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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영상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그려진 교회

by 방가房家 2023. 4. 14.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가끔 종교에 관련된 영화를 더 유심히 볼 때가 있다. 하지만 전공이라고 해서 더 알고 보는 것은 개뿔도 없을 때가 많다. 따로 조사를 하지 않는 한, 무슨 종교를 다루는지 잘 모르고 보는 일이 많다.

옛날에 베르히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엄격한 청교도 집안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는데, 애들을 쥐잡듯이 하는 무서운 목사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하지만 더 자세한 종교적 배경은 모른다. 나도 남들과 매한가지로 북유럽의 “엄격한 청교도”라는 상식적인 사실 이상은 몰랐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이라도 뒤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보고나면 그만인, 편한 시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바베트의 만찬>>이 있다. 영화의 배경이 네덜란드였던 것 같다. 엄격하게 청교도 신앙을 지키는 어느 바닷가 마을에 프랑스에서 온 여자가 살기 시작한다. 그 여자는 프랑스에서 배워온 화려한 요리를 마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청교도적인 검소하고 멋없는 요리 문화와 프랑스에서 온(그러니까 가톨릭적인 문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리 문화의 긴장이 지속되다가, 영화의 절정부분에서 프랑스 여자의 요리에 마을사람들이 감동하고 맛있는 식사를 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처음에는 굳은 얼굴로 마지못해 요리를 먹기 시작하던 마을 사람들이, 슬슬 음식맛에 녹아나서 얼굴 표정이 펴지고 신나게 음식을 먹게 되는 절정부의 롱 테이크, 보는 사람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그 자연스러운 표정의 변화는 연기일수가 없다고, 당시에 생각했었다.
과연 이 바닷가 마을은 어느 교파에 속한 것일까? 이 영화의 경우엔 알아보는 노력을 좀 했다. 그런데 알아본 결과는 허무하게도, 현실속의 교단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상상된 허구의 교단이라는 것이었다. 청교도라는 이미지에 걸맞는 어느 종교 집단을 상상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허구라 해도 현실성을 보여주는 허구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에 즐겨보았던 영화는 덴마크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Breaking the Wave>>이다. 여기서도 어느 엄격한 개신교회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다. 역시 어느 특정 교단을 그린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잘 모르면서도, 나는 이 교회가, 종교의 권위에 맞서는 주제를 다루려는 라트 폰 트리에 감독의 의도에 따라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한 현실성을 갖는 묘사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에 그려진 교회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교회에서는 여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 왜 종이 없냐고 묻자 하느님을 섬기는 데 종같은 것은 필요없다고 목사가 답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장례식이다. 남자만 참석할 수 있는 장례식에서 생전에 눈밖에 났던 교인을 묻으면서 목사는 이렇게 선포한다. “자네는 죄인이므로, 지옥에 갈 것이다.” 설마 현실에서 이런 말을 입에 담는 목사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입에 담지 않을 뿐, 많은 이들이 이미 이 세상에 대해 심판을 내리고 있다. 자신의 기준에 의해 누가 복을 받고 누가 지옥에 갈 것인지를 선명하게 정해놓는 것이 현실의 신앙의 양태이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선명하게 까발려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말미에서 교회의 권위적인 모습들은 주인공의 행위들에 의해 상징적으로 전복된다. 베스는 교회에서 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말씀을 사랑하는 거냐고 항변한다. 교회에서 여자가 입을 연 것이다. 베스의 장례식에서 목사는 어김없이 “너는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베스의 언니는 남자들만이 있는 장례식에 헤집고 들어가 “당신들 중 누구도 지옥에 가라고 선포할 권리는 없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베스를 수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하늘에서 종이 울리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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