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에이스 침대의 광고가 나온 것이 1993년이니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광고의 인상은 또렷하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질문에 침대를 골랐다는 일화도 여전히 생각난다. 위치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기존 범주를 교란하는 것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다. (이 글 참조)
종교라는 언어의 쓰임새를 정리하는 중이다. 내 연구의 입장에서, 종교는 담론(discourse)이다. 이 말은 종교라는 말에 어떤 본질이 내재해 있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서 따라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언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라는 말을 놓고 여러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밀고 당기기를 한다. 종교라는 말의 극단적인 혼란상은 이 밀고 당기기에서 비롯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어느 종교가 지배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고 다양한 종교가 힘겨루기를 하며 공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략을 내놓는 진영이 상당히 다양하다.
종교라는 담론을 놓고 밀고 당기는 상황을 약간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기초적인 분류와 자료수집이다. 일단 종교 담론을 놓고 행해지는 전략을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을 특화하는 전략이다. 자기의 믿음은 우월한 것이고 그래서 다른 종교들과 같은 반열이 아니라는, 에이스 침대의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배제의 전략이다. 다른 종교를 언급하면서, 너희들은 종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밀어내는 전략이다.
사실 이 사례들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나름대로 긴 사연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례 하나마다 논문감의 분석거리를 지닌다. 그래서 이 포스트에서는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을 중심으로 사례만 정리한다. 나중에 개별적인 포스팅을 통해 보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종교 정의 문제에 대한 예외적으로 진지한 인터넷 상의 논의로는 다음 글을 참조할 것: 종교란 무엇인가 )
1.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진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개신교 신학자 중 한 사람인 칼 바르트부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기독교는 계시(revelation), 즉 하느님의 말씀이지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담론은 개신교 내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것으로 삶이고 그것으로 진리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종교는 불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까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계시'입니다.... 흔히들 기독교의 창시자를 예수님으로 잘 못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수 천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예언하시고, 하나님이 그 뜻대로 이 땅에 보내시고는 만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이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기독교의 창시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가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어버이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신 계시입니다. ( http://user.chollian.net/~rjdud1/missionmatt/02.htm )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새 생명 운동입니다.종교란, 일종의 형식적 규범과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의식적 구조를 가진 종교는 날로 그 숫자를 더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 http://yeosusea.net/goodnews/goodnews29.htm )
2. 불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과학입니다.
이 역시 상당히 유명하고 오래된 담론이다. 불교가 서양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더욱 강화된 담론이다.
아직 적절한 자료를 검색하지 못했다.
3. 유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유교는 철학입니다 vs 유교는 종교입니다
이 역시 상당히 오랜 논쟁이다. 이 논쟁에서 주의할 것은 유교인 내부의 논쟁과 외부인들(주로 기독교인)의 논쟁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유교인들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첨예한 이견들이 있다. 19세기 말 캉유웨이의 공교(孔敎) 운동으로부터 시작해 얼마 전에 유교 종교선언을 한 성균관 학장에 이르기까지 유교를 종교로 체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림들은 그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유교는 인류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종교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논쟁에 대해서는 책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인터넷에서는 별로 검색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유교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말이 많다. 그것은 대개 제사라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에서 비롯한 것들이다. 이 때 이루어지는 것은 기독교 관점에서 종교를 정의하고 그 기준에 유교를 재단하는 것이다. 제사 문제에 대한 논리는 다양하다. 예들 들어, 유교가 종교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제사는 타종교의 행위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고, 제사는 미신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고 그저 전통 문화이기 때문에 기독교 안에 수용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카톨릭에서는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좋은 풍습이니까 제사지내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라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종교가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교가 어떻게 우리나라 전통 풍습입니까? 유교가 어떻게 종교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종교를 통합해라고 했습니까? (한 게시판에서 )
사실 부모를 종교의 대상으로 만든 유교입니다. 원래 유교는 학문입니다. 종교가 되려면 (1) 신앙의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2) 내세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3) 윤리도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교는 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안 유생(儒生)들이 죽은 조상을 신의 자리에 앉혀 놓고 유교를 종교의 조건을 갖추어 보려고 한 것입니다. (예은 교회, 김학현 목사 )
유교에서는 신(神)이 없는 고로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구성하는데는 기본적인 3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① 신관 ② 내세관 ③ 현실의 고등윤리를 포함하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고등윤리는 있으나 신관 내세관이 없으므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지 않고 유도(儒道)라고 하는데 즉 선비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생들은 종교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신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신이 바로 죽은 조상신입니다. 그 조상신이 복도 주고 화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무덤을 다시 단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한 설교 중에서 )
4. 무속은 종교가 아닙니다. 무속은 미신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 무속(혹은 무교)은 철저히 당하는 입장이다. 무속의 종교성 논의는 무속인들의 것이 아니라 외부인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속인이 이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자기 입장을 밝힌 사례는 별로 보지 못하였다. 배제의 전략이 적용되기 때문에, 무속은 종교 취급을 못 받는다. 기복이며 미신이다. 종교인구조사에서도 항목에 포함되지 못한다. 그래서 무속인들의 조직은 종교조직이 아닌 애매한 이름을 가진다. “전국경신승공연합회.” 승공! 정권의 눈 밖에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을 유지해야 했던 아픈 과거가 배인 이름이다. (아래 글에서 두번째 사례가 재미있다. 무속은 종교라서 욕먹고, 종교가 아니라서 또 욕먹고...)
종교에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변이 있습니다. 그런데 샤머니즘에 이런한 물음들과 답변이 있나요? 없습니다. 샤머니즘에는 신학도 구원론도 없습니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미신 신앙일지는 몰라도 종교는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런데 샤머니즘에는 천국 복음이 없습니다. 샤머니즘 세계에서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되고, 후대 사람들이 귀신이 된 자기를 내쫓기 위해 무당굿을 벌이는 일이 무한히 반복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나라도 가까운 일본, 대만 못지 않게 우상이 많습니다. 2000년 재경부의 통계에 의하면 무속인, 역술인이 98만명이라 했습니다. 아마 지금은 100만명이 넘을 것입니다. 무속을 종교가 아니라 문화라고 속이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신학교가 많고, 교회가 많다지만, 교회 수는 6만이 안되고, 교단을 초월해서 목회자의 수는 10만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한 설교에서 )
5. 증산도는 종교가 아닙니다.
증산도의 전략은 기독교의 에이스 침대 방식과 궤를 같이 한다. 차이점은 도(道)라는 전통적인 범주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증산도는 증산 상제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증산도는 왜 증산교(敎)가 아니고 증산도(道)일까요? 왜냐하면 증산도는 대자연의 이법(理法), 즉 자연섭리를 밝혀주고 이야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증산도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 대자연의 이법을 가리켜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는데요, 증산도는 바로 그 우주의 변화하는 섭리를 밝혀주는, 나아가 개벽이 도래하는 이치를 밝혀주는 곳입니다. (증산도 홈페이지)
6. 기공 수련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민감한 문제이다. 기공 단체 자신들이 종교임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이다. “종교 아님”의 자리매김이 그들의 전략이다. 단학선원의 경우처럼 과학과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자료를 찾을 수 있을텐데, 다음으로 미룬다.)
하지만 기공 수련자들에게 기공 훈련이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기공 수련을 종교의 범주에 넣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이다.
복잡한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단편적인 예 하나만 들면, 기공 수련이 종교라고 불리는 순간, “학원”의 형태로 유지되는 수련도장들은 운영이 힘들어 질 것이다. 게다가 전국 교회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엄청난 수의 기독교 수련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은 물론, 이단 시비처럼 비생산적인 논쟁에 휩쓸릴수도 있다.
중국의 파룬궁 문제는, 맥락은 많이 다르지만, 함께 생각해야 하는 사례이다. 종교로 인정되는 것이 바로 정치 탄압(지금도 행해지고 있긴 하지만)으로 연결되는 경우이다.
―중국 정부는 파룬궁을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서 파룬궁 수련자들은 단순히 기공집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파룬궁은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공이란 것은 원래 불교나 도교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불교 기공이나 도교 기공이란 말이 그러한 예가 되겠지요. 그러나 파룬궁은 불교와 도교를 뛰어넘는 기공수련입니다.”
―파룬궁의 최종 목적은 세상 사람들을 선인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조금씩 뉘앙스는 다르지만, 기독교나 공산당조차도 최종 목표는 선인 혹은 선인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파룬궁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기독교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자는 단지 아침에 기공을 행하는 모임일 뿐입니다. 기공이 끝난 뒤에는 각자 자기 일터로 갑니다.”
( 파륜궁 창시자 리훙쯔 인터뷰에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