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발상은 기발하고, 동원되는 자료의 폭은 방대하고, 민족을 생각하는 스케일은 웅혼(雄渾)하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을 읽으면서 그가 당대에 혼자서 ‘지식IN’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를 ‘지식IN’이라고 한 데에는 삐딱한 시선이 있는데, 그것은 그렇게 방대한 지식이 도대체 어디에 소용되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남선의 지적 유산은 종교 ‘이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 종교 ‘담론’에 관한 것이다. 비록 그의 종교 담론을 구성하는 종교적 지식은 당대의 최신 종교 이론들을 활용하여 생산된 것이긴 하지만. 지금도 활발히 생산되고 있는, 한민족을 주제로 한 장광설 안에서는 최남선 류의 주장을 쉽게 볼 수 있다.(물론 최남선 말고도 많은 선구자들이 존재한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을 중심으로 한 자료들을 모았다. 첨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不咸文化論”(1925)
2. “東方 古民族의 神聖觀念에 대하여”(1939)
3. “朝鮮의 固有信仰”(1936)
4. “인생과 종교”(1955)
1. “不咸文化論”(1925)
2. “東方 古民族의 神聖觀念에 대하여”(1939)
3. “朝鮮의 固有信仰”(1936)
4. “인생과 종교”(1955)
1, 2, 3이 담고 있는 내용은 큰 차이가 없지만 발언의 맥락은 다르다. 같은 내용이 1920년대 민족주의자로서, 그리고 1930년대 말 일제의 심전개발 사업에 협력하면서 주장되었음을 볼 수 있다. 단순한 변절의 문제라기보다는, 달라 보이는 두 활동이 그의 지적 세계 내에서는 크게 모순되지 않게 조화될 수 있다는 ‘지적 유연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4는 다른 맥락의 글로, 해방 후 그가 옹색하게 지내던 시절에 천주교로 개종한 옹색한 이유를 쓴 글이다. 참고로 이들 글을 읽고 써 놓은 메모를 밑에 달아 놓는다.
최남선은 “不咸文化論”(1925)에서 한국의 고유 전통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 대강은, 한민족에는 ‘부루’(風流)라는 고유한 사상이 있어 유교, 불교의 수입 이후에도 공존하였다는 것(고려의 팔관회가 그 예), 부루는 백두산을 비롯한 산 이름들에 남아있다고 생각되는 ‘밝음’이라는 어원을 가짐, 단군은 ‘대가리’와 같은 어원으로 부루, 조선 신도(神道) 전통의 주창자임, 부루는 하늘에 대한 숭배, 특히 ‘’의 근원인 태양 숭배가 그 근원이 됨, 이 신앙은 동북아시아 불함문화권을 통해 여러 민족의 신앙과 연속성을 지님 등이다. 최남선은 후의 강연, 예를 들면 “東方 古民族의 神聖觀念에 대하여”(1939)에서 위의 불함문화론을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강연 중에 최남선은 언어풀이를 통해서 고대의 신앙을 유추하는 자신의 방법을 당대에 유행하는 ‘언어고고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동북 계통의 문화권 내에서는 천제(天帝)의 정체(正體)는 다름 아닌 태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언어를 통하여 기원(起源)을 추구하는 최남선의 시도는 막스 뮐러의 시도를 연상케 하며, 그 결론이 원시 태양숭배라는 것은 공교롭게도 뮐러의 후계자들이 주장한 ‘태양신화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최남선이 태양이 세계 보편적인 원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뮐러 학파의 주장을 그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동북아시아에서 최고신이 태양과 관련된다고 주장한 반면에, 인도유럽의 신격들의 예를 통해서는 천체의 정체를 규정한 것이 폭풍이나 뇌우라고 지적하기 때문에, 보편성까지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최남선의 “朝鮮의 固有信仰”(1936)이라는 강연 역시 그의 불함문화론을 담고 있는데, 이 강연은 당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심전(心田) 개발’의 맥락에 자기의 불함문화론을 삽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심전 개발의 필요성을 강변하면서 그 개발의 주된 내용은 자신이 주장하는 고유심성론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세에 발맞추어 자기의 학문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강연에서 그가 조선인 고유의 전통을 중심으로 할 것을 주장할 때 눈에 띄는 논리는 화초와 토양이라는 ‘토착화’의 비유이다. 이 논리를 통해 그는 일본은 외래문명을 토양에 뿌리내리게 해 자기 것으로 만든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교도 불교도 그냥 통째로 삼켜버리고, 이를 씹어서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지 못하고 마침내는 설사를 일으킨 것”(249)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렇게 고유 전통을 강조하던 모습은 해방 후 그가 천주교 신자가 된 이후에 쓴 글 “인생과 종교”(1955)에서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빛난 시기가 두 번 있는데, 그 하나가 “서구문화 도영기(導迎期)에 찬연(燦然)히 발현된 기독교에 대한 순교정신”(271)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서양 문명 기반에 있는 위대한 정신적 지주’인 기독교를 소화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내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주장한 고유 하느(나)님 신화가 삽입되어있다. 즉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고유한 것으로 존재해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한 언급을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에서 시방 천제(天帝)를 칭하는 Hanăr-naim이란 말도, 고대(古代)에는 태양 그것의 인격적 칭호에 불외(不外)하였던 것으로, 태양이야말로 세상의 주(主)로 삼았었음을 규지(窺知)할 수 있다.” (“不咸文化論”(1925), 45.) “불함문화(不咸文化)는 제사(祭祀) 중심이요, 그 제사는 천신(天神)을 본위(本位)로 하는 것이요, 그 천신은 태양을 실체로 하는 것이요, 그 태양은 광명을 주덕(主德)으로 하는 것이니, 이 계통(系統) 인민(人民)의 신앙상 최고 대상은 ‘하누님’이요, 하누님을 종교적으로 일컬을 때에는 ‘’이라고 하고, 그 세계를 ‘환나라’라고 하니…”(“兒時朝鮮”(1926), 173.) “고기(古記)에 천국(天國)을 ‘환(桓)’이라 함과 국어(國語)에 천(天)을 ‘한울’이라 하여 ‘한’과 ‘환’의 어원적 근친관계(近親關係)로 ‘한울’=‘환울’=‘광(光)의 환우(寰宇)’의 의(意)가 됨과, 일본의 신화에 나오는 천(天)이 곧 일(日)의 택(宅)이요, ‘한우님’(天主)이 별시 태양 그것을 의미함에 벗어나지 아니함…”(“白色”(1925), 451.)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당시 새롭게 형성되는 집단 아이덴티티의 경계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최남선이 주장하는 ‘문화권’은 민족이라는 구체와 인류라는 보편 사이를 매개하는 중간적 개념으로 기능한다. 구체적으로 이 집단정체성은 조선 민족을 넘어서며 일본을 포괄하는 것이기에 ‘친일’의 개연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민은 소걸음님이 요즘 작업하시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 연대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예전 논의들” 중 하나가 되리라. 장석만 선생님의 논문, “민족과 인종의 경계선: 최남선의 자타인식”(첫째로 첨부된 글)은 최남선에 있어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글이다. 이 글에서 장석만 선생은 최남선의 ‘종교지식’들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최남선의 입장 변화를 따라가며 집단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정리한다. 민족의 기원에 대한 최남선의 추구가 민족이라는 단위를 넘어서는 구도에서 진행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1937)에서 기독교, 불교, 유교를 비롯한 여러 전통들에 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 지식들은 ‘상식’적인 것들이어서 특징적인 것이 없지만, ‘정감록’에 대한 설명은 색다르다. 그는 정감록에 대한 설명을 구약 선지자와 같은 예언자 전통으로부터 시작하며, 정감록을 한국 고대의 신도(神道)과 희미하게 연결되는 예언자 전통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미래 국토의 희망적 표상’이며 ‘우리 민족의 생명은 구원(久遠)코 불멸하리라는 신념’이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남조선’(南朝鮮) 사상에 대한 설명에서 구체화된다. 그는 여기서 유토피아 등 이상 사회의 구상화의 사례들을 나열하고, 남조선의 경우 ‘조선 민족의 현실고에 대한 정신적 반발력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남조선은 다른 유토피아 사상들과는 달리 객관적 사실의 충동에서 자연히 성립하였고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무한한 진보하고 있다는 특색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언제까지고 희망으로 품는 조선이 곧 남조선’이라는 선언적인 설명은 남조선에 대한 김지하의 관점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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