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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교리

기독신보 1932년 12월 사설들

by 방가房家 2009. 1. 11.
1932년 12월 한달치인데, 이 달에는 <기독신보>의 특종이 있다. 12월 14일 “이세벨의 무리를 삼가라”는 사설이 그것. 이 사설은 이용도 목사와 (그와 관련되었다고 주장된) 신앙 공동체들에 대한 최강의 단죄이다. 여러 사람들이 언급되지만 가장 거물이자 주 타겟은 이용도 목사이다. 이 이용도 때리기는 이용도 목사의 잘못을 직접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도와 관련된 한준명, 그리고 여선지자(유명화)에 대한 비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비열한 방식이다.
“이세벨의 무리”는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표현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이세벨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논쟁 자체가 이후 교회사를 장식하는 이단 논쟁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찾아보고 정리할 예정이다.
 
 
이세벨이라는 표현에서 생각할 것들이 많다. 이 사설에서는 ‘이단의 무리’라는 뜻으로 쓰인 표현이지만, 기본적으로 이세벨은 기독교 전통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이 응축된 이미지라는 점에서 흥미가 간다. 이세벨은 구약에서 아합의 아내로 가나안 종교를 들여온 여인으로, 예언자 엘리야와 대적관계로 등장한다. 구약의 신명기사가들의 서술에서 이세벨은 철저히 ‘나쁜 년-찢어죽일 년’이라는 구도 아래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으로 서술되지만, 여성신학자들이 재발견하는 모습은 능력이 있고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여인이다. (여성신학적 관점이 소개된 글로, "이세벨 설화에 대한 여성신학적 해석"(1 / 2)을 참조할 것.)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에 이세벨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교회 내에서 주도적 운동을 펼친 여성지도자가 이세벨이라고 불린다. 이름이 원래 이세벨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대목에서 성서 기자가 구약의 악녀 이미지를 이 여인에게 적용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성서기자는 이 여인이 간음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두아디라 교회를 타락시켰다고 맹렬히 비난하고 있지만, 여성신학자들은 이 여인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여성지도자의 활동의 한 예를 발견한다. (“Women in the work of the Chruch: An exegetical contribution to the New Testament”를 참조할 것.)
기독교사를 통해서 이세벨이라는 악녀 이미지는 여성의 힘에 대한 남성 권력자들의 두려움의 표현이었고, 이 때 여성의 힘은 성적인 능력과 결부되었다. 이세벨과 간음의 연관성으로 인해, 섹스를 통해 남성을 타락시킬 수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혐오가 이 단어에 응축된다. 그 좋은 예로,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이 존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흑인 여성들은 성적인 능력이 비상하게 발달된 위험한 존재라는 백인 남성들의 성차별적인 의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 글에서 잘 설명된다.)

아래 사설의 경우, 이세벨이라는 명명의 성정치학적 함축이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논의의 여지를 남기지만, 이용도에 대해서 “스스로 성자라 하여 남녀의 무리가 한 방에 모여 밤을 새어가며 자고 먹고 하여 풍기를 문란케 하는 것들”이라고 비난하는 대목에서는 분명 성적인 함축을 사용하고 있다. 남녀가 한 방에서 지낸다는 비난이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된 근거가 박약한 비방들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같은 담론이 개신교 내에서 상대방을 타자화시키는 논리로 다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1932년 7월 6일 (제17권 제48호/제866호)
제목: 하느님과의 협동생활(四)
필자: 엠. 이. 멜른 박사
역자: 제. 씨. 구레인 박사
신자의 행실 중에 예수와 관계된 것은 교제와 협동인데, 이들은 헬라 본문으로는 같은 어근(Koinonos)에서 나온 말이다. 구주의 성찬에서 나타나는 교제란 말과 어업을 조직할 때 동모라는 말과 구원에 복된 언약에 참여한다는 말과 재산상 협동한다는 말이 동일한 본문에서 생겼다.1)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는 하면서도 자기 육신의 소유와 수입에 대해서는 예수와 상관없다는 태도, 자기의 물질에 대해서는 따로 분별하는 태도로는 완전한 협동을 이룰 수 없다.
 
 
1932년 12월 7일 (제17권 제50호/제888호)
종류: 사설
제목: 異蹟과 知慧(下)
이적은 인간 이상의 능력이며 지혜는 인간에게서 산출되는 것이다. 이적을 좋아하던 유대 사람과 지혜를 좋아하던 헬라 사람 사이에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 있으니, 현대에는 이것이 노소의 충돌, 신구의 충돌, 그리고 심하게는 복음적/비복음적, 속화파/신령파 운운하며 문제를 일으킨다. 인간 이상의 세력에 대해서는 찬송과 감사로 대할 것이지, 이적 부정론을 주장하거나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허무에 빠지지 말 것이다. 하느님 하신 일을 아니라고 단안을 내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반역이 되며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온 참지혜가 아니다.
 
1932년 12월 7일 (제17권 제50호/제888호)
제목: 조선예수교장로회 남장로파 선교40년사(四)
전라도에서의 전도 역사를 나누어보면, ①파송시대(1893-1903): 전라남북도 각지에 전파한 결과 예수의 말씀을 못들은 사람이 별로 없게 되었다. ②왕성시대(1903-1909): 1909년에 전남북 예배처소가 288곳, 교인 4592명이 되었다. ③낙심시대(1910-1912): 믿음 약한 자와 권세나 다른 목적으로 입교한 자들이 나가고 분쟁이 일어나 폐지된 곳들이 적지 않음. ④조직시대: 1913년에 노회가 조직되고 1917년에 전북노회와 전남노회가 분립. ⑤연단시대(1918-): 전에 안전치 못하던 것이 완전하게 되고 교회가 훈련을 받음.
 
1932년 12월 7일 (제17권 제50호/제888호)
제목: 平壤臨時老會撮要
이용도 목사의 소개로 평양에 와서 자칭 하느님의 묵시를 받았노라고 하며 자칭 천사라고 하여 분별력이 부족한 교인을 모아놓고 허무맹랑한 짓을 감행한 원산 한준명의 일로 소집된 평양임시노회는 11월 28일 오후 1시 평양 서문밖 예배당에 모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①이런 일은 부지중 각 교회에 만연되는 상태에 있으니 각자 조사치리할 것. ②이용도씨는 경성지방회에 조회할 것. 한준명은 함중노회에 조회할 것. 백남주씨는 원산에서 이런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 함남노회와 성경학교 이사회에 조회할 것. 황국주씨는 본노회 경내에서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북간도 용정중앙교회에 조회할 것. ③목사의 성직을 가지고 이번일에 참가한 김경삼씨는 오는 4월 노회까지 시무정지 ④전재선 목사는 의산노회로 노인믁 목사는 경기노회로 이명을 허락.
 
1932년 12월 14일 (제17권 제51호/제889호)
분류: 사설
제목: 「이세벨」무리를 삼가라 -평양임시노회 결의를 보고
근래 교회에 어려운 문제들이 있으니, 남조선 지방으로는 무교파주의의 신자들이 기성교회를 훼방하여 형해만 가진 교회라고 선전하고 다닌다. 황국주파는 북간도로부터 시작한 듯한데, 황씨가 기도하는 중에 묵시를 받아 예수께서 자기에게 사섯다하여 그를 따르는 자 중에 그를 주님이라 선지자라 부르는 이가 있으니 그 피해는 황해도 방면이 가장 심하다. 원산에서는 여선지를 중심으로 기도하는 무리가 있어 그녀가 예언도 한다고 하는데, 평양의 기도 모임에는 이용도 목사도 참가한 듯하다. 그런데 근일에는 소위 선지자라는 한준명씨가 이용도씨의 소개를 가지고 평양에 가서 어떤 여인으로 ‘새 주’를 삼고 자기는 스스로 천사라 하여 새 주를 시립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케하고 예언을 하기도 하며 방언을 통역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제 이 무리들을 ‘이세벨’의 당이라고 하고 싶다. 예전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두아디라 교회를 어지럽게 한 자는 ‘이세벨’ 당이다.2) 이세벨이 자칭 선지라하여 교회를 현혹케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무리들도 차칭 선지라 새 주라 하며 교회를 어지럽히고 말세라 하여 가사를 돌아보지 않게 하고 스스로 성자라 하여 남녀의 무리가 한 방에 모여 밤을 새어가며 자고 먹고 하여 풍기를 문란케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세벨의 무리에게 유혹을 받지 말고 건전한 믿음의 장부가 되자.
 
 
1932년 12월 14일 (제17권 제51호/제889호)
제목: 크리스마스씰을 機會로 結核病撲滅運動에 協力하라
2천2백만 조선인구 중에 약 5할이 결핵감염자이며 백만명쯤은 결핵환자라고 추측한다. 정말(丁抹)에서는 우표와 같은 크리스마스씰을 만들어 팔아 그 돈으로 결핵을 완전히 구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에는 경성제대병원 결핵병실(공설)과 해주의 홀박사 부처가 운영하는 구세병원(사설)이 있을 뿐이니, 이를 통탄이 생각한 홀박사가 정말의 박멸운동을 모방하여 씰을 발행키로 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1932년 12월 21일(제17권 제52호/제890호)
분류: 사설
제목: 기뻐할 아름다운 소식
인간으로서 누구나 이 성탄을 축하할 것인데,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인류가 기뻐하도록 들려주어 이해하도록 하자.
 
1932년 12월 21일(제17권 제52호/제890호)
제목: 크리스마스에 際하야(二)
필자: 柳禎哲
교회에서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말고 사회에도 알려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굶주린 사회를 사랑으로 채우는 사명이 있으며, 천국의 건설을 위해 헌신하는 노동의 단체이며, 그 제도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변할 수 있는 것이며, 밥 한그릇 옷 한벌이라도 나누는 법을 현실화하여야 한다.
 
1932년 12월 28일(제17권 제53호/제891호)
분류: 사설
제목: 轉換期를 當하야
금년 생활을 회고하여 실패와 미흡함을 설치 또는 복구하는 동시에 내일의 약동이 있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다.
 
1932년 12월 28일(제17권 제53호/제891호)
분류: 사설
제목: 送舊·忘年·回顧
금년에 교계에서 기뻐할 일로는 평양 숭의학교의 승격, 미국에서 개최된 노블 박사의 선교40주년 미감리회4년 총회에 양주삼, 신흥우의 출석, 브라질서 열린 세계주일학교대회에 조선 대표로 정인과의 출석, 공주 영명실업학교 신설, 평양 기독교절제회 창설, 평양 부애을 여선교사 선교 25주년 기념, 서울 노해리 선교사 선교25주년, 박람회 대전도, 도마스 순교기념예배당 창립, 평양 순천에 좌각원 창립, 경성 농민수양소 창립, 이용인 목사 교역 25주년 기념, 조선예수교장로회 남장로 파견선교 40주년, 소안론선교사 선교40주년, 이눌서 선교사 선교40주년, 라부열 선교사 선교25주년 축하 등이 있다.
슬퍼할 일로는 조선주일학교연합회 발행 주일신보와 기독교 종교교육 등이 폐간된 것, 만주 헨데손 선교사의 참화, 간도 김영국 목사 형제의 참화, 평양에 ‘새 주’ 문제로 교회들이 분주하였던 것 등이다. 또 금년에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평양의 기독교학교 위령제 참배문제였다.

1) 다음 글 참조: “코이노니아의 삼차원” http://skyboard.co.kr/sky/phpjoint/board.php?db=link87/eca8&cmd=view&key=6&page=0
2)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계2:20)

피아  06.12.09 23:49   
'악남'은 없지만 '악녀'가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네요...
예전에 들었던 어떤 수업에서 '女'가 들어간 단어 중에 그리 썩 좋은 뜻을 지닌 단어는 거의 없었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쩝..
 
 
 
房家  06.12.09 23:54   
악녀가 되는 이유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혹은 권력을 가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 씁쓸하게 합니다. 여자가 권력을 갖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나쁜 남자들'인 거죠.
 
 
 
 
 
andy  06.12.11 19:17   
구약의 제제벨 모티프는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구원사적(soteriological) 의미로 확대 재생산됩니다. 구약에서 아합왕을 꼬드겨 바알신들을 궁에 들인 제제벨은 흔히 '영적 간음'이라는 구약-신약을 잇는 모티프를 명증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흔히 순결한 결혼이라는 모티프로 제시되어지고 다른 잡신을 섬기는 것은 바람을 피우는 것, 쉽게 말하면 간통을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되죠. 제제벨이 정말 창녀같은 여자이거나 헤픈 여자는 아니었고, 그러한 혐의는 상당히 전통 신학적인 재해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房家  06.12.12 01:16   
그런 식으로 신구약간의 교차적인 해석이 가해지는군요. 저는 두 여인의 사회적 위치나 역할은 상당히 달랐다고 생각했는데, 교인들은 거의 동일하게 받아들이겠군요. 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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