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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영상

타자의 혼성성, 중공군과 인민군

by 방가房家 2023. 4. 14.

영화 <빅 피쉬Big Fish>(2003)는 뻥쟁이 주인공의 “미국적” 무용담(혹은 신화)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은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병역기간을 줄여 빨리 약혼자에게 돌아가기 위해 위해 위험한 임무를 자청한다. 그 중 하나는 “윙 카이 탕 발전소에서 설계도를 훔치라는 비밀 임무”이고, 그는 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쌍둥이 여가수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귀환한다.

우리 입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중국에 침투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설계도를 뺏어오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기묘하게도 ‘북한군’과 대결한다는 것이다. 

 


막사 안에서는 두 북한군이 “아니 이것이 왜 이렇게 모자라?”라고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미국인이 침입하자 “너는 누구냐?”라고 외치고 나서는 쿵푸 동작을 하며(!) 달려든다. 내가 듣기로 이 엑스트라들의 한국어 대사에는 북한식 억양이 거의 없다.
기밀문서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중앙일’(미주판 중앙일보를 변형한 것일까?)이라는 제목과 ‘상가 등 은행 차압에 대한 전문’, 그리고 ‘수령자외 비밀’이라는 도장 글씨.

 

이 미국신화에서 적대적 타자인 중국과 북한은 혼재되어 있다. 왜 이런 황당한 장면이 나왔을까? 첫째 가능성은 미국 영화제작자가 중공군과 인민군을 헛갈릴 정도로 동아시아에 대해 무지했을 가능성이다. 한국에 대한 무지는 옛날에 제작된 미국의 대중문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 가능성은 제작자가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이 영화는 신화에 대한 것이다. 신화적 타자의 속성은 무차별성이다. 다양하고 차별화되는 것들이 타자라는 대상으로 묶일 때 한 덩어리가 되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엄연히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인에게는 아시아의 공산주의자라는 적대적 타자로서, 한 덩어리로 인식된다는 점을 이 영화는 꼬집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점을 알아차리는 미국인 관객이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영화 제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신화의 속성, 즉 신화가 현실을 재료로 하되 그것이 향유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신화적 문법에 의해 재배치되어 원래의 모습과는 달라진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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