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가사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티아라의 신곡 <ya ya ya>의 뮤직비디오에는 북미원주민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이 뮤비에서 티아라가 연기하는 ‘인디언’에는 미지의 타자를 대상화하는 전형적인 방식들이 모여 있다. 뮤비가 기대고 있는 상투성 덕분에 이 뮤비는 타자화 방식을 보여주는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서 타자 이미지가 사용된 방식을 정리하는 것이 무의미한 작업은 아닐 것 같다.
1. 인디언은 가상의 장소(미지의 장소)에 있는 원시인이다
뮤비는 어느 비행사가 이름 모를 섬에 추락하면서 시작한다. 그 미지의 섬에서 티아라 인디언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여기서 인디언은 북미 대륙이라는 특정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어딘가에 사는 사람들이고, 철저하게 ‘원시인’(primitive)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원시인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들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하루 빨리 ‘북미원주민’이라는 대안적인 용어가 보급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디언은 원시인이라는 이유로 해서 당치도 않게 식인종이 된다. 낯선 남자를 들쳐 메고 마을로 데려가 기둥에 묶어 놓는 카니발리즘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세계 사람들에 대한 서양인들의 오랜 상상의 이미지였다는 것,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에 의해 재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티아라가 정말 식인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서 (기획사의 입장에서 볼 때) 깜찍한 반전이 숨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끔찍하기도 하다.
2. 지배대상이 되는 타자가 여성으로 표상화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시각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부르고 이를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제도 및 스타일”이라고 정의하였다. 사이드가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오리엔트, 즉 서남아시아이지만, 그의 논의는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때로는 그보다 더 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내 경우에도 오리엔탈리즘 방식으로 타자를 왜곡된 시선으로 대상화시키는 것에 쉽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을 붙이곤 하는 버릇이 있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오리엔탈리즘적인 것’이라고 할 만한 대상화 방식을 북미원주민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에서 볼 수 있다.
사이드의 분석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것(특히 그가 분석한 플로베르 소설에 나오는 이집트 창녀)은 타자가 흔히 여성으로 나타나며 에로티시즘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그들의 지배관계가 남성-여성의 지배관계를 통해 표현된 것이고, 또한 그 표현을 통해 지배관계가 고착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티아라의 뮤비에서 인디언들은 여성화된다. (이 지점에서 티아라가 여성그룹이니 당연한 설정이 아니냐는 반론이 예상되지만...) 여기서 인디언은 다른 신화적 대상인 아마조네스와 겹쳐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전사가 아마존의 부족으로 실재한다고 믿었던 백인 남성들의 환타지인 아마존, 그것이 여기에 삽입된 것이다.
인디언이 아마존이 되고, 카니발리즘은 에로티시즘으로 깜찍하게 반전된다. 인디언은 사로잡아온 남성을 달래고 어루만진다. 얼핏 보면 이것은 묶여 있는 남성이 여자들의 지배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묶여있는 남성의 욕망의 투영이라는 사실이 뮤비 마지막에 나오는 다른 남자의 시선을 통해서 솔직하게 드러난다.
3. 에로틱한 주술 언어
이 노래에 대한 가장 호의적이면서 일반적인 반응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중독성이 있네.”이다. 그것은 이 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 반응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효과를 생산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 전달과는 무관하게 현실의 변화를 의도하는 언어이기에 이것을 주술적 언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티아라를 신비한 존재인 인디언으로 분장시킨 것은 주술적인 가사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디언의 의례적 몸짓을 섞어가며 ‘야야야야’ ‘샤라라라’ ‘우-희’ 등의 가사를 소화한 것은 가사의 무의미성이 의도하는 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주술인가? 주술의 목적이 성적 환상의 실현임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사의 일부를 나열하면 이렇다.
Let me seeya LaLaLaLa Love me hey YaYaYaYaShubidubi ShaLaLaLaLa 우리 둘이 YaYaYaYaLet me seeya LaLaLaLa Love me hey YaYaYaYaShubidub Su Supa Nova이글이글 타오르는 내 눈을 봐 Hot Hot흔들흔들 흐트러진 내 몸을 봐 Ah AhYo ma Yo ma Lova LovaYo ma Yo ma Supa Nova U Hee U U HeeLet me seeya LaLaLaLa Love me hey YaYaYaYa빠져들어 (Oh) 정말 미치겠어 (Oh) My good boyShubidubi ShaLaLaLaLa 우리 둘이 YaYaYaYa 난 너만보여U Hee U U U U U U U U Hee Hee Hee Hee Hee
기본적으로 성적 환상의 실현은 대중가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이리라. 다만 티아라 노래에서 그것이 주술적 언어로 표현되었고 그 노래가 인디언이라는 타자를 끌어들여(혹은 희생하여)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대중문화에서 타자가 소비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내 눈을 끌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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