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어로서의 ‘종교’라는 단어는 기독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생겨난 것이다.……메이지 정부가 서구 열강과의 외교 관계를 확립시키려 했을 때……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나 불교, 신도 등을 하나로 다룰 개념이 필요하게 되어 종파라는 의미가 아닌 ‘종교’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때가 1874년(明治7)이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종교’가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제도종교, 즉 이 책에서 말하는 교단종교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연종교를 포함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일본인이 교단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무종교’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거침없이 ‘무종교’를 표명한다고 비난받는 것도, 그 원인은 대다수 일본인의 종교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종교를 아무렇지 않게 배제해버린 당시 지식인들의 종교 감각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메이지유신 직후는 서구 문물의 수용이라는 이른바 문명개화 노선이 최우선의 당면 과제였기에 자연종교가 교단종교에 비해 열등한 종교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해버린다면 그뿐이겠지만, 만약 지식인들이 생활문화의 전통에 충실했더라면, 또한 자연종교에 대한 공감과 애정이 있었더라면 좀더 현실적인 조어(造語)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야마 도시마로, 정형 옮김, <<일본인은 왜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가>>(예문서원, 2000), 87-88.)
일본에는 70%가, 우리나라에는 50%가 ‘종교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은 ‘종교’라는 서양 언어가 무분별하게, 아니 그보다는 특정한 의도에서 받아들여져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삶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종교 개념을 갖게 된 것이다. 종교 개념에서 야기된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우리나라 학자들(아니 나는) 서구적 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본인 학자의 논조는 좀 다르다. 그는 서구적 개념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념을 수입하여 번역한 당시 지식인들이 전통적인 생활문화에 충실한, 좀더 현실적인 조어를 만들어내지 못했음을 꾸짖고 있다. 서구적 개념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제대로 된 개념을 생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할 수 있다는 것. 일본의 조어를 통해 근대를 수입한 우리와, 직접 근대를 수입하면서 성찰의 과정을 거쳤던 일본 지식계 사이의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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