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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음악

다들 아는 노래만 들어있는 앨범

by 방가房家 2023. 5. 21.

정광태가 요즘 날고 있다. 독도 문제가 광풍처럼 우리나라를 휩쓸면서 “독도는 우리땅”이 연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고, 정광태 자신도 바쁘게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한 때는 외면받았던 외로운 노력이 늦게라도 인정받는 모습은 분명 보기 좋다. 지금의 초등학생까지도 익히 외우는 노래가 “독도는 우리땅”인데, 이 노래를 정광태의 앨범을 통해 들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노래의 유명세에 비해 그의 앨범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그의 앨범을 갖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길거리를 가다가 어느 레코드점이 점포정리 대처분을 하는 걸 보고 정광태의 앨범 <김치 주제가>를 천원인가 이천원인가 주고 샀다. (그 때 같이 산 앨범으로 권진원 1집 <북녘 파랑새>가 있다. 역시 희귀 앨범이다.)


별 생각 없이 산 시였는데,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선구자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창조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땅”도 그렇지만, 머릿곡인 “김치주제가”는 우리 가요사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일상적인 소재를 명랑하게 그린 노래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이야 엽기라는 개념의 유행에 힘입어 우유송이니 소주송이니 하는 노래들이 나오지만, 5공의 분위기에서 정색을 하고 김치주제가를 앨범 머릿곡에 넣은 것은 창조적인 동시에 용기있는 행동이었을 거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짠
나는 나는 너를 못잊어 짠짠짠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수 없지 입맛을 바꿀수 있나

“독도는 우리땅”이 일종의 캠페인 송의 선구라 한다면, 이 앨범에 실린 “짜라빠빠”와 “힘내라 힘”은 응원가의 선구가 된 노래들이다. 지금의 응원 레파토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이 노래가 이 앨범에 실린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정광태가 우리 문화에 기여한 정도가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가수의 앨범은 그런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노래들이 실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정광태는 그런 분위기에 개의하지 않고 우리 대중들에 필요한 음악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사랑하는 노래는 “도요새의 비밀”이다. 김치 주제가, 악어사냥, 짜라빠빠 등의 이상한 노래로 가득찬 이 앨범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이 서정적인 노래가 생뚱맞게 실려있다.
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높이 꿈꾸는 새

그 시대 언어로는 명랑 건전, 지금의 언어로는 엽기가 컨셉인 듯한 이 앨범을 갑자기 숙연하게 정리하는 이 노래는 정광태의 장인 정신을 증거해주는 것이기에 참 아름답게 들린다. 문화적인, 역사적인 가치에서 다른 노래들에 더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나는 감성적인 측면에서 이 노래의 매력에 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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