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부부가 1895년, 1896년에 여름 휴양지로 간 곳은 관악산(삼성산) 삼막사였다. 서양인의 바캉스 개념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그들이 초기에 택한 휴양 장소가 절이었기에 선교사와 불교의 흥미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다음은 유진 벨의 기록이다. 다음 긴 기록에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그들은 템플스테이가 아니라 휴양을 간 것이다.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막대한 준비물을 가져갔고, 한국인 짐꾼과 하인이 동반되었다. (2)절을 선교사 숙소로 개조하기 위해 꽤 품을 들었다. 가람 훼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어떻게 개조했는지는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3)절은 종교공간이 아니라 휴양지였다. 거기서 행해지는 예불/우상숭배는 휴식에 방해되는 일일 뿐. 그래도 묘한 공존이 이루어져 선교사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1895.5.26.
도시에서 10마일 떨어진 절에 오후 2시 반경에 도착했고, 앉아서 조금 휴식을 취한 후에 점심 바구니를 열어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거기에 밥도 덤으로 먹었는데, 그것이 스님이 우리에게 베푼 정성들인 식사였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다른 음식들은, 기름에 튀긴 해초, 짠지, 채소 대용의 잡풀, 매운 고춧가루를 넣고 구운 콩, 그리고 그들이 밥과 함께 먹는 아주 매운 소스 등이었다.
이곳이 우리가 6월 15일이나 아니면 7월 1일에 와서 한 5주간이나 두 달쯤 머물 절이다. 전킨 씨가 이곳을 한 달 전쯤에 돌아보았는데, 그의 탐방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았었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원했다. 오늘 성공적으로 드류 부부, 레이놀즈 부부, 그리고 전킨 부부가 각각 쓸 사방 8피트짜리 방 세 개와, 세 벽이 막힌 35피트 길이에 20피트 넓이의 커다란 방 하나를 확보했다. 큰 방을 분할해서 한쪽은 부억으로 쓰고 다른 쪽은 식당으로 쓸 계획이다.
우리가 본 방들은 하나를 제외하고는 한국인들이 쓰던 방인데 깨끗하거나 시원스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스님으로부터 앞쪽 현관의 일부를 11피트 길이에 8피트 폭으로 막아서 로티와 내가 쓸 방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받았다. 문과 창문 등을 설치하는데 2불 내지 3불 정도밖에 들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이 방은 땅바닥에서 5피트 올라와 있고 내다보는 풍광이 아주 좋다. 이렇게 완벽히 편안하고 건강에 유익한 장소에 머물게 될 기대로 아주 만족해 있다. 산이 높아서 말라리아는 없다고 생각한다. 듣기로는 여기에는 모기도 없고, 심한 운동을 하지 않는 한 여름에도 많을 흘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곳은 제물포로부터 20마일 되는 곳인데, 사방으로 멀리까지 열려 있는 시골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강이 보이고 바다까지도 또렷하게 보인다.
나의 한 가지 주요 난점은 15야드 떨어진 절의 본체에서 스님이 우상을 섬길 때 내는 소음이다. 종을 울리고, 향을 피우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길게 중얼거리는 것을a singsong rigamarole 저녁에 어두워질 때와 새벽 동이 틀 때 15분 내지 30분을 한다.
거기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모두를 사람의 손으로 옮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들 그렇게 하듯 로티와 나는 우리가 쓸 매트리스를 가지고 가야 하고, 공동으로 필요한 취사용 스토브, 부억기구 접시 등을 가져가야 한다. 접시는 각자 책임지기로 했고, 여자들이 일주일씩 교대로 살림을 맡고, 살림 담당자가 그 주일 식탁보를 책임지기로 했다. 레이놀즈 부인과 전킨 부인 그리고 드루 부인은 각각 유모가 따라간다. 우리 집 조리사와 전킨 씨의 조리사를 데려가고, 사람 하나를 고용해서 고기, 계란, 채소 등을 도시로부터 날라 오도록 할 것이다. 우리 보이boy를 데려갈 가능성도 있다. 각자의 하인들 외에 공동으로 부리는 하인들의 임금과 다른 모든 필요한 경비는 동등하게 나눌 것이다.(144-145)
어두워질 즈음 절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스님이 우상 앞에서 기도드리는 절차를 흥미 있게 관찰했다. 나는 자주 불교에 대한 것을 읽고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불쌍한 이교도가 눈이 멀고 무지해서 우상 앞에 절하고 단조로운 어조로 숨 가쁘게 읊어대는 소리로 신들의 이름을 연속적으로 불러대는 모습이 그것을 지켜보는 나를 더할 수 없이 우울하게 만들었다.(147)
1895.6.26.
저희가 머무는 곳을 불교 사찰이며, 사찰에 속한 건물이 조금 더 있는 것과 사찰 주변에 늘 있는 집 몇 채를 제외하고는 수 마일 내에 다른 집이 없습니다. 가능한 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 세상에서 될수록 멀리 떨어진 곳에 사찰을 짓는 것이 불교적 사고인 것 같습니다. 드루 의사를 제외한 저희들이 쓰는 방들은 본래 사람들이 살던 방이지만, 드루 의사가 주지스님에게 금화 10불을 주고 법당 하나에서 우상들을 모두 옮겨내게 해서 그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로티와 저는 한동안 저희 방을 그들이 쓰게 내어 주고, 저희는 법당의 다른 편, 미스 데이비스가 쓰던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편지는 이교도의 사찰에서 그들이 내가지 못한 큰 나무 우상 하나가 제 머리 위에 있는 방에서 쓰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교도들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낍니다. 스님이 하루에 두 번 법당으로 들어가서 우상 앞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밤마다 그 일로 하루를 마치고, 매일 새벽 그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예배는 우상 앞에서 절하고, 염불을 외우고, 종을 치고, 북 비슷한 것을 쳐서, 마치 잠자는 신들을 깨우는 듯이 합니다. 저희들은 매일 아침 식사 후에 대청마루에서 기도회를 하는데 레이놀즈 씨와 전킨 씨가 한국말로 인도합니다. 모든 하인들이 기도회에 참석하고, 종종 네다섯 명의 스님과 또 다른 사람들이 주위에 둘러서서 저희들 하는 일을 보고 듣습니다.(181-182)
로티 벨의 편지에선 유진과 동일한 일정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준비물에 대한 내용도 상세하다. 로티는 천도재로 보이는 절 행사를 자세히 기록했다. 그가 가진 개념은 주로 ‘우상’이었지만, 그래도 우상숭배 구경을 중요한 기억으로 지녔다.
1895.6.17.
수요일 산에 갈 때, 너무 더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아침 5시경에 출발하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이런 저런 것들을 위해 보통 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산으로 떠나는 일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생활에 필요한 일체를 챙겨가야 하는데, 의자, 취사도구, 그릇, 침구 등등 모든 것을 일일이 짐꾼들이 등에 지고 날라야 한다. 전킨 부인이 스토브를 가져가고 부억기구와 식료품은 나누어서 챙겨간다. 우리는 식탁용 의자, 간이 의자와 고리korie, 화장대와 세면대용으로 한국식 접는 상 하나, 삼단 경대, 매트리스 하나와 침대를 세울 다리들, 내 흔들의자, 해먹, 큰 양철 세면기와 물을 나르기 위한 양동이 두 개. 구정물을 담기 위한 기름 깡통 하나, 발 닦을 대야 하나 등을 가져간다. 맹세계가 조리사로 가고, 전킨 씨네 조리사 서너미Su Numi는 그를 돕는 보조 겸 웨이터로 동행한다. 우리 집 문하인은 집에 남아서 집을 지키고, 선건아Sun Gumi는 우리가 산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한 특별히 맡겨진 일 없이 월급의 반을 주기로 했다.(147-148)
1895.7.11.
절에서 붓다를 깨우려고 징을 치고 종을 울리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의 사제들에게 “너희 신이 잠이 들어 깨워야 할 것인가”하고 비꼬아 말한 것을 기억하게 된다.(164)
절의 큰 행사. 천도재인 것으로 보인다.
저희는 절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행사" 하나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외국인들 중에 극소수 외에는 경험하지 못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행사는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지만 그 전날부터 사람들이 산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금요일 아침 식사 시간쯤에는 아주 큰 인파가 모였는데 대부분 여자들이었습니다. 한 죽은 "양반"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행사였습니다. 10불에 해당하는 2만 푼이 행사비로 지불되었습니다.
종이로 만든 꽃들로 절이 장식되었고, 수많은 등이 안마당에 걸렸고, 안마당으로 의자 하나를 가져있는데, 죽은 "양반"의 혼이 거기 모셔졌습니다. 하루 종일 그들은 마당을 돌고 북을 치고 기도하고 잠을 잤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소음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유진과 저는 도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나 보려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저희 눈앞에 들어온 광경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지만, 그것을 묘사할 능력이 제게 없습니다. 큰 절은 활짝 열려있고, 희미하게 켜진 촛불에 금도금한 부처의 상이 비추이고, 절 건물 뒤로는 큰 산이 어둡게 서 있는데,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불에 비쳐 유령처럼 보이는 한가운데에서 두 스님들이 바라를 치며 춤을 추고 다른 스님들은 주문을 외우고, 끔찍한 소리로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너무도 괴이했고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은 아프리카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었습니다. (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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