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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안티기독교에 관한 글

by 방가房家 2023. 5. 30.

올해 초부터 이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반년 이상 도망 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후다닥 해치웠다. 내키지 않는 글은 처음부터 깔끔하게 거부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어떤 책에 한 꼭지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게 할당된 주제는 ‘안티기독교 운동’이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이 운동의 내부를 잘 알지 못하며 글을 다 쓴 지금도 많은 조사를 해보지 않았다. 내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라면 ‘공부하지 않고’ 써야한다는 이상한 지론이 있긴 한데,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준비 부족이다. 나는 글의 방향을 약간 틀어서 안티기독교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한국기독교(주로 개신교)가 욕먹는 현상이라는 좀 더 일반적인 주제로 글의 범위를 넓혔다. 조사 부족도 이유지만 그게 좀 더 대중적인 관심사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억지로 쓰는 글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어야 쓸 수 있는 노릇이기에 그렇게 했다. 

그런 준비 과정에서, 평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왜 ‘개독’이라고 불릴까요?”라는 선정적인 제목이 붙었다. 몇 년 전에 블로그에 쓴 글을 기본적인 줄기로 해서 살을 붙여서 글을 완성했다. 앞으로 출판이 되기까지는 꽤 변화가 있겠지만, 일단은 숙제를 마쳤다. 부끄럽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억지로 한 숙제에 내가 줄 수 있는 정성의 최대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한다.

 
 

기독교는 왜 ‘개독’이라고 불릴까요?: 안티기독교 운동

 
요즘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욕하는 댓글을 보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생긴 개독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널리 알려진 표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이 그렇게 불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정치적 행태를 비판하는 시위에 나선 한 신학생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기독교가 다 개독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 한국의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기독교에 대한 좋은 평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유행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넷심(인터넷 민심)의 대세는 기독교에 대한 비호감입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공개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비교적 최근, 1990년대 이후의 현상입니다. ‘안티기독교’ 운동 단체들이 활동을 개시한 것도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이에 기반을 둔 반대운동은 왜 최근에 확산된 것일까요? 이 안티기독교 운동이 나타나게 된 종교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를 통해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왜 교회가 욕먹게 되었을까
앞서 199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 현상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왜 이때부터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일까요? 전에는 교회에 문제가 없었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긴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교회의 문제는 전부터 쌓여 있었던 것이고, 다만 그것이 최근에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그 문제를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사회적 배경이 형성되었고 비판 여론이 조성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사안, 사회적 배경과 논의의 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교회 내부의 입장에서 볼 때 1990년대는 개신교회의 위기가 시작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60, 70년대에 세계적으로도 예를 찾을 수 없는 고속 성장을 했던 한국 개신교회는 90년대 이후 교세 정체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의 개신교 인구는 1960년에 62만 명(추정), 1985년에 648만 명, 1995년에 881만 명으로 엄청난 성장을 해오다가 2005년 인구조사에서는 861만 명으로 오히려 소폭 하락합니다. 성장의 중단은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고도 성장기와는 다른 교회 운영이 요구됨을 의미합니다. 마치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야 했던 것처럼, 이 시기 교회에서는 이전이라면 교회 성장 속에 묻혀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을 문제점들이 서서히 갈등의 원인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문제들은 성장을 주도해온 대형 교회를 위주로, 교회를 사유화한 형태를 보인 목사들에게 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 내부의 관행으로 묵과되어오던 것들이 이제 사회적인 상식의 기준에서 비판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시작이 된 것은 2000년경에 이슈가 된 대형교회 목사의 2세 세습 문제입니다. 당시 주요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는 신문에 기사화되어 교인들과 일반인들의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교인들 중에서는 교회 내분의 문제가 언론에 기사화되어 사회적인 비판을 받는 것에 당혹해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교회 내부의 일에 대해서도 사회적 상식에 입각한 비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교회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일부로서, 비신자를 포함한 ‘우리’의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터넷 매체가 등장한 21세기 들어 교회 문제가 공론화되어가는 속도는 무척 빨라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교회 내부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일들이 여러 번 있었으며, 최근에는 교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뉴스앤조이>와 같은 인터넷매체들에서 교회 문제가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전에는 교회 내부의 문제가 일반 사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신종교에 관련된 사건이 보도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주류 교회 내부의 문제가 이슈화되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경 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 사회 일반의 비판적 여론이 형성된 이후, 언론과 인터넷 매체에서 교회에 관련된 보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대부분은 교회에 문제점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교회의 부적절한 반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사건들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것은 이 짧은 글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사건들을 나열하는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오웅진 신부가 운영하는 꽃동네에 관련된 문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교회 재산 운영과 관련된 분규, 몇몇 대형교회의 주도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친미집회,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던 교계 집회, 김선일씨 사건을 비롯한 해외선교 관련 내용, 기독교 정당 설립, 쓰나미나 일본 대지진이 불신앙의 대가라는 일부 목사들의 부적절한 언급, 봉은사 땅밟기 등 다른 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등. 이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는 여러분들이 들어본 것도, 지나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점을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건들에서 교회는 대부분 문제의 장본인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로서는 대답하기 곤혹스러운 문제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으며, 기독교의 본질과는 다른 문제”라고 방어적인 대답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본인들에게도 그리 속 시원한 답변은 아닙니다.
이제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많이 알수록 교회에 대해 비판할 거리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교회는 반성과 개선의 노력을 보이기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리는 오만하다’는 기독교 특유의 자존심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적용되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크게 보아 개신교회가 비판 대상으로 부각된 시기는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 운동이 전개된 시기와 일치합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안티’ 운동이 유행했습니다. 이 운동의 출발은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을 독점해왔던 보수적 언론에 대하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보수 세력으로 인식되었던 개신교회에 대한 반대 운동이 ‘안티기독교’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안티기독교 운동은 특정 종교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지만, 더 큰 맥락에서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맥락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2. 인터넷 공간의 출현과 안티기독교 동아리의 형성
앞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이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특수하게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존재합니다. ‘안티기독교’ 집단이 그들입니다. 이 집단의 형성 역시 최근의 현상으로 주목할 만합니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환멸을 느끼고 나온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교회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에 자극을 받아 이에 대항하는 논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조직화되어 동아리를 구성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특이한 취향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의 개인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여기에는 인터넷의 발달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터넷이 어떻게 안티기독교인들을 결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까요?
종교에 대한 정보, 특히 특정 신앙공동체에 대한 정보는 내부적인 성격이 강해 외부에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회영역에 비해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각 교단의 입장을 반영하는 종교적 지식은 신학 교육을 통해 체계화되어 보급되지만, 그러한 이해관계와 무관한 내용은 체계화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해관계에 반하는 내용이 체계화되기는 더 어렵죠. 인터넷이 종교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때, 초기에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간의 친목을 위한 공간으로 많이 활용되었지만 점차 종교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담론의 장의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종교에 관련된 게시판은 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도하였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설전을 통해서 논리로 다져진 반기독교인들이 성장하게 됩니다. 게시판, 카페, 블로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반복되는 내용들은 어느 정도 체계화되어 지식으로서 축적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단순한 반감에서 욕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논증이라든지 종교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한 글들이 생산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형성된 종교문화는 안티기독교 운동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종교현상에 영향을 미친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기독교적 성향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측면에서 기독교 교리를 비판합니다. 우리나라의 반기독교인들의 비판의 논리는 신앙인들과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다듬어진 부분도 있고, 서양의 무신론 전통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 서양에서는 리처드 도킨스를 위시하여 과학적인 차원, 특히 생물학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학자들의 저서가 주목받고 있으며 이러한 책들은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도 활발하게 소개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기는 책 자체의 가치에 기인하는 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에 반기독교적인 관심,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합리적인 차원에서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이 강하게 형성된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컸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서양의 전통적인 무신론, 최근에 과학적 접근에 의해 강화된 무신론이 최근 한국의 반기독교적인 토양을 만나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 무신론 전통이 한국 내의 관심과 만나 수용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얼마 전 반기독교시민연합에서 무신론 광고를 개제한 일이 있습니다. 무신론 문구를 버스 광고 문안으로 게재하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습니다. 영국의 무신론 단체가 추진하고 도킨슨 교수가 지원한 버스 광고에는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이내 우리나라 반기독교 단체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에 의해 도입되어서 국내에서도 버스에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창조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라는 아이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광고가 실렸습니다. 작은 사건이지만 이 일은 우리나라의 반기독교 운동이 사회적인 활동을 개시한 것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반기독교 운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양상을 보이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반기독교 운동은 단순한 기독교 반대를 넘어서 종교법인법 제정과 같이 종교의 사회적 책무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3. 1920년대와 1990년대 개신교회의 평행이론
이제까지 우리는 최근의 반기독교적인 정서의 대두와 그것이 조직화된 양상으로서의 안티기독교 운동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1990년대 이후 시작되었고 2000년대 들어 강화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움직임이 우리 종교사에서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역사적 시점을 1920년대로 이동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강점기가 한참 진행 중인 1920년대는 삼일운동이 좌절된 시기인 동시에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조가 지식인들에게 수용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눈여겨보고자 하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지도자들이 기독교를 반민족적인 집단으로 규정하고 반대 운동을 펼쳤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회주의 단체에서는 종교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토론회를 통해서 반기독교적 입장을 선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한양청년연맹이라는 단체는 1925년 10월 25, 26일에 반기독교 대강연회를 개최하여 ‘기독교는 미신이다’, ‘현재 기독교의 해독’, ‘악마의 기독교’ 등의 제목의 강연을 진행하려다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해 12월 25일을 ‘반기독데이’로 정하고 김익두와 같은 유명한 부흥사들을 ‘고등 무당’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최근의 안티기독교 운동의 선구가 되는 움직임을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준 것이지요. 
저는 1920년대와 최근(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기독교에 대한 일반 사회의 인식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20년대 이전의 사정을 보도록 합시다. 1890년대부터 한국에 소개된 개신교는 문명의 종교의 대명사였습니다. 개신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원리를 알려주고 민족운동의 자양을 제공한 종교였습니다. 그랬던 개신교가 1920년대에는 개혁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상실하고 반종교적 태도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변화입니다. 이 시기 개신교는 상당히 보수화가 진행되었고, 반면에 교회에는 젊은 신도의 유입이 줄어들었습니다. 1920년대부터 해방까지 교회 인구는 정체되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주도하는 힘을 상실하고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만 주력하던 시기에 교회는 성장의 위기를 맞이하고 외부적으로는 반기독교적인 비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최근의 상황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970, 80년대 산업화와 성장의 시기에 개신교도 성장을 함께 하였습니다. 개신교는 도시의 성장을 상징하는 종교로서 사회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는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성장 일변도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난 반면에 개신교는 이전의 성장 원리와 신학에서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신교의 이미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대변하는 것이 되었고, 교회의 보수화와 더불어 젊은 활력을 상실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의 교세 감소는 개신교회가 사회주도적인 가치를 상실하고 오히려 사회의 발전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며, 이것이 반기독교운동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때든 특정한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반불교적인 사람, 반유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필이면 반기독교, 그중에서도 반개신교적인 사람들이 나름의 문화와 공동체를 형성하였다는 것은 종교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실입니다. 종교에 반대하는 것 역시 ‘종교현상’입니다. 무신론이 서양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특수한 종교현상이듯이, 한국의 안티기독교 운동 역시 한국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종교현상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현상을 통해서 종교와 사회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한국의 산업화와 더불어 고속 성장을 하다가 1990년대 이후 성장이 멈추게 되며 이는 교회의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주된 과제가 성장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던 시기에, 개신교회는 이전의 패러다임을 고수함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던 세력이 아니라 변화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개독’은 개신교회의 이러한 사회적 이미지 하락을 대표하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의 한 산물로 안티기독교 운동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미디어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사용 이후 교회 내부의 정보가 사회에 공유되는 속도와 범위가 확연히 증가하였고, 이는 교회의 일들이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전이라면 개인적 호오의 영역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보의 공유와 교환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하나의 운동으로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티기독교 운동은 종교가 믿는 사람들끼리의 문제가 아니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임을 잘 보여주는 종교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더 읽을거리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
블루칼라, <<신 벗어던지기>>(미담사, 2010).
필 주커먼, 김승욱 옮김, <<신 없는 사회>>(마음산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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