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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인디언 기우제

by 방가房家 2023. 6. 4.
“인디언 기우제”는 작년 말의 유행어이다. 유시민 작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한 표현이다. 죄가 있어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고 믿고 뭔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 수사를 들이미는 것을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고 불렀다.(2019년 12월 3일 알릴레오) 이 표현은 호응을 얻어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올해 초에는 진중권이 “비는 기우제를 드리자마자 주룩주룩 내렸다”라고 되받아치면서 뜻이 더 혼탁해졌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란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 결국 비가 온다는 뜻이다. 나는 검찰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에 동의하지만 이 표현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인디언을 무도한 검찰에 빗댄 것은 인디언의 명예훼손이고, 인디언이라는 한 무리의 사람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1. 정확히 표현하면 인디언 기우제는 호피족의 기우제이다. 유시민은 이 표현을 한 심리학 책에서 보았다고 했는데, 그 책은 아마 고영건의 <인디언 기우제>(정신세계원, 2007)인 것 같다.(같은 저자의 비슷한 책은 여러 권 있다.) 고영건의 책에서 호피족 사례는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간단히 확인해보았다.

2. 로버트 머튼의 책(On Social Structure and Science, 1996)은 북미원주민이나 호피족에 관한 책은 아니고 사회학 이론 논문을 모은 책이다. 이중 호피족 사례를 언급하는 글이 한 편 있는데 1949년에 쓴 “명시적 기능과 잠재적 기능”(Manifest and Latent Function)이다. 호피족 기우제의 명목상의 기능은 비가 오게 하는 것이고 이는 미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의례의 진정한 기능은 기후학적인 조절이 아니라 집단이 의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유대에 있으며,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잠재적 기능이다. 얼핏 보면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행위에도 사회적 기능에 내재해 있다는, 기능주의적인 해석이다.
머튼이 특별한 인용을 하지 않아 무슨 연구를 근거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미국 사회학자, 인류학자 사이에 잘 알려진 사례를 갖고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또 꽤 오래된 글이라 최근의 연구에서는 이 의례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3. 심리학자 고영건이 2004년에 쓰고 2007년에 개정된 책에서 “인디언 기우제”는 책 처음에 짧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를 제공하는 사례로 인용된다. 책 처음에 다음과 같은 제시문이 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 그들에게만 유독 영험한 레인메이커가 있어서일까?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이 제시문만 읽으면 저자의 의도를 오해하기 쉽다. 인디언은 무지몽매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주술은 과학적 근거 없는 트릭이라는 편견이 겹쳐져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쉽다. 지금 유행어 ‘인디언 기우제’가 담고 있는 것은 딱 그 정도의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머튼의 사례를 받아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그는 호피족이 사는 애리조나 고산지대의 자연환경을 설명하며, 이들이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활용하는 법을 아는 이들임을 말한다. 적은 양이지만 꾸준히 비가 오는 기후이기에, 그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기우제를 지내면서 버티는 한, 반드시 비는 오기 마련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그들이 사막에서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는 최상의 비결이다.”(8-9) 이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앎과 연결된 지혜로운 차원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적 믿음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와 관련된 사회적 믿음이다. 저자는 이를 “삶에 단비가 필요하다면”이라는 예쁜 제목을 달아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해 논한다.

4. 인디언이 무식해서, 의례가 기만적인 것이기 때문에 비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반대이다. 비가 올 것을 알기에, 그 믿음을 행위로 유지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낸다.(호피족의 비의 의미와 카치나에 대해서는 이 글을 볼 것) 나는 이 오해된 표현 때문에 한국인이 인디언에 대한 무지의 역사를 이어가는 결과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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