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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영상

사랑의 윤회

by 방가房家 2023. 4. 14.

처음에 종교영화에 대한 어떤 글에서 불교적 주제를 갖는 영화로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을 소개한 것을 보았을 때, 난 코웃음을 쳤다.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윤회에 갖다 붙이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영화의 짜임새를 느낄 수 있었고 다소 오락적이라고 생각했던 결말도 꽤나 진지하게 다가왔다. (제작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충분히 불교적인 주제에 대해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펑츄토니Punxsutawney 마을이 사바세계로 내게 다가왔다.

 

윤회의 굴레

영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숨막힘이다. 성촉절Groundhog Day 취재를 위해 펑츄토니 마을에 간 주인공은 계속 되풀이되는 2월 2일을 맞이하게 된다. 동일한 장소에서 반복되는 동일한 시간(2월 2일 성촉절 6시)! 영화는 집요하게 이 반복을 담아낸다. 영화는 이 반복이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이 아니라, 수백 수천 번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해준다. 처음에는 흥겹게 들리던 축제의 음악이 알람 소리처럼 지루하게 들려지게 만드는 것은 영화의 효과이다. 주인공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고 있는 전지, 그리고 전능함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반복이 얼마나 무한히 경험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냉혹한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반복에 대한 영화의 집요한 묘사는 펑츄토니로 압축된 이 세계의 덧없음을 깨닫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나는 불교의 윤회설과 일체개고를 연결시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하는 바, 무한히 반복되는 세계 자체가 괴로움 자체라는 메시지가 확연히 전달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계를 큰 것으로 생각하기에 윤회를 구속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를 펑츄토니로 압축시켜 놓은 덕분에 윤회는 ‘굴레’임을 이 영화는 매우 효과적으로 말해준다.
 
 
벗어남의 추구
윤회가 굴레임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움직임이 된다. 처음에 주인공은 방탕하게 살거나, 위험에 뛰어들거나, 죽음을 택하는 극단적인 방법들을 통해 반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이 무의미함을 알고 나서부터는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그는 마을 중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도와주기 시작한다. 자비를 통해 선업을 쌓아가면서, 무언가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여자주인공(앤디 맥도웰)의 사랑을 얻으려는 노력도 진행된다. 그러나 그것은 반복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깨달음(?)
여성과 하룻밤을 지낸 후 반복의 주술은 깨어진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헐리우드식 마무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주인공의 뽀뽀 한 방으로 모든 문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미국 영화에서 반복되는 공식이다. 그러나 다시 보았을 때는 좀 더 미묘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사랑의 성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에는 자신에 대한 성찰들이 쌓여갔다. 여성과의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었으며, 해탈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이해해준 여성과 함께 보낸 밤도 이전에 존재했다. 벗어남이 이루어진 것은 그가 여성에 대한 집착, 그리고 벗어남에 대한 집착도 놓아버린 어느 시점에서였다. 그 변화가 무엇이었는지는 미묘해서 바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불교적인 깨달음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도 희박하다. 그러나 그 전환은 단순한 사랑의 힘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에 대한 모종의 깨달음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것임은 확실하다. 그래서 여성은 무언가(예를 들면 지혜)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다면 불교적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더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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