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미국에서는 당시 기독교가 너무 ‘여성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예수 이미지(이에 대해서는 조사를 할 필요가 있지만)가 계집애 같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한 목사는 ‘긴 머리’를 하고 ‘여자 치마’를 두른 예수가 청년과 소년들의 마음에 예수의 힘차고 영웅적인 형태의 남성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반문했다고 한다. 다른 목사는 이렇게 묻는다. “화가들이 그분을 그린 걸 보면 항상 창백하고 핼쑥하고 병약하고 야위어 보이지 않던가요? 여러분들이 그분을 떠올릴 때면 마르고 수척하고 가냘프고 창백한 분을 생각하지 않던가요?” (Clifford Putney, <<Muscular Christianity>>, 95-96.)
당시의 예수 이미지에 대한 불만 때문에 예수의 남성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들도 나타나게 된다. 1906년의 한 전시회에 대한 다음의 평론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New Portrayals of Christ by American Painters," <<Current Literatures>> 40 (May, 1906): 537-40.
이 글을 쓴 평론가는 전시회에서 러버(Joseph Lauber)의 그림 “그분 안에 생명이: 생명은 남자의 빛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에 주목한다. 그의 평가와 소개된 작가의 변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다impassionate’는 표현은 당대의 빅토리아풍의 감정적인(sentimental) 분위기에 물들지 않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그림은 언덕 위에 서서 지는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남자답고virile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impassionate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이 “모든 기독교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눈에 보이도록 그려내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을 구성할 때 보조자들을 거느린 사역 장면이나 고통 받는 사람(the Man of Sorrows)에서 영감을 얻은 것도 아니고, 남자와는 거리가 먼, 후광에 둘러싸인 전통적인 환상적 인물에서 영감을 얻은 것도 아니다. 내게 가장 감동을 주었던 것은 특별히 억눌리고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영적인 힘과 조용함, 자신을 내어놓음, 그분이 갖고 온 사랑과 자비였다.("New Portrayals of Christ by American Painters," 537-38.)
원문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