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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

얼굴과 이름은 다를지라도 여전히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by 방가房家 2023. 5. 31.
캐리비언 베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카리브 만에 있는 서인도 제도에 있는 나라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그리 익숙한 이름들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 지역에 혼합현상(Syncretism)의 중요한 사례들이 있다. 이 지역은 노예 무역을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강제로 이주된 곳이다. 아프라키에서 온 노예들은 전통 문화를 몰수당하고 기독교를 강요받았다. 예를 들어 1685년의 아이티 흑인법에 따르면, 노예들은 도착한 지 8일 이내에 의무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전통 신앙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아프리카인들은 기독교의 외피 안에 전통 신앙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행태의 종교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들은 가톨릭 성인들에 아프리카 신들을 겹쳐 놓고 숭배하였다. 가톨릭 축일을 통해 서로 모일 기회를 찾았다. 혹독한 대우 속에서, 그들은 가톨릭 신앙을 이용해 단결을 모색하고 위안을 얻었다. 쉽게 말하면, 가톨릭 성인들의 성화를 앞에 놓고 실은 아프리카의 전통 신을 추억하고 숭배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이 지속되면서 차차 가톨릭 성인과 아프리카 신격은 한 몸이 되어갔다. 이들의 종교는 기독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프리카 종교도 아니다. 두 전통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종교 전통이 생성되었다. 그렇게 해서, 브라질에서는 깐동블레(Candomble), 쿠바에서는 산테리아(Santeria), 트리니다드에서는 샹고(Shango), 그리고 아이티에서는 부두(Voudoo, Vaudoo)가 발달하였다.

이들 전통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혼합은 가톨릭 성인과 아프리카의 신, 혹은 정령인 오리샤(Orisha)들이 결합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데에는 억압적인 상황 때문인 것도 있지만 두 전통의 특성도 작용하였다. 가톨릭은 민간 신앙을 잘 흡수하는 전통이다. 사실상 성인 숭배의 역사는 각 지역의 민간 신앙의 대상들을 성인이라는 체계로 흡수해온 역사이다. 서인도 제도의 혼합적 전통들도 그런 가톨릭의 특성과 무관치 않다. 다른 한편으로 아프리카 전통들도 외부의 요소를 받아들이는 데 개방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신을 쉽게 자기 신앙 체계 내의 신으로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하느님과 중개자 역할을 하는 성인들로 이루어진 가톨릭의 신앙과, 최고신(High God)을 정점으로 하위신(Orishas)들을 거느린 아프리카 신앙은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이 구조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성인과 오리샤의 상호교환과 동일화가 이루어졌다.

옛날에 이런 사례들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국내 자료는 아직 별로 없는 것 같다. 유일하게 도움이 된 자료는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 중의 <<부두교>>였다. 나머지는 부두교에 대한 터무니없는 정보들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라바토(Rabateau)의 <<노예들의 종교Slave Religion>>를 읽다가 다음 사례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서 옮겨놓는다. (pp.23-24)
성인과 오리샤가 겹쳐지는 것은 두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 하는 일이 비슷하거나, 생긴 게 비슷하거나. 조금만 비슷해도 연결되었다.
첫 번째는 신의 기능, 관장 영역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경우이다. 천둥과 번개로부터 보호해주는 성녀 바바라는 브라질에서 천둥 번개의 신 샹고와 동일시되었다. 바바라는 여자고 샹고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오른쪽 사진. 샹고와 바바라) 에슈-엘그바는 사악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브라질과 트리니다드에서 악마와 동일시된었다. 하지만 동일한 에슈-엘그바가 쿠바에서는 신의 전령, “길을 여는 자”의 역할 때문에 천국의 “열쇠지기” 성 베드로와 연결되었다. 한편 성서에서 토빗을 치료해준 성 라파엘은 산테리아 전통에서 치료의 신 오산인과 동일시되었다.
두 번째는 성인과 오리샤들의 도상적 특성이 비슷해서 동일시되는 경우이다. 가톨릭 미술에는 성인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물건을 통해 그 성인이 누군지를 분간한다. 그것을 지물(attribute)이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열쇠를 들고 있으면 베드로, 수레바퀴를 들고 있으면 카타리나, 이런 식으로 식별한다. 노예들은 성화에서 오리샤와 비슷한 특성이 발견되면 연결시켰다. 예를 들어 사냥의 신 오쇼시는 기독교 전통에서 칼을 든 전사로 묘사되는 성 조지나 성 미카엘과 동일시되었다. 쿠바에서 점술의 신 오룬밀라는 성 프란체스코라고 불렸는데, 프란체스코 그림에 있는 묵주가 아프리카 이파 점술에 사용되는 오펠레 사슬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티에서 무지개 신 담발라는 뱀으로 상징되는 신인데, 놋쇠 뱀의 기적 때문에 모세와 동일시되거나, 아일랜드에서 뱀을 쫓아내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성 패트릭과 동일시되었다. 물의 여신이자 신들의 어머니인 예모자는 성모 마리아와 겹쳐진다. 그밖에 오군(왼쪽 사진)은 세례자 요한과, 천연두의 신격인 쇼포나는 성 라자누스와 동일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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