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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영상

"미션"에 대한 무식한 관점

by 방가房家 2023. 4. 14.

종교 영화들을 개관한 한 책에서 <미션>에 관한 글은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미션>은 1986년 칸느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주제인 ‘인간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작년에 한국의 어느 평론가가 <미션>을 ‘백인우월주의’에서 만들어진 졸작으로 선정한 적이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온건한 분위기의 글에서 갑자기 이런 폭력적인 언사가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무식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일까? 칸영화제 상을 탔을 정도의 수준 있는 작품을 몰라보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좀 넓게 해석해서 앞 단락에서 언급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숭고한 행동(교회 정책 대신에 과라니족의 편을 들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뜻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미션>이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백인의 시각 위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서양 영화에는 한국인 관객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 있다. 오히려 그 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잘 된 점을 간단히 평가하면, 이 영화는 제도와 갈등하는 개인의 고민, 과라니족에 인간적인 연대감을 느낀 선교사의 고뇌를 감동적으로 그려내었다고 생각한다. 원주민의 편에 선 선교사를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 영화로서 이 정도 해낸 것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과라니족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 역시 관객의 권리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된 이야기는 “과라니 전쟁”이다. 과라니족이 서구 열강 멋대로의 국경 설정에 반발하여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다가 몰살당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이야기를 “서양인 영웅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영화 시작부에는 이 이야기가 실화(true story)라고 하는 자막이 있지만, 사실 과라니족과 죽음을 같이했다는 예수회 선교사는, 역사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의 설정이다.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져다가 철저하게 ‘우리의(서양인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과라니족은 마치 배경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은 극히 일부(선교회 양도 결정을 통보받고 추장이 ‘나도 왕이니 당신 왕의 말을 듣지 않겠소’라고 말하는 장면)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들은 극히 순수하고도 수동적으로 서양 영웅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한 미국 평론을 인용하면 이렇다. “과라니족은 내적 삶이라든지 역동적인 인간 복합성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집단적인 인간 나침반 바늘과도 같다. 그들은 충돌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니로의 신념과 감정에서 어느 한 편에 속해 있다. 그 둘 사이에서 우리가 어느 편에 동조하는지를 기록해준다. 그들은 인물이라기보다는 기능이고, 인간이라기보다는 상징들이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제레미 아이언스의 똥고집을 따르다가 총맞아 죽는 것일까?)
 
죽어나가는 것은 그들인데, 영웅이 되는 것은 서양인이다.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니로를 비싼 돈 들여 캐스팅했으니 그들을 영웅 만드는 이야기를 제작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영화가 과라니족의 입장에서 공정한 묘사가 아님 역시 지적할 수 있는 일이다.

몇 년 전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첫 회에서 집어치운 일이 있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인데, 발리 사람들은 운전수나 호텔 종업원으로, 인격 없이 배경과도 같은 존재로만 나오며 한국인들의 변덕과 성깔에 고생만 하는 모습이었다. 발리 사람들은 그저 장식품이었고, 인물은 소지섭과 하지원 뿐이었다. 나는 현지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어글리 코리언들을 보는 것 같아 이내 채널을 돌렸다. 소지섭과 하지원을 보기 위해 만든 드라마니까 그렇게 만든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걸 참을 수 없어 하다니 내가 성격이 참 특이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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