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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종교의 짜장면

by 방가房家 2023. 6. 1.

1.
내 입맛은 전형적인 한국식은 아니다. 매운 것 잘 못 먹고, 김치 많이 안 먹고, 특히 국이나 찌개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이런 입맛은 미국 가서 생활할 때 편하게 작용하였다. 예외적일 때를 제외하고는 국 없이 밥, 고기 반찬, 김치, 그리고 물(때로는 콜라!),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래도 가끔 한국 음식을 그리워했다. 내가 그리워한 한국 음식은 된장찌개가 아니었다. 가장 생각났던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나는 미국 있을 때 중국 식당에 참 많이 갔는데 물론 거기엔 짜장면은 없다. 그 다음 생각난 것은 돈까스였다. 돈까스가 포크 커틀릿(pork cutlet)의 변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미국에서는 폭찹(pork chop)은 있어도 돈까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끔은 한국의 빵집에서 사먹던 단팥빵, 곰보빵, 고로케(그리고 가끔은 대보름) 등의 빵들도 생각이 났다. 그러한 종류의 빵들은 일본의 빵집에서 발달시킨 동아시아적 빵 문화에 속한 것들이다. 미국에서 보기 힘든 빵들이며 가끔 일본인이 운영하는 빵집에서나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리워했다는 이 음식들을 한국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근에 우리 음식문화 안으로 들어온 것들이며, 그 안에서 토착화되어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이러한 토착화라는 주제는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과 통하는 것이다.
혹자는 요즘 내가 먹는 꼬라지를 보고서 내 입맛이 미국 생활에 영향을 받아서 서구적인 것이 된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2년 반이라는 기간이 입맛을 바꾸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서구적’이라는 말이 주의를 요하는 표현이다. 내 입맛이 전형적인 한국 입맛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서구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은 하겠지만, 그것은 서구인들이 하는 식이라는 의미에서의 ‘서구적’이 아니다. 요는 우리가 생각하는 서구적이라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 하는 식과는 거리가 있으며 우리의 인식 속에서 구성된 서구라는 점이다. 비엔나에 비엔나 커피가 없고, 인도에 카레가 없듯이, 돈까스와 곰보빵을 먹는 서구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2.
석사 때 나의 주제는 혼합현상(syncretism)이었고, 이에 맞는 음식으로 제일감으로 떠오르는 것은 비빔밥이다. 그러나 혼합적 상상력이 요리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요리들이 관련되어서 이야기될 수 있다. 그냥 섞는다는 것에만 주목하면 비빔밤과 더불어 섞어찌개(비슷한 음식인 부대찌개는 아래서 이야기할 외부의 것의 수입과 수용이라는 주제에 관련된 음식이기도 하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 종교가 외부의 여러 전통들을 결합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멜팅 팟(melting pot)과 연장선상의 은유로 샐러드 종교(salad religion)이라든지 카페테리아 종교(cafeteria religion)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곤 하는 데, 이러한 표현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종교에서 섞음의 주제를 강조하는 음식 은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혼합의 창조력을 이야기할 때, 여러 재료들을 선택해서 새로운 조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레비-스트로스가 이야기하는 브리콜뢰르(bricolage)의 상상력에 주목할 때 다른 음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재료를 직업 골라서 주방장에게 요리해줄 것을 주문하는 스웨덴식 부페, 스뫼르고스보르드(Smörgåsbord)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예가 어렵다면, 요즘 베트남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월남쌈을 비슷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혼합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음식들이다.

3.
박사과정 이후에 주목하는 주제는 혼합과 관련이 되면서도 좀 더 폭넓은 주제로, 외래 종교의 수용과 정착, 신학적인 용어로는 토착화에 관련되는 주제들이다. 내 경우 동아시아의 맥락에서의 기독교가 주 관심사이다. 외부의 종교가 다른 문화의 맥락에서 어떻게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중국 음식이 한국에 들어와 짜장면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창안해낸 상상력과 관련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글이 있다. 맑음님의 “한국기독교는 짜장면인가?”라는 글이다. 글 전반에 걸쳐 동의하는 부분이 많지만, 지금 이야기에서 필요한 부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짜장면은 중국인을 위해 만든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어 전적으로 한국 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제품임을 생각할 때, 그것은 중국 상표가 붙은 한국 음식문화의 일부라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문화적 위치를 짜장면에 비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래하고 서구에서 발전되어 한국에 전래된 외래 종교임이 분명하지만, 한국에 들어와 2백여 년의 역사를 지내는 가운데 한국 사회와 문화 속에 깊이 동화되어 이제는 서구의 기독교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한국 종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어떤 의미에서 한국 종교인가를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우리 음식이 된 짜장면에 대한 고찰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의 유비는 종교현상을 설명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특히 음식에 대한 기술과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도움이 되는 현상과 언어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외래의 것을 수용하여 새로운 것을 담아내는 틀거리로 삼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 요즘 유행하는 여러 퓨전 요리들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내가 요즘 주목하는 것으로는 오무토 토마토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오무라이스들이 있다. 자세한 분석은 다음에, 충분한 시식 후로 미루도록 한다.
내가 공부하는 것을 간단히 표현한다면, 석사 때는 종교의 비빔밥이 내 전공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종교의 짜장면을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4.
짜장면을 먹는 그녀는 아름답다.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한예슬)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나 역시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한예슬이 망가져가며 짜장면을 먹는 게 웃겨서가 아니다. 이 드라마를 통하여 짜장면 상징체계가 아름답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상실이라는 기억 상실 이후 새로이 형성된 제2의 자아를 대표하는 것은 짜장면(여기에는 짜장 라면, 특이하게도 오뚜기 <짜장파티>가 포함된다)이다. 고상한 취향이 그녀를 덮어씌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실이는 감각을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것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 짜장면, 막걸리, 전기담요, 고스톱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한다. 짜장면은 이 세계를 대표한다. 짜장면을 끊는 것은 장철수를 끊는 것에 다름 아니며, 결국에는 뜨끈뜨끈한 전기담요에 눕듯이, 짜장면을 다시 시키고 장철수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흥미롭게도 이 짜장면 상징체계는 이 드라마를 미국의 원작과 차별화시키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말의 마지막회를 앞두고, 상실이가 안나로 돌아오면서, 짜장면 상징체계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세계가 붕괴될 지, 안나라는 새로운 세계와 융합할 지 숨막히는 선택을 남겨두고 있다. 14회는 무정하게도 다음 회 예고도 제공하지 않은채 안나가 눈뜨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아, 이번 주에 할일도 많은데, 안나와 상실이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 가슴이 떨려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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