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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중심의 상징, 그리고 권력

by 방가房家 2023. 5. 31.

“중심의 상징”이라는 개념은 엘리아데의 이야기 중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이론일 것이다. 엘리아데는 [우주와 역사], [종교사개론], [이미지와 상징]과 같은 주저서들에서 중심의 상징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은 물리적인, 균질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계의 중심을 설정하고 공간을 의미화한다. 중심의 상징을 통해 혼돈의 공간을 질서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인간 실존의 기본적인 양태이다.

그래서 종교 전통들은 중심을 이야기한다. 세계의 중심은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켜주고, 한편으로는 지하세계와 맞닿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성스러운 나무, 성스러운 산, 그리고 성스러운 도시들을 통해 중심의 상징을 구축해 왔다. 고대 서남아시아의 지구라트와 바빌론, 이슬람의 메카, 중세 기독교에서 십자가가 서 있는 골고다 언덕, 중국의 태산, 하늘로부터 단군이 내려온 신단수와 백두산, 황제가 천제를 지내던 원구단, 그리고 마을 신앙의 중심이 된 큰 나무와 솟대... 중심의 상징의 예는 무한하다. 중심을 통해 세계를 의미화할 때 인간은 실존할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중심의 세계관의 보편적인 경험, 엘리아데는 거기까지를 이야기한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인간 실존의 바탕이 되는 중심 상징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엘리아데의 주된 관심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심의 상징이 그리 아름답지 않으며, 오히려 냉혹하기 그지 없는 논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중심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결부된다. 중심은 필연적으로 주변을 배태하기에, 중심의 상징에는 권력의 위계가 전제된다. 여러 학자들이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겠지만(예컨대, 조나단 스미스가 "To take place"에서 천착하는 주제이다), 내가 본 학자 중에서는 찰스 롱이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고대 서남아시아, 메소아메리카, 중국, 인도,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언급하면서 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도시 전통들은 제의적 중심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권력의) 배꼽 도시(embryonic cities)로 성장한다... ...제의적 도시는 사용 가능한(effective) 공간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상징이다. 제의적 중심을 통해 성스러움을 구분짓는 것은 힘의 잉여를 승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로부터 힘이 분배되는 것이다. 제의적 중심의 힘과 권위는 도시로 이전된다. 그리하여 초기 도시 전통에서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나타난다. 도시는 힘을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중심으로부터 힘을 재분배한다. 제국주의적 원리가 초기 도시 전통에 이미 내재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이다.
("Human Centers: an Essay on Method in the History of Religion," Signification, p.69.)

고대 도시들은 성스러운 공간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세상의 중심이며, 천상의 도시의 지상적 구현이었다. 권력과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성스러움의 개념을 통해, 세계는 권력이 모여있는 중심과 중심으로부터 권력을 나누어받는 주변으로 나뉘는 것이다. 찰스 롱은 미국 흑인 종교사를 전공한 학자였고, 권력에서 소외된 흑인들이라든지 학문적 대상으로서 타자화된 비서구권에 대해 매우 민감한 감각을 가진 이였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구조와 그에서 기인한 현실적인 고통의 문제를 학문적인 저작을 통해 치열하게 탐구한 학자이다. 그런 그의 통찰이 요즘 "수도이전 위헌"이라는 소식을 접한 나에게 뼈아프게 다가온다.

중심의 상징은 세계관의 뿌리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도읍을 옮기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던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중심. 그것은 정치, 경제, 문화적인 중심이지만 동시에, 또 그렇기 때문에 남한인들의 인식 속에서 실존의 중심이다. 왜 수도이전에 대한 반감이 그리 여전한 것일까? 기득권을 뺏긴다는 위기감, 아파트 땅값이 떨어진다는 위기감. 그런 정치경제적인 이득들이 이유이겠지만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계산되는 잇속 아래에, 그것과 결부되어 있는 세계관이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악착같이 추구해왔던 그들의 삶 전체가 흔들린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천도”라는 언어가 언급되었을 때, 서울 시민들의 낯빛이 변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낯빛이 변했다는 것은 이성적 설득에 대한 면역 상태이다. 그것은 실존적 감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현 정권의 홍보가 부족했다는 질책을 많이 하는데, 홍보라는 말은 약하다. 수도 이전에는 상징 투쟁의 차원의 작업이 사실 요구되었던 것이다. 일단 옮겨 놓으면 세계관이 바뀔 것이라는 인식이 안이했던 것이다. 세계관을 뒤흔드는 세레모니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뒷북이다. 나 역시 이런 일을 예상 못하다 뒷통수를 맞은 것이기에 누굴 탓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중심의 상징이 “관습”이라는 언어로 법조문에 머리를 디밀고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도대체 상징 투쟁이라는 것을 인위적으로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일의 심각성은 지적할 수 있어도, 또렷한 대안을 내놓을 수 없기에 그저 답답해 할 뿐이다.

 



이처럼 기득권의 정서가 굉음을 내며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을 때마다, 그리고 매 선거 때마다, 나는 굉장히 감상적이 된다. 나는 너무나도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주류의 자리에서 살아온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서울 강남(지금은 서초)으로 이주해 왔다. 부모님 둘 다 부산분인 전형적인 PK 집안이다. 아버지는 김영삼 전대통령과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대기업 간부다. 나는 줄곧 강남 지역에서 성장했고, 8학군의 고등학교를 다녔고, 공부 잘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기에 과외 받고 무난히 서울대에 입학하였다. 서울대에서도 공부 잘했고, 그것도 부족해 서울대학원까지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유학와 있다. 중심으로, 중심으로 살아온 인생에 다름 아니다.
종교학이라는 외진 인문학을 택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명문 사립대가 아닌 사막의 학교에 있다는 약간의 하자를 빼고는, 내 삶은 대학민국 사회의 노른자위에 있다. (아마 그 약간의 하자만 아니라면 괜찮은 신랑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가진 자들의 우는 소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 소리가 내가 속한 집단의 소리이기에, 최근과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심경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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