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에 의해서 영화 한 편을 꾹 참고서 끝까지 보았다. 송혜교가 주연한 영화 <페티쉬>. 이상하고 이해도 되지 않는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필요로 했던 내용은 영화에서 페티시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야릇한 영화 포스터로 미루어 보거나,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실낱같은 기대 중 하나가 송혜교와 관련된 야한 장면이 있을 거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나는 이 영화에서 페티시라는 단어가 야한 용법(프로이트적 용법, 이 단어의 여러 의미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할 것)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결과 페티시는 무당의 방울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것은 19세기말, 20세기초에 선교사들이 한국 무교의 상징물, 특히 무구巫具를 영어로 표현할 때 페티시라고 했던, 바로 그 용법이다. 나는 그런 식의 용법이 지금을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 흔적을 발견하였다. 내게는 영화를 본 거의 유일한 소득이었다.
[선교사들의 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 조금 격하게 우상파괴의 대상으로 묘사된 경우: 페티시 불사르기(1906) 다소 중립적으로 사용된 경우: 존스의 글(1895) , 존스의 글(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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