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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무스의 한국종교 서술 내용 중에서

by 방가房家 2023. 5. 17.

선교사 무스(J. Robert Moose)의 <<Village life in Korea>>의 종교 관련 부분에 대한 메모. 이 책의 번역판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주긴 했지만, 종교에 관한 내용은 의역된 것이 많아 직접 종교학 자료로 쓰기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 일부를 직접 번역하고 그중에서 특기할만한 부분을 여기에 언급한다.
이 책은 1911년에 출판되었지만, 저자 서문은 1909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기포드와 헐버트의 글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기포드 헐버트의 대표적인 글을 참고할 것) 내가 보기엔 같은 감리교 목사인 존스의 영향도 강한 것 같다.

한국 마을의 장례의식을 다룬 18장에서 눈에 익은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소경 상태에 있는 비참한 이교도들’(poor heathen in their blindness)이다.

소경 상태에 있는 비참한 이교도들(poor heathen in their blindness)을 보라.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관습의 족쇄에 묶여 있는지 보라. 또한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상복을 입고 있는지를 보라.
그러고 나서 아주 솔직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고향 저쪽으로 떠났다는 이유로 모든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큰 검은 면사(綿絲) 뒤에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우리의 엄격한 복식 규정이 이교도의 모습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 도대체 왜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을 믿는 남녀들이 사랑하던 사람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절망적인 이교도 관습의 가리개를 쓰고 있어야 하는가? 이제 기독교 여성들은 분연히 일어나 어둡고 절망적인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이 이교도 관습을 영원히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
Moose, J. Robert, <<Village life in Korea>> (Nashville: Publishing House of the M. E. Church, South, Smith & Lamar, agents, 1911), 175-76.

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소경 상태에 있는 비참한 이교도들’은 19세기의 대표적인 선교 찬송가인 “From Greenland’s Icy Mountains”(“저 북방 얼음산과”)의 한 소절이다. 이방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를 함축한 상용어로서, 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장례의식에 참여하는 한국인에 적용되었다. 여기까지라면 별 놀라울 것이 없지만, 이후의 무스의 서술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들”을 이교도라고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서양인 “우리”에게 그 화살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양 장례의 복장이나 풍습이 이교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개신교 특유의 반의례적인 태도가 한층 엄격하게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한국인에 대한 관찰이 자기 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는 점만으로도 신선하게 보인다.

한국의 마을 종교를 다룬 20장에서 종교에 대한 서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종교 정의의 문제로부터 서술을 시작하는 것은 당시 선교사 문헌의 관습적인 순서이면서도 꼭 필요한 내용이다.

이 장을 시작하기에 앞서 ‘종교’라는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전과 여러 책에서 많은 정의들을 볼 수 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정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많이 사용되어온 용어 ‘종교’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 정의는 어원론적 의미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용된 의미보다는 결국 바라보는 시점에서의 마음속에 있는 의미를 밝히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영적 영역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총체이다.(Religion is the sum total of all man's belief in a spiritual realm)
어떤 종류의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민족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흔히 말한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믿을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령(spirit)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종교가 없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보아도 그러한 사람들이 영적 영역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종교에 대해서 코웃음을 치는 교육받은 미국인들이라도 침대차의 13번 침대나 호텔의 13번 방을 배정받는다면, 혹은 13명이 참석하는 파티에 오라고 초대한다면, 이를 거절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종교의 일부이다. 이는 행운을 위해 말이 편자를 문에 걸어놓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마을 종교를 다루기에 앞서 내가 이상의 근본적인 원칙들을 언급한 것들은, 독자들이 이 주제를 넓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189-90)

넓은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태도나, 영적 영역을 강조하는 정의는 모두 헐버트 글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헐버트와 마찬가지로 타일러 종교 정의가 수정된 형태이다. 어원론보다는 당대의 시점에서 살아있는 현상을 포착하겠다는 의도는, 그 특유의 태도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마을 종교(village religion)는 순수하고 단순한 종교로, 어떤 특정한 종교 체계는 아니다. 그것은 유교라고 불릴 수도 없고, 불교도 아니며, 순수하고 단순한 주물숭배(fetichism)도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령숭배자(spirit worshipper)들이며, 정령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들의 종교에 덧붙이려는 태도를 지녔다.(191)



종교를 영적 영역(spiritual realm)으로 정의하는 데 이어, 한국인을 정령숭배자(spirit worshipper)로 파악하는 진술이 나온다. 존스, 헐버트의 견해가 수용된 서술이다. 그가 말하는 정령숭배는 마을신앙, 가정신앙, 무속 등을 아우르는 범주인데, 다만 조상숭배만은 유교로 분류하여 여기서 배제한다.

 오래된 숭배의 완고한 율법은 무지한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교육받은 상위 계층 사람들도 변치 않는 위력으로 사로잡고 있다. 기독교가 이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벌여야 할 가장 어려운 전투는 이 오래된 숭배의 율법 주위의 성채에 집중될 것이다.(199)


기독교의 가장 완고한 적으로 무속을 꼽는 것은 선교사 저술에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무스의 글에서 특징적인 것은 무속을 낡은 ‘율법’(law)에 연결시켜 공격하는 반유대교적 담론이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단락이 다소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이것은 개신교 선교사들의 ‘종교 있음’ 논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존스의 해답을 계승하고 있는 결론이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Mar's hill) 가운데 서서, ‘아테네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내가 보기에 모든 면에서 매우 종교적입니다’라고 말할”(he[Paul] stood in the midst of Mars' hill, and said, Ye men of Athens, in all things I perceive that ye are very religious.) 때, 그가 말한 것은 오늘날 한국 마을에 들어온 어떤 선교사들도 진실로 똑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203)


전에 지적한 바 있듯이, 아레오바고 법정을 ‘Mar's hill’로 표현한 이 <사도행전> 17장 22절의 내용은 옛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의 인용이다. 그런데 원래 킹제임스 성경에서 ‘매우 종교적입니다’(very religious)는 ‘너무나 미신적입니다’(too superstitious)라고 표현되어 있다.(이글 참조) 그렇다면 무스가 인용한 성경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에서 해당 부분만 수정하였거나, 킹제임스 성경의 표현을 유지하되 그 부분에서만 ‘매우 종교적입니다’(very religious)라는 표현을 사용한 ‘개정 웹스터 성경’(Revised Webster Version, 1833)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두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무스가 인용한 부분은 개정 웹스터 성경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무스의 인용은 “in all things I perceive that ye are very religious”, 개정 웹스터 성경은 “I perceive in all things that ye are very religious”.) 개신교 선교사들이 사용한 영어 성경을 조사해보지는 않았으며, 그런 연구는 아직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무스의 책에서 인용된 다른 성경 구절들을 보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207, 217) 다만 어순이 정확치는 않은 것으로 봐서는 무스가 암기한 대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문제가 되는 위의 인용에서는 ‘미신’을 ‘종교’로 수정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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