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에서 발행한 <신학월보> 1903년 4월호에 평남 강서군 함종읍에서 김주련이라는 30년 된 천주교신자가 개신교로 개종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주련의 개종에서 가장 큰 관건은 금주 문제였다. 그는 사경회에 참석하여 금주 문제에 대해 치열한 문답을 주고받는다. 초기 기독교 금주 관련 자료 중에서도 애주가의 입장이 가장 잘 드러난 재미있는 문답이다. 6개의 문답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문: 아무리 술을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다.
답: 사소한 술도 못 끊는데 어떻게 더 큰일을 하겠는가.
(2)문: 술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다.
밥 안 먹으면 죽지만 술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또 죽는다 해도 죄 짓고 사는 것보다는 죄 없이 죽는 게 낫다.
1, 2번은 인간적 정서에 호소하는 동시에 현실적인 육체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질문의 반복을 통해 금주의 고통의 절실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대답은 처음부터 고답적이다. 특히 두 번째 잘못은 죄 짓고 사느니 죽으라는...
(3)문: 조금만 먹고 취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작은 죄가 큰 죄를 낳기 때문에 작은 죄부터 경계해야 한다.
(4)문: 바울이 디모데에게 물 먹지 말고 술을 조금씩 먹으라고 했는데, 나도 조금씩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이 내용은 디모데가 병이 난 경우에 해당한다. 당신이 술 마실 작정으로 성경을 오해하여 죄에 빠질 줄 알았다면,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3, 4번부터 핵심에 접근한다. 금주가 아니라 절주를 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성경에서 나타나는 술의 사용 사례를 통해 술 자체가 죄는 아님을 묻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의 기조는 윽박지름이다. 질문의 조심성과 대비된다.
(5)문: 술 먹는 것이 왜 죄입니까?
모든 죄의 근원이 술에서 나는 것이니 술을 곧 죄이다. 하느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하느님을 욕보이는 것이다.
(6)문: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왜 교회에서는 술 먹지 말라고 금지하는가?
술 먹으려는 심보로 성경을 보니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거다. 술 자체가 취하게 하는 물건 아니냐. 당신 양심에 물어 판단할 일이다.
마지막 질문을 통해 핵심을 찌른다. 성경에서 명령하는 것은 취하지 말라는 것이지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용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러한 온당한 이해에 대한 답변은 질문자의 의도성, 양심을 공격하는 것이다. 답변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경 기조이다.
신자는 결국 금주 명령에 승복한다. 사흘 뒤 교회에 금주 맹세문을 제출하고 신자가 된다. 그러나 교회의 금주에 대한 그의 반문은 오늘날 보아도 유효하게 느껴진다. 금주 문제에 관한 한, 사경회는 죄를 생성하는 의례적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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