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수업 때문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반복해서 보아야 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볼 수밖에 없는 이 영화, 그러나 열 번 가까이 보는 시점에서는 사과를 깎아 먹으며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흉측한 장면을 학생들에게 억지로 보여주었다는 것이 영 찝찝했는데, 이 포스팅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문경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이 보도되어서 찝찝함은 배가되었다. 심지어 그 사건을 보도한 한 뉴스에는 영화 장면이 영상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 이 글 올리는 심정, 정말 별로다.
영화를 해설하기 위해 국내에 나온 논문들을 참조하였는데, 그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 약간은 실망하였다.(내가 참조한 글은 다음과 같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재현된 ‘역사적 진실’”, “기독교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십자가 복음에 관한 연구”) 내가 본 글들은 영화에 대한 국내의 반응들을 개괄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영화의 종교적 맥락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하지 않는다. 글에 나온 표현들을 몇 개 인용하면 이렇다. “사실적 기법으로 수난을 적나라하게 묘사”, “리얼리즘 충격영상에 나타난 고난과 부활”, “성서를 객관적 사실로 현실화, 비주얼화”, “역사적 사실을 생생한 현실로 부활” 등. 마치 영화 카피와도 같은 이런 평가들은 우리나라 교계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리라. 간단히 말하면 성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이런 찬사는 영화에 대한 이해로는 나이브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복음서라는 텍스트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도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국내의 평가에는 도대체 멜 깁슨 감독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가톨릭교인이라는 기본적인 배경조차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이 영화는 기독교계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멜 깁슨의 가톨릭 취향이 개신교인들에게 큰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더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이 영화가 전의 예수 묘사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혹은 충격적인) 측면을 보여주었다면,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냥 사실 그대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불성실한 답변이다. 그 새로움은 기실 따져보면 오래된 신앙 양태이고, 그것은 현대 기독교인에게는 낯선 것이었기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놓고 한 장면 한 장면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세부적인 분석에 들어가지는 않겠다. 이 글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들을 정리해 놓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1-1. 이 영화는 고통을 강조하는 예수 이야기이다. 시각적 경험을 통해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다. 이 강조점은 현대 기독교, 특히 자유주의 개신교 전통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교사로서의 예수상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전근대 유럽 가톨릭의 시각적 종교 경험이 영화적으로 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2. 멜 깁슨은 제2차 바티칸공회 이전의 가톨릭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톨릭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참고로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기반을 둔 신앙을 가진 이의 예를 다음 글에서 다룬 바 있다. 라디오 신부님, Charles Coughlin.
1-3. 유럽의 중세적, 전근대적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자 했던 신앙이 유행했다. 이와 관련된 예로, 13-15세기 이탈리아라는 한정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다음 글은 전에 보지 못한 자료들과 그에 관련된 종교적 실천을 소개해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은기, “예수 수난의 종교의식과 미술”,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20.
이 글에 언급된 것으로는 탁발수도회에서 강조했던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위한 극단적인 수행을 행한 ‘채찍질 형제 수도회’, 그리고 13-15세기에 발달했던 ‘수난극’ 등이 있다. 아래 그림은 체찍질 수도회를 그린 15세기 삽화.(출처: 위키 항목)
1-4. 멜 깁슨의 영화는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Anne Catherine Emmerich(1774-1824, 위키 항목) 수녀의 환시에 기반을 둔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 환시의 내용을 조사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영화에 어떻게 관련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 환시가 예수의 고통을 감각적으로 느끼려는 전근대적 신앙 양태의 일환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1-5. 훨씬 순화된 형태이지만, 천주교 성지나 성당 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의 길’(14처, 한 예를 들면)에는 이러한 신앙이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수난이라는 시간적인 사건을 공간적으로 배열하고 한 지점을 지날 때마다 묵상을 통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종교 행위와 관련된다. 나는 십자가의 길의 14처야말로 이 영화의 완벽한 스포일러라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 영화는 가톨릭의 신앙 행위를 영화화한 것이다.
1-6. 앞서 중세 신앙에서 ‘채찍질’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이 영화의 악명 높은 10분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서에서는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막15:15)라고 간략하게 나온 부분이 영화에서는 무려 10분을 차지한다. 예수의 채찍질은 당시 로마법에 다르면 죽지 않을 만큼(40대에서 한 대 뺀 것)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다. 영화는 그러한 전통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추가) 최근의 문경 십자가 사건에서도 채찍들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성기를 39회 채찍찔하는, 다소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아래 사진의 2번)
2. 예수 수난을 묘사한 유럽 회화들의 재현. 이 영화는 중세와 르네상스기 종교 명화들을 반영한 장면이 많다고 보인다. 그것은 전근대적 신앙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2-1. 처참한 상태에 놓인 예수의 고통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독일 화가 그룬발트의 그림은 멜 깁슨의 영화와 기본 정신을 공유한다.
2-2. 예수의 채찍질이라는 주제는 카라바지오가 즐겨 그린 것이다. 영화의 구도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2-3. 십자가형 장면의 구도는 렘브란트의 스케치를 떠올리게 한다. (문경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은 채석장의 구도가 골고다 언덕과 비슷하다는 데 주목한다고 한다. 이때 ‘골고다 언덕’은 <패션>의 장면에서 온 것이 아닐까? 기분이 나빠 생각을 진행하지 않으련다. 다음 기사를 참조할 것. 골고다 언덕 닮은 데서… ‘십자가 주검’에 교계 경악)
추가) 최근의 문경 십자가 사건의 현장(출처: 동아일보)
2-4.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은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회화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폼을 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