하지 그 반대의 경우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는다. 미국에 불교가 어떻게 선교되었는가를 다루는 이 책은 그 반대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1. 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에 19세기말 미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가 핵심 내용이다. 저자는 당시 미국의 문화적 전제를 ‘빅토리아 문화’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무아, 무신론, 정적주의, 비관론 등으로 이해된 불교는 유신론(theism), 영혼(soul) 관념, 낙관주의, 행동주의 등을 전제로 하는 빅토리아 문화에 도전적인 요소들로 가득했다. 이 책은 이렇게 새로운 사상인 불교가 과연 서구의 문화적 전제들에 도전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새로운 종교는 기존 문화와의 연속성과 그에 대한 혁신 사이에서 횡단하게 된다. 저자의 결론은 불교가 서구 문화의 전제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2. 불교를 수용한 미국 종교문화의 지형은 책에서 세 부류로 제시된다. 보수적인 주류 개신교 그룹, 자유주의적 개신교 그룹(유니테리언 교회와 같이 급진적인 사람들), 기독교 밖의 그룹(심령술, 신지학회 등 새로운 종교성에 관심 갖는 사람들).
또 저자는 미국 불교인을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한다. 비의적 불교도(esoterics), 합리주의 불교도(rationalists), 낭만주의 불교도(romantics). 이 구분이 임의적이고 겹칠 때도 있지만, 책 후반부에서 불교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설명할 때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3. 불교라는 종교는 서양 문화의 어떠한 부분과 충돌하는가? 어떤 부분에 도전했고 도전하지 못했는가? 서양과 불교의 대화는 불교를 풍부하게 해준다. 불교에 대한 오해나 편견인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엔 불교의 깊이를 더해주는 질문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불교는 무신론이어서 유신론적인 서양 종교를 위협하는가? 불교 옹호자들은 불교 전통의 다양성을 들어 불교가 무신론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시키려 하였다. 영혼 관념과 배치된다는 점은 어떤가? 이는 불교 무아(無我) 관념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연결된다. 이 역시 영혼의 단순한 소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낙관론과 비관론, 행동주의와 정적주의에 관한 논쟁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개된다. 불교 전통의 다양성에 비추어볼 때 그렇게 단순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서양(혹은 기독교)의 자리에서 불교에는 이런 것이 없냐고 질문하고 불교 쪽은 방어적인 논리를 펴는 것이라서 분명 한계를 갖는다. 적어도 이런 대화는 질문에 포함된 전제를 되묻지 못하는 것이기에 저자는 불교가 ‘반대자로서의 한계(limits of dissent)’를 지닌다고 지적한다. 그래도 불교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서양인의 물음을 겪는 것은 사상의 도약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불교는 우문에 평이한 해답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서양인의 궁금증이 현대 우리가 불교에 대해 갖는 편견으로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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