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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막스 뮐러의 침묵

by 방가房家 2023. 5. 6.

마쓰자와의 <<The Invention of World Religions>> 7장 5절에 대한 간단 발제. 이 부분에서 마쓰자와가 보여주는 논의 전개는 거의 바닥이다. 특히 글 마무리에 붉게 표시해놓은 대목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코멘트는 “이건 아니다”이다. 세계 담론의 출현 뒤에 있는 인과적 연결망, 그것은 마쓰자와가 책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이고 독자인 우리로서 기대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것을 찾지 못했고, 이제 와서 독자들의 헛된 기대라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세계 종교 분류에 있어 막스 뮐러가 중요한 인물로 고찰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학계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 장을 마무리하는 이 대목에서는 뮐러가 결정적인 문제에 침묵하였고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왜 굳이 뮐러를 들고 와서 이 난리를 쳤는가? 그저 그녀가 궁금해서 한 일이고 아무 성과 없이 끝났을 뿐이다.

만약 내 동료가 연구논문으로 이런 글을 발표했다면, 이론적 구도에는 동의하는데 아직 맞는 자료를 못 찾은 걸 위로하면서 힘내라고 격려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자가 출판한 책에서 그런 소리나 한다면 그것은 독자에 대한 우롱일 뿐이다. 마쓰자와 당신, 참 실망스러운 글을 썼어. 성과 없는 내용을 레토릭으로 덕지덕지 싸바르는 당신의 글을 읽어줄 시간은 없다고. 당신이 공연히 사용하는 어려운 단어들은 유학생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GRE 공부하면서 외운 걸 써먹으려는 호승심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들어. 이름이 알려진 종교학자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에서 토모코 마쓰자와의 이름은 이 순간부터 지워버렸다.

5. 두 뷔르누프 이야기
새 종교 이론에 대한 개념적 대안의 하나로 19세기 지식인들은 전통 종교인 기독교의 기원을 재구성했다. 즉,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을 구약과 고대 이스라엘에 두기 보다는 헬레니즘 세계의 토양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 중에 극단적인 것으로, 헬레니즘 세계가 인도와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그래서 기독교가 인도화되었다는 이론이 있다. 이를 통해 기독교는 덜 셈족적인 것이 되고 더 아리아적인 것이 된다. 탈셈족화(de-Semitize)와 재아리아화(re-Aryanize). 예를 들어, 릴리는 기독교 형성에 중요한 배경이 된 기원전 2세기 유대교 신비 운동이 불교 선교사들의 활동에 영향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1) 수피즘과 이슬람에 대한 앞 장의 논외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는데, 셈족적인 유대교 정통에서 풀려난 덕분에 이 신비 운동은 더욱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을 더욱 대중화시킨 사람이 자콜리오다. 그의 저작에는 히브리 문화만으로는 기독교와 같은 세계 종교의 근원을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Iezeus-Christna’라는 인도-아리안 전통이 재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2) 막스 뮐러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이런 주장들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자콜리오의 책이 어리석고 천박하고 뻔뻔하다”고 비판하였다.
 
한편 에밀 뷔르누프(Émile Burnouf)라는 인물이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원인구어처럼 원시 아리안 종교라는 것이 존재했다고 주장했으며, 여기에서부터 베다, 아베스타, 그리스-로마 전통과 기독교까지 나왔다고 하였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아리아인의 종교이고 유대인의 셈족 종교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공교롭게도 뮐러가 주창한 것과 같은 이름인 ‘종교의 과학’(la Science des religions)이라는 표제 하에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 매튜 아놀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논평을 내었으며. 막스 뮐러는 매튜 아놀드의 논평에 대해 답변한다. 그는 아놀드가 비판하는 (에밀 뷔르누프의) 종교의 과학이 학식이 없는 인물에 의한 엉터리 주장이라고 지적하고, 자신이 이야기하는 종교의 과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아놀드 씨는 뷔르누프라는 이름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는 유진 뷔르누프(Eugène Burnouf)가 아들이나 후손(successor)이 없었음을 알아야 했다.”
여기엔 두 명의 E. 뷔르누프에 대한 혼선이 있다. [이 혼선이 뮐러의 것인지 마쓰자와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뮐러는 小뷔르누프를 몰랐던 것 같고, 아놀드가 잘못된 자료를 썼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아놀드는 小뷔르누프를 제대로 인용하였으며, 小뷔르누프는 大뷔르누프의 조카로 산스크리트 문헌에 대한 어느 정도 학식이 있는 사람이다.
小뷔르누프의 작업은 전형적인 인종학적 편견을 보여준다. 그는 기독교에서 아리아인의 형이상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셈족은 해골 크기가 정해져 있어 지적 능력이 제한받는 사람들인 반면에, 아리아인들은 해골의 유연성으로 인해 지적 능력의 성장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셈족은 일신교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믿음에 배타적으로 매달리는 반면에, 아리아인의 범신론은 유대인이나 아랍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의 통일성을, 그리스도의 진정한 보편 종교를 기독교에 부여해준다. 반면에 편협한 셈족에서 나온 이슬람은 폭력으로 귀결된다.
 
뮐러는 정말 小뷔르누프를 몰랐을까? 어쩌면 잘 알면서도 언급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小뷔르누프에 대한 뮐러의 침묵 때문에, 20세기 종교 분류의 전개에 대한 뮐러의 정확한 태도를 확정지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종교의 과학과 세계 종교 담론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뮐러는 분명 각 종교들의 속성을 규정하는 당대의 문헌학에 의한 분류 논리를 승인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세계 종교 담론의 출현 뒤에 분명한 인과적 연결망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면,” 이상의 분석은 “실망스러운 성과”이며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성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울 점은 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이러한 사유의 실험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가 20세기의 새 개념 체계에 의해 뒤덮여 졌다는 것.
19세기는 종교들의 속성들에 대한 대담한 이론들을 생성하였다. 20세기에는 이 이론들이 잊혀졌다. 그렇다면, 새로운 담론의 지배에 의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애초에 공통된 특성들을 이론화하고 합법화했던 논리들이다.

1)Arthur Lillie, Buddhism in Christendom, or Jesus, the Essene (1887).
2)Louis Jacolliot, La Bible dans l'Inde, vie de Iezeus Christna (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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