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사_자료/이미지

하비에르의 기적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인

by 방가房家 2023. 4. 11.

루벤스가 그린 성화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기적De Wonderen van de H. Franciscus Xaverius>은 네덜란드 안트베르펜 예수회 성당에 놓기 위해 1617-18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현재는 빈의 미술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인도 고아와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중국 선교를 준비했던 하비에르의 활동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다. 배경에는 이교도 우상들이 복음의 빛을 받아 쓰러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전면에는 하비에르의 선교를 통해서 ‘이교도’들 사이에서 병든 자들이 치료를 받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아시아 ‘이교도들’의 모습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기를 안고 있는 인도 여인도 보이고 남미 원주민 복장을 한 사람도 보인다. 루벤스 당대의 이교도들에 대한 정보가 총동원되었을 거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식별 가능한 ‘한국인’ 남성이 보인다. 화면 중앙에서 놀라서 하비에르를 치켜 올려다보는 이 남성은 성인의 기적을 강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복 차림에 관을 쓴 이 남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루벤스의 스케치 <한복 입은 남자>에 그려진 모습과 비슷하다. 지명숙과 왈라벤은 이 두 작품의 연관관계를 강조해서 <한복 입은 남자>는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에 나오는 한국인을 그리기 위한 예비작업이었다고 주장한다.[지명숙 & B.C.A. 왈라벤,  <<보물섬은 어디에: 네덜란드 공문서를 통해 본 한국과의 교류사>>(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46-52.]
기존의 주장에 따르면 <한복 입은 남자>의 모델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뒤 피렌체 상인 카를레티가 구매해서 로마로 데려온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지명숙과 왈라벤은 노예로 팔려와 유럽에 온 한국인이 그처럼 벼슬아치의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지적한다. 그보다는 일본에서 일했던 동인도 종합상사 관장 자크 스펙스가 고용했던 한국인 수종首從이 1615년경 네덜란드에 온 것을 스케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저자들은 루벤스가 그를 만난 곳은 로마가 아니라 네덜란드였다는 가정도 제시하였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실제 아시아인을 보기 힘들었던 당시 유럽에서, 루벤스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한국인을 만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케치를 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연한 만남 덕분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한국인은 동아시아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림에 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비에르가 선교 활동을 한 일본도, 동아시아 선교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준비를 했던 중국도 아닌 한국이 이교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던 것. 하멜의 책이 출판되기 50년 전에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펙스에 고용되어 네덜란드에 갔다 온 이 조선인은 나중에 일본에 잡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름 모를 이 국제적인 인물은 드라마의 소재로 충분히 쓰일 만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