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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만남

초기 한국 천주교 자료의 엑소시즘

by 방가房家 2023. 5. 30.

영화 <엑소시스트>를 보다가 이전에 메모해 둔 한국 자료들을 떠올렸다. 20세기초 천주교 자료에서 봐둔 귀신 쫓는 이야기였는데, 이번에 보니 자료의 구체적인 장면들이 영화의 엑소시즘 장면과 겹쳐지는 것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공식적인 엑소시즘의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진 ‘귀신과의 만남’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아래 자료에서 나온 축귀들이 교구에 제대로 보고되고 또 인가를 받아 행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해본다. 또한 아래 사례들에는 서구 엑소시즘의 전형을 닮은 부분과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개념이 혼재되어 있어서 주의 깊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평신도의 차원에서 이들은 엄연한 천주교 축귀로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1) 1906년 서울
보는 순간에 영화를 떠올렸던 자료이다. 자료의 묘사만 보아서는 머리가 정확히 어떻게 비뚤어졌다는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 영화처럼 목이 180도 돌아간 것을 묘사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성수에 귀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면도 주목할 만하며, 성호 긋기가 축귀의 주요 행위였음도 볼 수 있다.

신부가 성수를 뿌리자 여자가 사지를 떨며 땅에 쓰러졌습니다. “왜 내게 물을 뿌리시오?”
동시에 그의 목이 비틀어져 머리가 완전히 삐뚤어졌습니다. (그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옆집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거기서 그의 목이 반 치쯤 더 길어졌습니다.) 보기에도 흉할 정도로 그의 어깨에서 솟아나온 것 같았습니다. 교우들은 두려워서 모두 도망쳤습니다.  본인은 또다시 성수를 뿌렸습니다. 그 상태로 저녁 때까지 있던 그 여자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소리쳤습니다.  “신부님 앞에서는 원하는 것을 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미사 후 본인은 또다시 성호를 그으라고 독려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신기한 것은 이전에 한 일이나 이야기를 전연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영화 장면들


(2) 1935년 안성
이 자료에서도 성호, 성수 뿌리기가 축귀의 주요 행위이며, 언급되는 축귀 준비물이 주목할 만하다.

성호를 시킨즉 도무지 아니하려 하므로 억지로 한 번 시켰다. 그 이튿날은 성수, 고상, 공과를 가지고 가서 분도패를 채워주고 성수를 뿌린 즉 즉시 정신을 잃고 혼도 하였는데, 전도부인은 강경한 태도로 열품도문을 외운즉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담판해보자”고 소리를 지르고 일어나 섰다.  그 광경을 보고 다시 성수를 뿌리면 즉시 또 혼도하여 성수를 뿌릴 때마다 30분 가량씩 혼도하기를 10여 차례에 달하였다.
...그 후에 전교부인이 매일 가 방문하였는데, 그 집 근처에만 가면 벌써 알고 떨고 있다가 들어가면 하는 말이 “당신이 오면 내가 떨리고 견딜 수 없으니 제발 무엇을 줄테니 가라”고 하면서 울고 앉았다.  책을 읽히면 ‘마귀’, ‘사탄’ 그런 말은 읽지 아니하고 다른 말로 하였다...

 

(3) 1935년 안성
경문 읽기가 주요 행위로 언급된다.

“마귀야 물러가거라”하면 “왜 나가라고 하느냐”하며 성화를 댈 뿐만아니라 경문을 외우게 하여 미가엘 천신께 드리는 경문의 “마귀의 악함과...”이것은 도무지 외우려 아니하므로 고상을 들고 엄포하면 ‘마귀’라고 하지 아니하고 ‘아귀’라고 하며 ‘사탄’이라 아니하고 ‘사탕’이라하고 ‘지옥으로 쫓아 몰으소서’하는 것을 도무지 별스럽게 달리 하여 마귀에게 대한 경문이면 일절 외우지 아니하려하며 ‘마귀야 물러가라’하면 도로 그와 반대로 ‘마귀야 물러가지 마라’하였다...


(4) 1935년, 경기도 양평
이 자료에는 전통적인 귀신 개념이 겹쳐 있다. 전통에 익숙한 이 귀신은 떡 두 시루만 주어 달래어주면 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천주교 방식을 당해 그냥 하릴없이 쫓겨나고 만다. 쫓아낸 측에서도 이것이 마귀인지 확신이 안 서는 상황.

“성교(聖敎)도 일없다. 예수 마리아도 일없다. 떡 두 시루만 하면 단박에 낫는다.” 이런 미신의 말만 하고 있으며 그와 같이 할 때에는 자기가 자기를 때리기도 하고 아주 보기에 참혹한 상태에 빠져 상기가 되며 몸 이끌고 대중할 수 없는 박맥으로 물을 찾는데, 그런 때에 만일 성수를 주면 아무리 모르게 준 것이라도 즉시 입을 다물고 입술에 묻은 것까지라도 다 뱉어버리므로 더욱 이상한 중에...
본당 신부께서는 어쩔수 없이 병자를 성당 구내로 인도하고 교우들과 한가지로 열심히 기구한 결과 종국에는 병이 낫게 되었다...  병이 나을 때에는, “애고 원통해라!  모든 이가 다 나를 반대하니, 나는 간다.” 한 후로는 병이 그쳤다 하니, 병이 나갔는지 마귀가 물러난 것인지 모르거니와 나은 것만은 사실이므로 온 집안이 한가지로 영세를 준비하는 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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