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의 <<조선종교사(朝鮮宗敎史)>>는 인쇄되어 출판된 자료가 아니다. 1937년 경 이능화가 강의한 내용을 누군가가(이능화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정서(正書)한 노트로 전해지다가 영인된 것이다. 이런 류의 자료를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신기할 뿐이다. 이렇게 정갈한 필체로 책 전체를 써내려간 공력에, 그리고 그 내공에 압도된다. 그 책을 정서한 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공부하는 이’일 텐데,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공부하는 방식이 너무나 달라져서 ‘공부하는 이’의 육체적 단련의 종류와 질은 차이가 크다. 맨날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예인(藝人)이자 도인(道人)의 품모... 아래 그림이 이 책의 시작 부분이다.
이 책의 내용을 첨부파일로 올린다. 전체 71쪽의 분량이라 여기에 올릴만한 분량에 들어간다. 그냥 파일만 올리기가 민숭민숭해서 이능화에 대해 정리해 제출했던 내용도 함께 올린다. 꽤 성의 없는 숙제 제출이다. 다만 다른 책들은 몇 페이지만 골라 읽어서 대충 인용했지만, <<조선종교사>>는 통독하고 인상적인 대목을 메모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른 저서와 많이 겹친다. 예컨대 “조선무속의 원류”는 무속에 대한 저서와, 그리고 “조선인의 풍수신앙”과 “조선비기”는 해당되는 다른 저술들이 있다. 그 저술들을 보지 못했지만, 내용 상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능화(李能和 1869∼1943)는 1922부터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소속되어 15년 동안 조선사 편찬에 종사하는 한편, 여러 분야의 종교자료들을 수집, 연구하고 저술하였다. 그의 주요 저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흔히 이능화의 친일을 논할 때 조선사편찬위원회 경력을 이야기하는데, 그가 여기서 접한 자료들이야말로 그의 학문적 성취의 기반이라는 점도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은 1912년 출판된 <<백교회통(百敎會通)>>과 20년대 말에 나온 저술들의 질적인 차이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백교회통>>에서 이능화는 다양한 종교들이 하나의 진리에서 비롯했다는 지론을 편다. “따지고 보면 원래 한 가지 둥근 원이 나누어져서 백 가지의 길이 이루어졌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스스로 자기 것은 옳고 남의 것은 그르다고 분별을 짓는다.” 그는 ‘대조’(對照)와 ‘대변’(對辯)의 비교를 통해 백과사전적으로 교리를 나열한다. “모든 종교의 강령을 열람하고 대조하여 서로 견주어 봐서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가리고, 필요에 따라 원문을 인용하여 증거를 하면서 회통케 하였다.”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것은 종교들을 총합하는 근거로 하늘(天)에 대한 믿음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형태로서의 하늘, 주재하는 것으로서의 하늘, 명운으로서의 하늘, 의리로서의 하늘로 하늘 개념을 넷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종교의 뛰어남을 가린다.
이능화는 불교개혁운동에 참여한 불교인으로서, <<백교회통>>에서 불교인으로서의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불교의 우수성을 서술하려는 그의 관심은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918)에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진보적 사관을 바탕으로 한국 불교사를 서술하였다. 특히 태고 보우로부터 서산 휴정에 이르는 과정으로 한국 불교사를 임제종 선맥으로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나오는 다량의 저술을 통해 이능화는 한국 종교사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인에 의한 기독교사 서술로 주목할만한 <<조선기독교급외교사(朝鮮基督敎及外交史)>>(1928)가 있다. 달레의 자료를 참고한 이 책에서 이능화는 기독교의 도입을 조선의 정치사적 맥락 안에서 설명하는 독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서학을 받아들인 유교지식인의 입장을 서술하는 대목에는 전통적인 유교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입장도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1927) 외에도 <<조선여속고>>, <<조선해어화사>> 등 여성사(女性史)의 효시가 되는 저작들을 내기도 하였다. 또한 종교학적 입장에서 주목할만한 것으로는, 그가 종교의례 부문에도 관심을 갖고 관혼상제의 역사와 당시 상황을 정리해서 <조선상제례속사(朝鮮喪祭禮俗史)>(1930)를 썼다는 점이다. 한국의 평생의례는 현재에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분야라는 점에서 그의 선구적인 연구는 평가받을 만하다.
이 시기 저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이다. 여기에는 민족주의 사학자들과의 상호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단군을 중심으로 한 무속과 고대 신화 연구에서 이러한 점을 잘 볼 수 있다. <<백교회통>>에서 볼 수 있었던 하늘신앙에 대한 관심은 <<조선신사지(朝鮮神事誌)>>(1929)라는 연재물로 발달되어, 하늘에 대한 한국 종교사를 종합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여기서 이능화는 신화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고대에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가지고 그 공적을 신의 행위로 돌려서 여러 가지 전설을 낳았으니, 이것을 신화(神話)라 한다.”(23) “어떤 겨레를 막론하고 그 겨레의 고대 일을 상고하려 한다면 옛 기록을 버리고 어디에서 구하겠는가.”(24)라고 반문함으로써 신화를 핵심적인 종교자료로서 놓는다. 동시에 조선이 그러한 건국 신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세계 다른 문명국가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도 상기시킨다. “세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의 건국 신화를 상고하여 보면, 하늘에서 기원되지 않음이 없다.” 하늘 신앙의 종교사는 단군으로부터 시작되는데(“단군(檀君)은 곧 신군(神君)이다”, 3장), 이는 다른 종교사 서술에도 공통된다. 예를 들어 <<조선도교사>>도 단군에서 시작하는 민족주의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상고 때에는 신(神)과 선(仙)의 분별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바탕으로, 도교가 단순히 중국에서 수입된 전통이 아니라 “우리 해동이 신선의 연원”이라는 강한 암시를 부여하기도 한다. 가장 종합적인 제목의 저술인 <<조선종교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한국 종교사의 원류를 무속으로 두고, 그 무속의 원류를 단군으로 놓기 때문에 단군에 대한 동일한 내용이 반복된다.
<<조선종교사>>는 “조선무속의 원류”, “조선인의 풍수신앙”, “조선비기”의 세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성된 저작이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기층신앙으로부터 종교사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세부적인 내용 중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은데, 예를 들어 위호(衛護)라는 풍속을 통하여 한국 종교문화의 복합적 존재양상을 기술한 부분(제10과)이 있다. 위호는 조상의 제사를 무당에 의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부모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관념”이 우리나라에 원래 존재하였는데, 이것이 불교식으로도, 무속 식으로도 행하여졌으며, 조선이 유교국가로서 성립된 이후에도 위호가 지속되었음을 보임으로써 조상모심이 단순히 유교에 속한 것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무속에 대한 태도인데, 이능화는 무속을 한국종교의 중심에 놓으면서도 당시 무속 신앙에 대해서는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인류의 질병을 귀신숭배로써 치료함을 직업으로 삼기 때문에 무축(巫祝)은 미신의 편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무속이 유지되는 것은 “무교육의 남녀가 대다수를 점유한”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계몽적 지식인으로서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점치는 과정을 분석하는 대목도 흥미롭다.(제11과) 태주 아씨가 남자를 꺼린다고 하면서 남녀 손님 중에 상대적으로 의심이 많은 남자를 나가게 한다든지, 풍수상의 미신을 이용하여 복잡한 절차로 점괘를 내놓는 내용은 현실적인 분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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