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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선교사 체위(missionary position)

by 방가房家 2023. 5. 30.

“선교사 체위missionary position”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는 ‘정상 체위’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이 재미있는 표현에 얽힌 사연은 다음 논문의 앞부분에 잘 정리되어 있다. Robert J. Priest, "Missionary Positions: Christian, Modernist, Postmodernist," <<Current anthropology>> 42-1 (2001): 29-46. 

논문에서 중요한 부분을 정리해 둔다.

2) 논문 저자에 따르면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킨제이 보고서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에서다. 킨제이는 미국인들이 얼굴을 맞대고 여자가 아래 위치하는 체위를 선호한다고 말하며 이것을 ‘영미식 체위’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여기서 말리노프스키(1929)가 기록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트로브리안드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달랐던 이 자세가 거의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캠프파이어 주변에서는 영미식 체위를 익살스레 흉내 내면서, 원주민들은 이 자세를 ‘선교사 체위’라고 부르며 매우 즐거워했다.”(Kinsey, 373)

1-1) 그러나 킨제이가 서술한 내용은 말리노프스키의 책(<<The Sexual Life of Savages in North-Western Melanesia>>)에 그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해당되는 내용들이 흩어져 있다. (1)트로브리안드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면서 남자가 위에 여자가 아래에 있는 성교를 조롱한다.(Malinowski, 338) (2)그들은 이 자세를 백인 장사꾼, 농장주, 관리들로부터 알게 되었다고 한다.(338) (3)그들이 (캠프파이어가 아니라) 보름달이 뜰 때 펼치는 익살의 향연. 그러나 이것이 성 체위와 관련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238-9) (4)말리노프스키는 한 커플의 약혼식 장면에서 참가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서로 기대어서 손을 맞잡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러한 방식이 곧 결혼할 연인들에게 완전히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전에 들은 바에 따르면 이것은 새로운 방식이지 오래된 풍습에 따른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선교사 방식missionary fashion’, 즉 선교사들이 소개한 새로운 음란행위immoralities의 하나인거죠.”(479)


1-2) 정리하자면 ‘선교사 체위’의 유래가 된 킨제이의 글은 말리노프스키 책에 바탕을 두되 엄밀한 인용은 아니었다. 그것은 책의 여러 요소들이 킨제이의 기억 속에서 혼합되어 다소 새로운 형태로 각색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저자는 이것을 킨제이가 ‘창조한 전설’이라고 명명하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표현의 창안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3) ‘선교사 체위’는 1960년대 들어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중요 영어사전에 등록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스페인, 독일, 프랑스 사전에도 등장한다. 현재 이 단어는 ‘정상 체위’를 뜻하는 옛 표현들(가부장적matrimonial 체위, 엄마아빠Mama-Papa 체위, 영미식English-American 체위, 남성우위male superior 체위)을 제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문용어가 되었다.


4) 용어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불분명한 출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행의 과정에서 선교사에 대한 이미지[바른생활 사나이]와 ‘정상 체위’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단단히 밀착되었다. 역으로 말하면 이 이미지의 밀착으로 인해 단어가 유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선교사와 정상 체위의 결합은 그럴 듯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개신교계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데, 다만 중세에는 성인들이 정상 체위를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른 자연스러운 자세를 규정하는 신학적인 논의를 한 적은 있다.


5) 이 내용은 어느덧 상식이 되었다. 서양의 성에 대한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남태평양 사람들은 한 체위에만 매여 있지 않았는데, 선교사들은 이러한 ‘죄지은sinful’ 행위에 충격을 받았다. 선교사들은 남성우위 체위를 사용할 것을 권하였고, 그렇게 해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 용어는 선교사들이 선호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선교사들은 다른 체위들은 죄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다.” 체위에 따라 죄스러움을 따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선교사 체위’라는 말 자체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부가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검색해 본 결과 우리나라의 성 전문가들도 이런 견해(엄밀히 말하면 신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주보는 사랑 ‘선교사 체위’ / 남성의 허리와 부부생활)


6) 이후 이 단어는 남녀의 지배관계나 (강요되는) 삶의 정상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져서 학계에서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제목에 'missionary position'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많은 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예를 하나 들면, 번역되어 있는 히친스의 책 <<자비를 팔다>>(마더 테레사를 종교 사업가에 불과하다고 공격하는 내용)의 원제가 바로 "Missionary Position"이다.

 

요컨대, 선교사 체위라는 표현은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혹은 편견)에 의해 형성되고 유행된 말로, 선교사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는 용어이다. 선교사들이 그런 것 가르친 적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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