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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것의 시대

by 방가房家 2023. 6. 4.
아래는 최근 탈종교 상황을 개괄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쓴 글이다. <기독교 세계> 2020년 2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쉽게 쓰겠다던 애초 생각은 금방 헝클어져 여러 주제가 섞여 들어갔다. 방향이 여러 갈래이니 쉽게 읽히기는 글렀다. 아울러 한국의 무종교 인구에 관해 더 정리된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종교적인 것의 시대

필자는 수년간 대학에서 종교학 교양 수업을 강의하고 있다. 종교와 무관한 국공립대학의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들을 통해 종교에 대한 한국 사회 일반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2015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는 44% 정도이고, 20대의 종교인구는 35% 정도이다. 필자가 강의실에서 체감하는 바가 통계와 비슷하다. 요즘 대학생 중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학생은 열 명 중 세 명 정도이다.
십 년 전만 해도 종교학 교양 수업 담당 교사는 기독교인 학생들에 은근히 신경을 썼다. 신앙생활을 하던 학생들이 다종교 상황을 전제하는 종교학의 언어를 오해하거나 이에 상처받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업에서 신경 써야 할 대상은 종교가 있는 학생에서 종교가 없는 학생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학생들은 종교에 별반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종교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임을 설득하는 것이 수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다시 말하면, 십 년 전 종교학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자기 신앙의 틀을 넘어서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고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면, 요즘 종교학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종교가 우리 삶에서 중요하고 인간 이해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면서 한 학기가 시작된다. 학생들이 달라져 생긴 수업 기조의 변화이다.
최근에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가 많고, 이와 더불어 우리가 사용해온 종교 개념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 할 여지도 크다. 이 글에서는 최근 변화와 관련해 종교에 대해 새롭게 생각했으면 하는 것들을 말하고 싶다.

종교는 축소되고 있는가?
종교는 쇠퇴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의미가 합쳐져 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었는가? 종교가 갖는 위상이 하락하였는가? 종교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축소되었는가? 잘게 나누어 논할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큰 맥락에서 뭉뚱그려 논하도록 하겠다.
최근의 종교 지형의 변화와 관련해 ‘탈종교’가 많이 언급된다. 뒤에서 살피겠지만 이 변화는 분명 존재하며 탈종교를 말한 근거도 있다. 하지만 이를 논하기에 앞서 ‘종교의 쇠퇴’가 꽤 오래 전부터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종교의 쇠퇴는 근대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지식인에 의해 언급되었다. 다수의 지식인이 과학의 시대에 종교의 자리가 축소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20세기 중반 사회학에서 제시된 세속화 이론이었다. 현대 사회가 진행될수록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이 줄어들고 사적 영역으로 축소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종교 현실은 이론과는 달랐다. 1979년 이란의 독재정권 타도가 이슬람 혁명의 형태로 이루어졌고, 제3세계에서 오순절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성장이 계속되었고, 미국에서는 기독교 우파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서양 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종교는 건재했다. 공적인 영향력으로나 수적으로나 축소를 실증하기 쉽지 않다. 세속화 이론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21세기 들어서 언급되고 있는 탈종교 경향에 대해서도 섣불리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로부터의 대규모 이탈과 같은 현상으로 아직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종교의 실제 양상의 변화보다는 ‘종교를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이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최근에 탈종교 현상을 지적하는 기사에서는 인구총조사를 인용해 2005년에 53%였던 종교인구가 2015년에 44%로 감소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십년 사이에 10% 가까이 줄어든 것은 분명 설명해야 할 큰 변화인 것은 맞다. 그러나 조사 방법이 다른 2005년(전수조사)과 2015년(표본조사)의 수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이를 차치하더라도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인구총조사에 종교 항목이 처음 들어간 1985년에 종교인구는 43%, 1995년은 50%, 2005년은 53%, 2015년은 44%이다. 이렇게 보면 2015년 수치는 감소로 볼 수도 있지만 1985년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다소간의 진폭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비율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이전의 통계가 없어 수치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1985년의 종교인구 43%는 그 이전의 종교인구 증가, 특히 폭발적인 개신교 인구 증가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의 자료를 보면 기독교 인구는 그리 많지 않았고 불교 인구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다수의 한국인에겐 종교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종교 인구가 점진적으로 줄었다는 것은 정확한 진술이 아니다. 적어도 통계적으로 말한다면 종교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가 최근에 다소 조정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 우리가 흔히 무교(無敎)라고 부르는 이들은 어떤 사람인가? 과거 서양에서 무교는 무신론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유신론(theism)이 아니면 무신론(theism)이라는 단순한 분류는 현재 서구 사회에서도 적절성을 잃은 것이어서 요즘은 ‘소속된 종교 없음’(unaffiliated)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한국의 경우 무교는 더욱더 무신론으로 단순화될 수 없다. 한국인은 대부분 유교식 장례를 치르고 해마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등 사상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유교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필요할 때면 절을 찾고 무당을 만나 점을 친다. 특정한 교회나 성당, 절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다수의 한국인은 죽음과 같은 삶의 어려운 문제에 관해 유교, 불교, 무속이 복합된 전통 종교문화로부터 길러낸 해답의 체계를 공유한다.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들은 소속 종교는 없지만 충분히 ‘종교적’이다. 절반 넘는 사람이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아서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특이할 정도로 높은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신론으로 이해될 사안이 아니라 우리의 종교적 성향을 적절히 포착해낼 종교 개념의 부족함의 문제이다.

이어지는 것과 변하는 것
근대와 기독교 선교 이후 한국의 종교 지형은 급격히 변했지만, 과거로부터 연속성을 갖는 종교문화의 기저도 상당한 힘을 가진 채 존재한다. 절반이 넘는 무교는 이러한 기저의 존재로 설명되어야 한다. 최근의 종교문화 변화를 설명해야 하는 이 글에서 과거 이야기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 것은 최근 변화가 이 기저를 빼고 이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21세기 이후 종교문화의 변화는 상당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종교를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으로 경험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선 1990년대 이후 종교계, 특히 개신교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누적되어 최근에는 ‘개독’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반기독교적, 반종교적 정서가 인터넷 상에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종교 유무를 떠나 젊은 세대가 이런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더불어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무신론 전통이 상당히 소개되어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의 종교문화가 글로벌하게 연동되어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그러나 기성종교의 권위가 약화되는 다른 한편에서는 삶의 의미,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몸짓은 이어지고 있다. 피로사회와 위험사회에 시달리는 한국인은 강하게 ‘힐링’을 희구한다. 경쟁에서 자아의 의미를 상실한 젊은 세대는 ‘자존감’ 회복을 갈망한다. 이러한 의미 추구는 이전이라면 종교 영역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궁극적 가치가 문화적 장에서, 경제적 장에서 소비되고 있다. 종교라는 말은 외려 거추장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서양에서 유행하는 말인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not religious but spiritual)는 이러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종교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한 종교학자가 “종교, 종교들, 종교적인”(religion, religions, religious)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 세 단어의 병렬은 종교 세계의 판의 변화를 적절하게 요약한다. 이들을 키워드 삼아 변화의 추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종교의 시대’이다. 한 문화권이 단일한 종교의 지배를 받은 시대가 있었다. 하나의 종교가 제시하는 해답을 추구하는 시기이기에,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단어로 충분했고 굳이 타자의 종교를 인식하지 않던 시기이다. 둘째는 ‘종교들의 시대’이다. 다른 종교들과의 공존이 불가피해진 현대의 상황이다. 한국 감리교 전통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기도 한 다종교, 다문화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셋째 시대는 ‘종교적인 것의 시대’이다. 성스러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 영역 바깥으로 확산한다. 이제 인간의 종교적 갈망은 제도 종교를 벗어난 곳에서도 추구된다.
종교, 종교들, 종교적인 것의 시대는 시간적 추이를 따른 단계이지만, 상당히 중첩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종교적인 것의 시대로의 전환을 목도하고 있지만, 아직 교회 내에서는 과거 단일 종교의 시대에 통용되던 언어로 사유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사회에 세 가지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 겹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적인 것의 시대로의 전환은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다. 통계적으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줄어든다고 해도 종교적인 것의 추구는 여전할 것이고, 교회는 이 흐름에서 종교와 교회 개념을 새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강한 경계를 갖는 교회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보기에 ‘가나안 성도’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많은 신자가 모이는 건물로서의 교회보다는 유동하는 생각의 흐름이 긴요하게 머무는 문화적 거점으로서의 교회가 요청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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