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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북한산 한 절에서 있었던 만남(1891)

by 방가房家 2024. 7. 12.

성공회 초기 선교 때 있었던 불교와의 만남 이야기. 성공회 한국선교 기관지인 <모닝캄>(Morning Calm) 17(1891.11.)에 실린 글이다. 훗날 강화도 선교를 개척한 워너(L. O. Warner)가 북한산성 일대를 여행하다가 한 절에서 숙박한 체험을 담은 글이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한국 종교, 특히 불교에 대한 태도에서 다른 개신교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느꼈는데, 이 글에서 그러한 면모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의 글에서 한국종교에 관한 언급이 세 번 나오는데, 그중 그가 절에 하룻밤 묵으며 승려들과 교류한 대목이 가장 흥미롭다. 글의 일부이다.

 

워너(L. O. Warner), “불교 사원에서 보낸 하룻밤”(A Night in a Buddhist Monastery)

원문은 아래 링크의 5-9쪽을 볼 것

https://www.archivecenter.net/morningcalm1890/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79952

 

마을에 도착하니 그곳의 가장 큰 집은 큰 전각(temple)을 거느린 불교 승원(僧院, Buddhist monastery)이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승려들이 극진히 맞아주고 음식을 대접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쌀과 채소뿐이었다. 그들은 독신 생활 외에도 고기, 달걀, 담배의 사용을 금하는 것을 규율로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놓고 보면, 즉 규율의 측면에서 그들은 매우 엄격한 베네딕토 수도사들이었다. 승려는 삭발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들은 머리를 밀어버리지만 입적한 이후 자란 수염은 기르도록 허용한다. 각자 목 주위에 염주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의 외모는 일반적인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교회식과 매우 흡사한 문양의, 말총으로만 만든 모자가 특이했는데, 카울리 신부들(Cowley Fathers)이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착한 형제들은 약간 애를 써서 비싼 비용을 들여 우리에게 달걀 한 판과 막걸리 한 사발을 가져왔다. 그러나 막걸리 냄새가 지독해 우리는 그 혼합물을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조금 쉬면서 논의해 본 결과 우리가 오후에 돌아가기엔 너무 피곤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룻밤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9시 미사 시간에 맞추어 돌아가기로 했다. 승려들은 이 결정을 크게 환호하며 반겼다. 그들은 두 외국인이 온 바람에 일어날 생활의 변화의 기회를 기뻐하는 것이 분명했다.……우리는(적어도 승려들은) 7시에 식사를 했다. 많은 양의 밥과 고추와 오이로 된 다양한 반찬이 우리 앞에 차려졌다. 다만 우리는 그 낯선 혼합물을 많이 먹어 치울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우리가 자기로 되어 있는 전각에서 주지 스님과 두 고승과 함께 식사하였고, 나머지 직급의 승려들은 바깥 야외에서 먹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영어 노래 <오크의 수심樹心>(Hearts of Oak)과 <해군사관생도>(The Midshipmite)를 불러 그들을 매우 즐겁게 해주었는데, 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바람에 임의로 앙코르 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한국 노래 몇 곡을 들려주었는데, 강인한 그레고리 성가와 다르지 않았다. 마침내 큰 종이 울리자 승려들은 사찰로 돌아갔다. 그중 한 명이 긴 흰 코트를 입고, 진홍, 녹색, 노란색으로 칠한 후드를 썼는데, 우리 대학교 학위복 후드와 비슷했다. 그는 찬송, 절하기, 종 울리기로 이루어진 예배를 시작하였다.

 

-일행은 북한산성에서 1.5마일(2.4km) 정도 내려와서 마을을 발견했다. 이 마을에 있는 절이 무엇일까? 조사 중이다. 북한산 승려들을 총 책임지는 승려를 만났다고 한 언급이 참고될 듯하다.

 

-저자는 “temple”“monastery”를 구분해서 표현한다. “temple”은 대웅전처럼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고, “monastery”는 수행공동체의 거주 공간이다. 그리고 사찰을 나타내는 대표 용어는 “monastery”이다. 다른 교단에서는 보지 못한 표현이다. 성공회 선교사는 사찰의 핵심을 신앙 대상을 모시는 것보다는 승려(수도자)의 공동체로 파악하고 있다. 수도원 전통이 있는 성공회 특유의 시각이고, 불교에 대한 타당한 접근이기도 하다. 이후 다른 글에서도 이 단어는 유지된다.

 

-승려를 기독교 수도사에 비교한 표현들에서 친근감이 한층 진하게 나타난다. 한국불교의 규율을 말하면서 엄격한 베네딕토 수도사들같다고 하였다. 모자를 설명하면서 성공회 수도조직인 카울리 신부들”(Cowley Fathers=Society of St John the Evangelist)을 언급하였다. 한국 승려의 노래는 그레고리 성가를 떠올리게 하였다. 이보다 더한 친근감의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호의에 호의로 화답하는 분위기이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영국 노래를 불러 저녁에 화답하였다. 부른 노래가 성가가 아니라 영국 해군 군가라는 것도 흥미롭다. 분위기가 좋았는지 앙코르 공연도 하였다. 이에 승려들도 노래로 화답한다. 그레고리 성가 같은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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