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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위도 10도, 전쟁 속에 종교가 스며들어 있는 곳

by 방가房家 2023. 5. 17.

얼마 전 참석한 행사 때문에 읽은 <위도 10도>. 이 책은 종교분야 화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간의 관심이 많은 종교분쟁 분야에서 중요하면서도 신선한,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종류의 정보를 담은 책이다. 그런 책이 출간된 지 1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 빠른 번역을 보면서 드디어 출판계의 자본력이 종교에 대한 관심에 민감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상한 흥분마저 들었다.(사실 도킨스 류의 책들의 빠른 번역에서 자본의 냄새가 먼저 느껴졌던 게 사실이지만 그쪽은 내 관심 분야가 아니다보니...) 

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미덕에만 집중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그것은 책에 담긴 알토란같은 증언들이다. 책의 인터뷰 대상에는 이 분쟁에서 상당히 거물급,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사람, 고통의 당사자 등 기자의 엄청난 취재가 아니면 접하기 힘든 이들의 육성이 담겨 있다. 짧은 증언 몇 마디에도 종교와 뒤엉킨 곡절 많은 삶을 살아간 이들의 통찰과 내공이 실려 오는 것이 느껴진다. 저자는 치우친 입장을 갖지 않으려 하며 다만 맥락을 알려주려 노력한다. 그 덕분에 증언의 진가가 꽤 전달된다. 증언에 대한 저자의 정리와 분석이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도 10도 - 
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 유지훈 옮김/시공사

인상적인 몇몇 증언들을 모아보았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의 종교가 처한 상황, 믿는 사람, 소속된 종파에 따라 너무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다양하게 기능하며, 따라서 종교와 전쟁의 관계도 단순화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믿느냐보다는 어떻게 해석되느냐가 중요하다.
“종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가슴에 있는 것이니까요.” 에미르가 빙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경전은 직설적인 언어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해석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41, 나이지리아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 에미르)
이 책의 부제는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이다. 이것은 원서의 제목이 아니라 한국 출판사에서 임의로 붙인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제목은 적절하지 않으며 다만 이 책의 ‘종교전쟁’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그 점에서 이해는 한다) 책이 전하는 바는 제목보다 훨씬 복잡한 현실이다. 종교가 전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현실 여기저기에 종교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종교는 폭력에 기름을 붓는 경우도 많지만, 그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폭력 이외의 대안을 찾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내 마음에 드는 증언은 다음 것이다.
애당초 나이지리아의 분쟁은 종교와 무관하다는 것이 압둘라히의 지론이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죠.” 그는 기독교 미션스쿨과 연방대학을 나왔지만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차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로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했지요.” 그러나 인구가 늘고 자원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누가 엘와에 첫발을 내딛었는지, 누가 최근에 정착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69, 무슬림 변호사이자 지역대표 압둘라히)
물론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폭력을 떠받치는 종교의 존재이다. 여기에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분이 없다. 그 둘 중 보수적인 입장이 특히 그런 역할을 한다.
“저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할 것입니다. 저의 소임은 형제들에게 순교를 준비시키는 것뿐입니다.”(54, 나이지리아 J목사)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세요?” 한 아이가 말했다. 인근 마을에 사는 ‘스승님’을 위해 구걸하는 것이 전부란다.(64, 나이지리아의 한 소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보수적인 기독교(복음주의 개신교)는 자유주의라는 내부의 적에 대해서도 날을 세운다.
이슬람과 서양의 진보주의 기독교를 동시에 비판해 온 그는 나의 질문을 경계하면서도 “서방세계의 기독교인이 보수적 가치관을 버린다면 온 교회는 이슬람과의 투쟁에 취약해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73, 나이지리아 아키놀라 성공회 주교)
“저는 서양인들이 운운하는 상대주의에 정신을 빼앗길 만큼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77, 무슬림에 침입당해 아내는 눈이 멀고 아이는 입이 찢어지는 일을 당한 나이지리아 쿼시 주교)
형언하기 힘든 잔인한 현장에서도 서로 공존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에 종교가 또 기여한다는 역설적인 장면은 이 책이 던져주는 희미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래의 아샤파와 우예는 지난 아픔을 극복하고 서로의 종교에 태해 토론하는 친구 사이이다.
“신이 인간을 다르게 창조하신 까닭은 차이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섭리였다.”(나이지리아 이맘 아샤파. 기독교 민병대의 습격을 받아 스승을 잃음)
우예가 <사도행전>(17: 26)을 낭독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98-99, 나이지리아 우예 사제. 이맘 추종자에 의해 팔이 잘림)
이 책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저자와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대면이다. 이 만남은 설명하기 쉽지 않은 두 세계의 병렬을 보여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함께 기도해도 되겠습니까?”……“저를 인터뷰하러 수단에 왔죠?” 그레이엄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주님은 당신이 기도하길 원하셔서 당신을 여기에 보내신 겁니다.”(156, 복음주의 개신교 목사 프랭클린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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