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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코마로프, "선교사와 똑딱 시계"

by 방가房家 2023. 5. 10.

먼지 덮인 옛 독서 메모를 정리하다.
식민주의와 기독교선교에 관한 대표적인 학자 코마로프의 다음 논문을 요약한 것.

Jean Comaroff, “Missionaries and Mechanical Clocks: An Essay on Religion and History in South Africa,” <<The Journal of Religion>> 71-1 (Jan., 1991): 1-17.


여기 나오는 사례들은 몇 년 후 나온 주저서, <<Of Revelation and Revolution>>에 잘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마로프의 책을 읽을 때 느낀 것은 서구의 물질문명이 소개되는 것과 기독교 선교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세심하게 분석하는 대목이 압권이라는 것이었다. 장 코마로프의 이 글에서도 그런 분석이 잘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똑딱 시계, 거울, 수로 등의 새로운 물질이 남아프리카 인들에게 어떤 상징으로 나타났는지는 흥미로운 사례들이다. 한국 기독교의 전래 과정에서 구체적인 물질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분석하는 일을 곡 하고 싶은 나로서는 눈여겨보아야 할 분석.

선교사와 똑딱 시계

코마로프는 이 글에서 상징 투쟁을 다루고 있다. 예컨대, 선교회에서 들여온 똑딱시계라는 제의적 대상을 둘러싼 다툼이 전개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문명화된 사회의 시간의 가치를 알리는 전령으로 시계가 인식된다. 반면에 아프리카인들은 시계의 종을 치는 목각 병사들의 모습이 공포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지배하기 위해 멀리 있는 왕의 명을 받아 아프리카로 들어온 척후병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의 시계와 지배자의 그림자(제국주의의 리듬). 이처럼 아프리카인들은 상징의 인식을 통해 선교의 목적을 넘겨짚고 있었던 터.
그런데 상징 투쟁이라는 논의의 멍석을 깔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종교의 영역을 세속과 분리시키고, 그 분리가 근대의 특성이라고 주장하는, 그래서 그 둘 간의 혼합은 촌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하는 학계의 인식을 파기하는 것. 코마로프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의의 수행은 근대성의 영속적인 일부분이다. 그러한 제의는 단지 시대착오적인 군소 전통의 측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일상의 명백한 도구적 행위들의 생생하고도 통합적인 측면이다(2)”. 정교분리, 종교와 세속 등은 일종의 환상이다. 더구나 이 분리는 보수적인 인물들에 의해 이용되기도 하였다. 정치적 저항이 제의적 형태를 통해 일어날 때, 보수주의자들은 그것을 전근대적 책동으로 일소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전제를 검토하는 작업은 시급히 요청된다. 사회학의 지존인 뒤르켐 아니 베버도 그 전제 검토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의 명석한 지성적 작업은 후대인들에게 헤게모니의 도구를 제공해주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선교 과정을 통해서, 제국주의가 어떻게 심겼으며 어떤 저항을 받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아프리카 땅에는 새로운 상징체계가 이식되었으며, 이 상징을 놓고 양편이 어떻게 씨름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상징 투쟁의 첫 번째 사례가 거울을 둘러싼 다툼이다. 서구인들에게 거울은 자기성찰의 매개물로서 전계몽주의의 상징이요, 빛의 전달자로서 요한복음에서의 예수의 복음의 상징이다. 광학적 이미지, 투명성, 진리의 전달. 이러한 것들이 거울을 통해 선교사들이 의도한 바이다. 거울을 통해서 형성되는 자아의 형상은 개신교적인 개인을 형성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인들에게 거울은 통치권의 침해로 인식된다. 그들은 영상이 거울 속에 갇혀 있다는데 주목한다. 혹은, 거울은 전통적으로 흑주술에서 남에게 저주를 내리는 도구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울 안에서 유럽인들의 망령을 발견하기도 한다.
두 번째 사례는 농경에 대한 인식이다. 선교사들에게 농업은 ‘사람 농사’를 의미하였다. 즉 밭갈이는 암흑에 묻혀 있는 인간들에 대한 구원의 메타포로 사용되고 있었다. 복음 전파의 맥락에서, 선교사들은 광대한 영혼의 밭을 갈아 가꾸고자 하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아프리카의 사회를 농경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는 반농-반목축의 형태로 되어 있어, 유동성을 지닌 사회였는데, 이를 선교사들은 정착 사회로 확립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세 번째로는 수로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이다. 물의 공급, 그것은 선교사들에게 있어 황무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들이 우물을 파고 관개수로를 배설하는 것은, 바로 생명의 물을 공급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하느님 복음의 선포 행위이다. 그런데 그것은 원주민들이 보기에는 힘의 행사이다. 물은 주술사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하느님에게서 빌어서 공급받는 것이다. 선교사나 원주민이나 물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대행자는 다르다. 선교사는 과학의 힘을, 원주민은 주술의 힘을 통해 하느님을 사고한다.

이처럼 원주민은 근대의 범주를 수용하되 그것을 자신의 전략적 도구로 전용(專用)한다. 의미의 상호적 작용 속에 골계(滑稽)와 같은 중층적 맥락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돈(madi)이라는 말은 전통어로 피라는 말을 그대로 끌어다가 만든 말이다. 서구인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돈이라는 단어에, 아프리카인들은 사람의 희생과 착취라는 함의를 부여하고 있다. 구원(boloka)이라는 말은 소똥이라는 말에서 차용하였다. 소똥은 전통 경제에서 중요한 자원으로서 유지와 희생적 역할과 결부된다. “아프리카인들은 언어를 통해 백인들과 논쟁하고, 정치적이고도 시적인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역설을 개척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적 복지의 불일치성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과 마찬가지의) 논리적 언번, 경험적 이성, 심지어는 신의 초월성에 대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16)".
그러므로 일상에서 종교를 떼어놓는 지금까지의 종교에 대한 연구로는 사태를 파악할 수 없다. 제의는 일상, 정치와 분리된 공간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자의적 분리와는 상관없이 깔려진 멍석에서 그 놀음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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