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충남 보령에서 있었던 영혼결혼식에 대한 신문기사들이다.
이경민의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를 읽다가 알게 된 이야기.
<<동아일보>> 1938년 4월 9일 기사 제목은 “지하의 신랑 신부, 사진으로 월모(月姥)결연(結緣)”이다. 부여군 세도면 면장의 중매를 통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두 남녀를 연결하였고, 사진을 통해 둘의 결혼식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기사 제목의 ‘월모’(月姥)는 부부의 연을 맺게 해준다는 전설 속 노파라고 한다.
4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약간 더 상세하고 선정적이다. “백골(白骨)에도 성례(成禮)는? 저승간 처녀 총각 이승에서 결혼식. 유골 파오고 사진 묻어 합장”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두 남녀의 사연이 자세히 소개되고, 신부의 무덤이 있던 부여에서부터 보령까지 자동차와 상여로 시체와 사진을 운반해와 합장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조성모의 노래(“슬픈 영혼식”)에서나 있다고 생각한 일이 실제로 있었음도 신기하고(물론 ‘슬픈 영혼식’에서는 연애결혼을, 여기서는 중매결혼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남자가 사망한) 중일전쟁이라는 역사의 무게도 함께 느껴지지만, 책의 저자가 주목한 것처럼 사진이 영혼을 맺는 힘을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진이 지니고 있는 제의적 가치”(231)를 언급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원혼을 풀어준다는 전통적인 사유와 사진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언제부터 결합하였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사진이 빠른 속도로 우리 삶에서 뺄 수 없는 영적인 도구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틀림없다. 사진의 제의적 가치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결혼(현대 결혼식 문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사진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과 장례인데, 이 사건에서는 두 의례에서의 사진의 용도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