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넘(Caroline Walker Bynum)은 서양 중세 기독교, 여성, 육체, 물질과 상징 등 매혹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역사가이다. 그녀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성스러운 잔치와 성스러운 단식Holy Feast and Holy Fast>의 서문을 과제물로 번역한 것. 검색해보니 이 책을 포함해서 바이넘의 저서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이 없다. 내용을 살펴보면, 중세 남녀 신비가들의 상징 세계라는 낯선 분야 안에서 먹고 굶는 문제라는 현대의 첨예한 관심사를 풀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빨리 번역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어설픈 나의 번역을 올린다.
Caroline Walker Bynum, <<Holy Feast and Holy Fast: The Religious Significance of Food to Medieval Women>> (Berkel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7), Introduction.
서문 (pp.1-9)
성 베르나르두스는 이 성사(성찬식)를 사람이 밥을 먹는 과정에 비교하시어, 씹고 삼키고 흡수하고 소화하는 등의 유비를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은 조야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잘난 사람들은 악마에서 비롯한 자만심을 경계할지어다. 겸손한 영혼은 소박한 것들에 마음 상하지 않는 법입니다. -존 타울러(14세기)
13, 14세기 영성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종교적 삶의 기본 모티브로 청빈과 정절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지난 50년 동안 청빈은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분열시킨 교리적 주제로서만 연구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그리고 중세 유럽의 상류와 중류 계층들이 실천한 부와 권력에 대한 금욕의 기본적인 은유로서 연구되어 왔다. 정절은 종교적 지위의 필수 요소로서, 지상에서의 천사의 삶의 반영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삶의 통제가 불가능하였던 개인들―특히 여성들―이 스스로를 증오하게끔 무거운 짐을 부여한 요구 사항으로서 강조되었다.
섹스와 돈…. 현대 학자들은 이것들의 유혹과, 이것들을 포기하기 위해 요구되는 경외할만한 영웅심에 의해 생성된 죄의식을 거듭해서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 초점은 20세기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지 중세 말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지구상의 산업화된 한 쪽 지역, 음식의 공급이 실패하지 않는 이 곳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일상생활에 항상 존재하는 곡식과 우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들을 돈과 성적 취향보다도 권력과 성공의 상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에서조차도 모든 지역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은 뚜렷한 사실로, 뚜렷한 상징으로 힘을 발휘한다. 현대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비추어 보아도, 중세 유럽에서 음식이 근본적인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관심사였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흔히 폭식을 탐욕의 중요한 형태로 보았고, 금식을 가장 고통스러운 금욕으로 보았으며, 밥먹는 것을 하느님과 만나는 가장 기본적이고 문자적인 방법으로 보았다. 피터 브라운의 지적에 의하면, 바울이 기독교인의 음식과 음식에 관련된 실천을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새번역)) 고생스러운 지중해 세계에서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수세기의 농업의 성장과 상대적인 풍요가 지난 후, 13세기 후기와 14세기 유럽에서는 기근이 다시 증대하고 있었다. 기록에 남아있는 패륜 이야기들―음식을 몰래 축적한 상인들 이야기, 식인 이야기, 유아 살해 이야기, 더 이상 일할 수 없자 버려져 죽은 병든 젊은이의 이야기―은 그 때가 배고픔과 심지어는 기아가 드물지 않았던 세상이었음을 말해준다. 과식할 수 있는 가능성과 불우한 이들에게 음식을 내버릴 가능성은 특권적이고 귀족적인 상태의 표시였다. 우리는 그것의 두드러진 형태를 과시적 소비라고 부르며, 중세인들은 그것을 관대함(magnanimity), 혹은 큰 손(largesse)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음식과 몸이 거의 일체가 될 때까지 음식을 탐닉하는 폭식이나 구토가 민중 문학에서 제어되지 않은 감각적 즐거움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먹거리와 마실거리로 영원히 넘쳐나는 마법 그릇은 유럽 동화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종교 수도회와 관련된 가장 흔한 자선은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순례자, 방랑자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이었다. 낯선 이(이 사람은 천사, 요정, 신 혹은 그리스도 자신으로 판명된다)에게 자신의 빈약한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은 성인전에서나 동화에서나 영웅적인 혹은 성인적인 관대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또한 스스로 굶기, 의도적으로 음식과 음료를 극단적으로 거부하기의 행위가 중세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금욕이고 성인임을 나타내는 종류의 용기나 신성한 바보스러움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식욕과 배고픔을 억제하는 것은 섹스나 돈의 만족이라는 덜 자주 있고 덜 본질적인 것을 버리는 것보다 훈육에서 있어 훨씬 기본적으로 몸을 제어였다. 코르토나의 마르가리타(1297년 사망)가 본 환시에서 그리스도는 단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악으로부터 식욕을 제한하지 않으면 완전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음식과 음료의 절제 없이 육신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의 치유를 거부하는 이는 육신의 반란을 겪고 고생할 것이다.” 또는 시토회 역사가이자 시인인 페리스의 건터는 1200년 경 쓰여진 기도와 금식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금식은 악마를 몰아내고, 삿된 생각을 물리치고, 죄를 방출해내고, 미래의 선함에 대한 희망을 주고 천상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perceptio) 데 도움이 됩니다.” 14세기 말 스웨덴의 카타리나의 성인전 작가는 다음의 내용을 그녀의 의견으로 기록하였다. “절제는 생명을 연장시키고, 정숙함을 보존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악마를 물리치고, 지성을 밝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고, 악을 극복하고, 육신을 압도하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슴이 부풀어 불타오르도록 합니다.” 고중세 때부터 전해졌으리라 생각되는, 위선적인 수도승에 대한 익명의 풍자에서는 성욕보다는 음식과 마실 것을 참는 것이 더 어렵다고 명확히 말한다. “더 심각한 다른 잘못에 의해 미혹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마실 것에 대한 탐닉에 걸려들곤 한다. 사실 단식이나 철야기도, 반복되는 기도에 의해 여윈 사람의 밥통에서는 여자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생각이 날 것이다. 그 사람은 정욕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잠에 대해 묵상한다.”
중세 후기 유럽에서 먹는다는 것은 단지 사회적 지위의 정밀한 척도를 표시해주는 활동이자, 너무나 강렬하고 감각적인 쾌락의 근원이어서 그것의 거부가 종교의 세계 부정의 핵심이 되는 존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또한 자신의 동료와의 결합이자 하느님과의 결합이었으며, 성찬식이라는 원형적 식사―그것은 연회라는 배경의 흔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 의해 특별한 강도가 주어진 공동식사였다.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빵과 고기를 준비하고 대접하는 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빵과 포도주 자체였기 때문에, ‘먹다’는 힘이 넘치는 동사였다. ‘먹다’는 하느님을 섭취하고, 흡수하고, 하나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성찬식에서 하느님을 먹는 것은 일종의 대담한 신격화(deification), 즉 고통 속에서 세계를 먹이고 구원한 그 육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종교인 남녀들이 일상적인 음식을 포기하는 것은 성찬식과 신비적 결합에서 그리스도를 섭취하는(즉, 그리스도가 되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마크데부르크의 메칠드(1282년 사망?)는 미사에 대해 말하면서 황홀경의 경험을 “하느님을 먹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모든 영혼 중에서 가장 미천한 나는
그 분을 내 손에 올려놓고
그 분을 먹고 그 분을 마신다.
그리고 나는 그 분과 함께 하리라!
13세기 플랑드르 신비가 하데위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사랑의 고통, 사랑의 휴식, 사랑의 광기 속에서
……
각자의 가슴은 다른 이들의 심장을 먹어치운다.
……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놓았을 때
사랑이신 그 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듯이
……
… 사랑의 가장 내밀한 결합은
먹고, 느끼고, 내면을 바라봄을 통해 이루어진다.
존 타울러는 요한복음 6장 56절(“내 살은 참 양식이요”)에 대해 설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이 입 속에 넣는 음식과 음료처럼 사람에게 가깝고 사람의 일부가 되는 물질은 없을 것이다. 하느님이 자신을 우리와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우리의 일부가 되도록 결합하기 위해 찾아내신 놀라운 방법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성 티에리의 윌리엄(1148년 경 사망)은 성육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영원한 지혜여, 당신의 작은 지혜의 신성한 유아를 키우는 것은 당신의 가슴입니다.
교회에 있는 당신의 아기들―그들은 딱딱한 음식보다는 여전히 당신의 우유를 필요로 합니다―이 당신 안에서 낯설지 않은 자세를 취하는 것은, 당신의 성육신의 주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중세 말기 영성에서 음식이 역사가들이 생각한 것 보다 더 중요한 모티브였다는 것외에도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음식은 또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신앙에서 더 중요한 모티브였다. 중세 말 여자들에게 금식은 너무나 강력한 강박 관념이어서 현대 학자들 중에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신경성 무식욕증의 최초의 사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유럽 전역의 여인들은 남들에게 음식을 먹임으로써, 남편과 아버지라면 아끼고 섭취하는데서 자랑스러움을 느꼈을 음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겼다. 성만찬과 그에 관련된 봉헌들―그리스도의 육체, 상처, 심장, 피와 관련된 것들―이 여자들의 신앙의 중심이었다. 성배 속의 하느님을 먹는 것은 모든 굶주림을 한 데 수렴하면서도 초월하는 달콤한 향유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신기하고 풍부한 신비 현상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나는 중세 여성들의 신앙 속에서 음식과 관련된 종교적 실천과 음식 이미지들의 의미를 탐구할 것이다. 실천과 문헌 양 쪽에서 음식이 중심적이라는 것을 예증하기 위하여 충분한 사례들을 인용할 터이지만, 나의 주 관심은 은유들을 수집하고 음식 금욕, 성찬식 봉헌, 음식 먹이는 기적의 사례들을 나열하는 데 있다기 보다는 종교 상징체계 내에서 음식이 어떤 다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널리 존재했는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단식을 했거나 성배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자녀의 환시를 본 모든 여성들을 언급하기 보다는, 먹음과 먹지 않음의 풍부하고도 역설적인 의미를 ―수세기의 시간과 상이한 현대의 전제들에 의해 형성된 이해의 간격을 뛰어넘어― 추적하는 우리의 작업에 부합하는 내용을 지닌 여성의 삶의 이야기와 저작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음식 강박에 관한 현대의 의학적 정의들을 알고 있지만, 적어도 처음에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음식에 대한 중세의 태도들이 신경성 무식용증과 히스테리아와 같은 현대 개념이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여성들에게 음식은 자신과 환경을 거부하는 방식인 동시에 제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음식은 육신이고, 육신은 고통과 생식이다. 일상적인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음식에 자신을 향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을 향해 나아갔다. 그것은 단지 흠 있는 몸뚱이를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고통 받고 인류를 먹여주는 십자가 위의 육신이 제단 위의 음식이 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중세의 실천과 언어 중 어떤 것들이 일반적인 현대 독자들에게 아무리 우스꽝스럽거나 천박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마음 상하지 말라는 (앞에서 인용한) 타울러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소박한 것들”을 심층적으로 연구한다면 우리는 음식과 몸이 고통과 생식이 조우하는 강력한 방법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완전히 숨길 수 없는 인간 조건의 단면이다.
나는 중세사가들과 여성사 혹은 기독교사에 일반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 모두를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기 때문에 양 쪽 사람들 모두를 위해 배경 자료를 제공하였다. 1장은 중세 여성들에 가능했던 종교적 선택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2장은 초기 기독교의 근원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중세 기독교인들의 음식에 관련된 주요한 실천들―단식과 성찬식 봉헌―을 설명한다. 두 장들에는 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한 자료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내 나름대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였지만 말이다. 자료의 성격을 논의하는 3장은 기본적으로 학자들을 위한 장이다. 3장은 성인전 자료를 사용할 때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들을 살펴본다. 또 음식 실천과 은유가 ‘여성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사례를 강화하기 위해서 몇 명의 남성 인물들에 대해서 면밀한 독해를 시도한다. 4장과 5장은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 책의 바탕이 되는 그녀들의 저술들을 제시한다. 나는 이들 이야기들 중 몇몇에 대한 분석적인 논의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 자체로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이야기 자체를 되풀이함으로써만, 음식 모티브가 어느 정도로 단일한 삶 속에 엮여질 수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논증할 수―또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 장들은 논의의 중심이다. 그 부분에서 나는 여성의 신앙에서 음식 은유와 음식 실천이 두드러지는 것에 대한 소위 말하는 기능주의적 설명과 현상학적 설명을 제공하였다. 다시 말해 나는 첫째로는 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모양짓고 가족과 공동체 안에 자리잡을 때 어떻게 음식 실천을 사용하였는지를 보여주었고, 둘째로는 음식과 관련된 행위와 상징이 중세 여성들에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중세 말 금욕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중세 종교에서 성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 셈이다.
사실 뒤의 다섯 장은 종래의 표준적 해석에 대한 복잡한 반론이 된다. 종래의 해석에 따르면 금욕주의는 세계에 대한 거부나 실천적 이원론으로 해석되고 중세 여성(종교인)들의 표준적인 모습은 매저키즘이나 어느 정도의 증오로 내면화된 여성 혐오에 의해 모든 면에서 제한된 모습이었다. 그것보다는 나는 몸을 제어하고 훈육하는 중세의 노력들이 몸뚱이로부터의 탈출보다는 육신으로부터 제공되는 가능성들에 걸쳐 있는 세밀한 변화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 출산, 젖먹이기, 고통, 음식 준비와 분배와 같은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일상 경험으로부터 종교적 여성들이 어느 정도까지 기본적인 상징들을 추출하였는지에 대해 논증하고자 한다. 여성 상징―여성 상징은 그 시대 남성들이 전도의 상징(특히 부와 권력의 포기)에 느꼈던 열망과는 극히 대조된다―의 특성을 이러한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종교성의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세 가지 예비적인 언급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연대기에 관한 것이다. 밑에서 논의될 단식과 성찬식의 열광의 기가 막힌 사례들 중 몇몇은 15세기 것이긴 하지만, 나는 13, 14세기에 대다수의 분석을 할애하였고 그 시대에서 대부분의 예를 뽑았다. 이렇게 연대기의 초점을 잡은 것은 나의 목적이 여성의 신앙에 대한 특별한 강조의 시작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신앙을 16, 17세기까지 소급해 추적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혹자는 이 신앙이 이후 오랫동안(혹은 더 오래) 유럽에, 특히 가톨릭 농촌 지역에서 지속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차후의 역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두려고 한다. 나의 취지는 그 신앙의 시작을 될 수 있는 한 넓은 맥락에 위치시켜, 성찬식 봉헌, 단식, 기적적인 신체 변화 등이 따로 논의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님을 보이는데 있다. 한 시대의 봉헌 실천과 상징의 상호 관련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나는 둘 중 하나의 역사를 시간에 따라 너무 길게 끌고 가는 것을 지양해야 했다. 또 연대기적 변화를 찾아다니기보다는 그 문화 내에서 상징의 전반적인 유형을 그려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것은 유형을 뚜렷이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다.
두 번째, 나는 내가 논의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예외적이었다는 점을 잘 안다. 『켄터베리 이야기』와 『신곡』이 전형적인 중세 문학이나 중세 삶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오아니에의 마리아(Mary of Oignies, 1213년 사망)와 시에나의 카타리나(1380년 사망)는 전형적인 종교적 여성(혹은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다. 사실 중세 성인전기 작가들은 성인들이 일반 중생들의 일차적인 ‘모범’도 아니었음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성인들은 모범이 되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였다. 그리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성인들은 일반인의 순전한 망상과 힘으로는 모방될 수도 없었고 되어서도 안 되었다. 차라리 (숭배자의 말에 따르면) 성인들은 사랑받고, 경배 받는 대상이며 하느님이 속세로 틈입해 들어오는 순간에 대해 충만한 의미로 묵상할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이다. 그러나 뒤의 논의에서 나는 여성 성인들의 맥락과 여성들의 맥락을 설명하면서 이들 특별하고 예외적인 여성에서 그들의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사회에 대한 부분으로 논의를 옮길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이러한 노력을 정당화해준다. 첫째는 우리가 연대기, 법전, 설교 등에서 모을 수 있는 자료에 따르면 예외적인 여성들의 실천들―단식, 음식 분배, 정신적 육체적 변화 등―이 일반 종교 여성들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헝가리의 엘리자베스(1231년 사망)나 제노아의 카타리나와 같은 성녀들의 행위에 대해서 룩셈부르크의 피터(1387년 사망)의 어머니, 14세기의 여성 법률관 마거리 캠프(1438년 이후 사망), 16세기의 광범위한 작가들이 지나가며 언급하는 단식하는 소녀들과 같은 여성들의 속세에서의 수많은 유사한 행위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의 정당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기록한 신성한 여성들, 특히 시성되거나 널리 숭배 받는 이들은 당대인들로부터 영웅, 귀감, 교훈으로 선택받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권능과 인간의 열망이 서로에 초점을 맞추게끔 모아주는 렌즈인 것이다. 판본의 전승에 의해 널리 읽혀졌음이 확증되는 시나 소설들처럼, 시에나의 카타리나같은 여성들은 최소한 당시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경외감을 느낀 것이 무엇인지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성인 여성들에 대해 흔히 말해지는 이야기들을 ―그것들이 중세나 현대의 통념에 비추어 아무리 비정형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성인을 숭배한 사람들의 전제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로 택하는 것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성흔(聖痕, stigmata), 공중 부양, 기적적인 신체의 변화, 장기간의 인에디아(inedia, 역주: 음식물 없이 살 수 있도록 개인의 식습관을 바꾸는 능력. 우리 주변의 단학 수련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됨), 환시, 그리고 음식을 증식시키는 기적 등이 “참된” 것인지 여부를 가리는 일에 내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상학자들이 말하듯이, 나는 자연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그러한 사건들의 인과 문제에 대해서는 “괄호치기”를 할 것이다. 나는 중세인들이 무엇을 경험하였는가에 관심이 있다. 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역사가 특유의 회의주의를 갖고 있지만, 또한 역사가로서 나는 과거에 대한 나의 연구가 사람들이 스스로 과거에 대해 발언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을 선호한다. 중세 사람들은 성찬식의 환시나 장기간의 완전한 금욕과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다른 모델들을 지녔다. 어떤 사람들은 기적으로 본 것을 다른 중세인들은 사기나 악마에 홀린 것이나 병이라고 생각하는 그 대목에서, 나는 그들의 모델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이 묵상과 환시의 차이를, 내적 시각의 환시와 외적 시각의 환시의 차이를 분간하는 그 대목에서, 나는 왜 그들이 그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들이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필요한 범주나 설명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나 역시 그러한 용어들을 피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성인 여성이 몇 년 동안 먹지 않고 살았다고 내가 얘기할 때, 나는 그 진술이 20세기의 보고나 과학적 확증의 기준에서 참이라고(혹은 그릇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기록될 정도로 중세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요, 그것이 성인 여성들, 연대기 작가들, 그리고 숭배자 모두가 공유하는 의미와 가치를 찾고 부여하는 방식의 표현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현대의 문제들과 강박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점들에 대해 에필로그에서 다루었다. 게다가 나는 이 책을 중세 전문가들이 아닌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술하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학술서적이지 대중서적이 아니다. 이 책은 이전에 관한 책이 아니라 지금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현대 여성들이 처한 문제들에 대한 공포에서도, 현대 여성들의 진보에 대한 기쁨에서도 비롯된 책이 아니다. 사실 나는 그 두 감정을 모두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나의 노력, 이상, 그리고 방법은 역사적인 것이다. 나는 과거를 친숙함 뿐만 아니라 낯섦으로도 드러내고자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여자들의 행동과 저서들이 우리와는 매우 다른 사회 경제적 구조, 교회 구조, 신학 전통, 봉헌 전승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독자들이 과거를 이상한 것으로 경멸하며 이 책을 내려놓는다면 나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독자들이 내가 기록한 삶으로부터 현대의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직접 이끌어 낸다고 해도 나는 마찬가지로 실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