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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공부/기독교세계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by 방가房家 2023. 5. 27.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사람의 4%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이 수치는 주목할만하다. 4%가 뭐 그리 대수로운 숫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개종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토막 상식: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는? 인구 2억의 인도네시아이다.) 4%의 개종에 얽힌 사연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Robert Hefner, "Christian Conversion in Muslim Java," Conversion to Christianity)


사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라고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층위의 문화들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이 점을 잘 규명해 준 사람이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이다. “자바의 종교”라는 책에서 기어츠는, 인도네시아의 공식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힌두교와 자바의 민간 신앙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종교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잘 이야기해주었다(고 알고 있다).
기독교 개종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지역은 자바 섬 내륙의 고원지대인데, 자바섬의 문화적인 다양성이 개종의 배경이 된다. 자바섬 북쪽 해안 지역은 강력한 이슬람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기독교 개종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자바의 토착 전통(많은 부분은 힌두교의 영향이 남아 있다)을 유지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이슬람과 자바 전통을 복합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이슬람의 압력이 성글어서 그런지 이 쪽 지역에는 기독교 선교가 계속 시도되었는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1950년대부터 몇 가지 정치적 변화가 종교 문화에 변화를 야기한다.

1. 1950년대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민들이 5개의 공인된 종교, 즉,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 불교, 힌두교(힌두교는 1962년부터 목록에 추가되었다) 중 하나를 자신의 종교로 가질 것을 의무화하였다. 정부에서 몇 개만 “종교”라고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식한 짓거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이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다. 1915년에 제정된 “포교규칙”이 그것이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만을 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가짜 종교인 “유사 종교”라고 부르며 종교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는 바람에 천도교, 보천교 등 상당한 교세를 갖고 있던 신종교들이 수난을 당했다.
자바 내륙의 부족들은 자신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여기서 그들이 딜레마에 빠진다. 이슬람을 택하면 좋을 텐데 그게 간단치 않았다. 일단 이슬람을 택하면 그들이 전통으로 갖고 있던 부분들이 우상숭배라는 이름으로 정죄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자행하는 “나쁜 무슬림”으로 찍히게 될 것이다.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힌두교나 기독교를 택하는 것이 대안이었다. 나쁜 무슬림이 되느니 차라리 이교도가 되어 자바 전통을 지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바 문화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 1965년 한 좌익 단체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 배후로 공산당을 지목하고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정부 편인 무슬림 청년 단체들이 이 마을 저 마을 몰려다니며 공산당원들을 잡아 죽이는 대규모 유혈극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마을의 부유한 집 자제 중에 공산당원이 꽤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 완전히 세력을 잃고 만다. 쿠데타 이후, 기독교인과 힌두교인이 대폭 증가하였다고 한다. 1960년대에 인도네시아 기독교인의 첫 세대가 형성되는데, 조사결과 이 기독교인의 4분의 3 정도가 가족에 공산당원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공산당원 족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공산당이 완전히 웬수가 되어버린데 반해서, 이 곳에서는 공산당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도피해 버린다. 이슬람과 철천지 웬수가 되어버려 자신의 정체성을 차마 이슬람으로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기독교 개종에 깔린 사회 정치적 배경은 대충 이러하다. 정치적 이유만으로 개종을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치적 배경은 개종을 설명하는 필수적인 요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 선교는 그 이전부터 계속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전에는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기독교가 서구 제국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 제국주의와의 연결성은 희미해 졌고, 급기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독교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기독교 선교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클릭해서 아래 지도를 보았을 때, 자바 동부의 Malang 동쪽, Probolinggo 남쪽의 고원지대가 이 이야기의 주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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