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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음악

사의 찬미를 들으며

by 방가房家 2023. 5. 21.

얼마 전 1920년대 신여성에 대한 발표를 들으면서 윤심덕의 노래가 생각났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녀는 김우진과 현해탄에서의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한 선생님의 질문이 재미있다. "그 사람들 죽음을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렇게 죽음이 인생에서 아름다운 거라고 찬양하던 사람들인데 말야." <사의 찬미>가 김우진의 작사란 걸 생각하면, 더 할 말이 없어지는 질문이다. (게다가, 유서에 남겨져 있는 김우진의 문장, "나는 밥을 먹는 이 나라가 싫다"를 보면 그나마 동정해주고 싶은 마음도 싹 가시는 게 사실이다.)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발표 중에 딴 생각을 좀 했다. 어떻게 하면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를 파일 형식으로 만들어 내 자료로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인터넷을 뒤져 여러 테크닉을 연마하여 이 노래를 획득하였다. 언제나 그렇듯 딴 짓 한번 할 때마다 컴퓨터 실력은 는다. 이렇게 윤심덕의 노래를 생각하고 자료를 구한 이유는 그녀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 당시의 기사를 보면 디바 윤심덕의 매혹적인 이미지가 당시 사람들(특히 남자들?)에게 어떠했는지 잘 보인다.

"하늘로부터 그가 타고 나온 그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의 흐믈거리고 껑충대는 그의 모든 흠절을 넉넉히 감추어 줄 뿐 아니라 그의 목소리에 호려서 그가 출연하는 음악회마다 침을 줄줄 흘리고 따라 다니는 청년 신사들 - 그 수를 헤일 수 없다."

그런데 음악평론가 이영미의 글을 읽어보고는 윤심덕의 노래를 열심히 찾아듣게 되었다. 이영미의 설명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윤심덕의 창법을 찬송가 부르는 할머니에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926년 취입된 <사의 찬미>에서 들을 수 있는 윤심덕의 진짜 목소리를 지면으로 전달해 주지 못해서 정말 유감이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 가창 수준은, 한마디로 말하면 '할머니 찬송가' 수준이다.
우선 정확한 음높이를 견지하지 못한다. 할머니들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같은 찬송가를 부를 때 <미레도 도라라 솔도미레>로 제대로 부르지 않고 매번 음마다 소리를 끌고 꺾어 부른다. 윤심덕도 그렇다... 말하자면 트로트 부르듯 음을 끌어올리거나 끌어내리고 꺾는다.
박자는 그럭저럭 지켜나갔지만 지금 감각으로 보자면 장단을 능란하게 요리한다기보다는 서툰 할머니 합창단이 긴장하면서 노래부른듯 불안하다. 게다가 중간 몇 부분은 쉼표가 없는데도 아예 넉넉히 쉬어버린다. 한마디가 같은 길이로 되어야 하는 게 박자의 기본인데, 윤심덕은 그것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고무줄 박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여학생들이 중학교 음악 시간에만 들어가도 버려야 하는 생목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 고음에서나 음악학교에서 배운 티가 조금 날 뿐 중저음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이영미,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황금가지, 2002),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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