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128회는 드라마 상에서 약간 예외적인 설정이다. <웬만해선>은 주현과 홍렬 가족, 그리고 오중이네 자취방을 중심으로, 또 배경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인데, 120-30회 즈음에는 주현이 진급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면서 드라마의 일상적인 공간 설정에서 이탈한다. 약간의 외도를 하는 셈인데, 그래서 128회에는 절을 배경으로 주현 혼자 겪는 예외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혼자 심심해하던 주현은 우연한 기회에 주변 스님들의 놀라운 재주를 하나하나 보게 된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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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기분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종교물. 무언가 깊이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기보다는 내가 워낙 좋아하는 드라마에 나온 종교 이야기라서 올려보았다. 파일 크기가 작아 엠블 동영상으로 처리가능하기도 하고. (전체 백메가를 제공하는 이곳의 동영상 서비스는 엠블의 몰락을 상징하는 초라한 서비스이리라. ps. 업로드하다가 화딱지가 나서 다음 블로그를 빌릴수밖에 없었다. 동영상 보려면 엑티브X 깔아서 컴퓨터 더럽혀야 하는 엠블 서비스도 마음에 안 들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웬만해선>에는 종교 이야기가 아주 가끔, 하지만 균형 있게 다루어진다. 정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아주머니인데,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중에게 전도하는 에피소드가 한 편 있고, 오중이 다른 여자 만나다 걸렸을 때 오중을 붙잡고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요’라고 기도 드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반면에 노구와 주현은 드러내놓고 신자를 자처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불교적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인의 평균적인 종교색에 가깝다. 그리고 재황은 가톨릭 신자이다. 민정과 은아에 양다리 걸치다가 성당에 가서 고백성사를 드리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러한 종교 분포는 한국의 종교 지형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인물 성격과도 잘 조화된다. 종교가 전면에 드러난 드라마가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다종교 상황이 충동을 빚는 일은 거의 없다. 딱 한 번, 노구가 점집에서 잡아온 윤영의 결혼날 대신에 다른날 교회에서 식을 올리자고 주장하던 정수가 말싸움하다가 “아버님 그러면 지옥가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 가장 큰 충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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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속세 때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영상물이라면 차라리 <달마야 놀자> 시리즈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佛法)과 폭력의 결탁은 우리 현대 불교사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이승만 정권 때 불교 정화운동부터 시작해서 폭력배들은 절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적지 않은 수의 어깨들이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1990년대 조계종 폭력 사태는 그러했던 역사의 결과물이었고. 물론 조폭과 스님의 우정을 그린 영화 <달마야 놀자>는 그러한 불교의 현대사를 직접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불교의 치부를 드러내기보다는 불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충분히 수긍이 되는 영화제작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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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선생님, 기억술의 대가, 그리고 요들송에 이르러서 스님들의 변신은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성에서 속으로의 변환인데, 이 경우에는 아름답게 나타난다. 종교학에서, 특히 엘리아데의 종교학에서 성과 속이라는 속성이 변화된다는 사실은 매우 강조된다. 성스러운 대상, 속된 것이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대상이 맥락에 따라 성스러운 것으로도 속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성속의 변증법”은 엘리아데 종교학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속된 것이 성스러운 것으로 드러난다는 순간을 일러 성현(聖顯, hierophany)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반면에 속의 드러남을 따로 단어를 만들어 부르는 것을 본 적은 없으나, 이 역시 성속의 변증법을 구성하는 중요한 순간임은 분명하다. 속에서 성으로, 혹은 성에서 속으로 변하는 순간은 흔히 극적이거나, 위험하거나, 때로는 아름답다. <웬만해선> 128회에서는 약간 가벼운 터치로 다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속 변환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 살아있다. “주지 스님 아시면 불호령 떨어지십니다”라고 조심하는 가운데 변신은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마지막에 주현이 숨어서 주지스님의 근육질 몸매를 지켜보는 장면에서도 성속이 전환되는 순간에 대한 긴장감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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