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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음악

Kumbaya

by 방가房家 2023. 5. 21.

어린이 방송을 틀어놓고 있는데(요즘 조카 봐주는 시간이 많다. --), “쿰바야”라는 노래가 나온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영가(spiritual)가 어째서 한국의 어린이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뒤져보던 중에, 흑인 영가-찬송가-동요, 이 세 영역 간에 통하는 부분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영가와 동요라는 동떨어져 보이는 영역을 통하게 하는 것은 구전(口傳)이라는 특성이리라. 예를 들어, <<어린이를 위한 바이블 송 베스트 100>>이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어린이를 위한 간단한 영어 노래들인데 적지 않은 수의 영가들이 눈에 띈다. ("Wade In the Water," "Go Down Moses," "Oh Happy Day," "Down By the Riverside," "Michael Row the Boat Ashore," "Deep River" 등.)


“쿰바야”(Kum ba yah)는 무슨 뜻일까?
이 말은 "Come by here"((주여) 내 곁에 임하소서)의 변형이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교회 게시판에서 찾은 글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옛날에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신대륙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너무 삶이
힘들어서 주님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캄 바이 히어! 마이 로드!(Come by
here, My Lord!, 이곳에 오소서! 내 주여!)" 그런데 노예였던 그들의 언어 능력
이 부족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 그래서 그 발음이 "쿰바야 마이 로
드"로 변하면서 그 노래가 대표적인 흑인 영가가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면
서 흑인 노예들은 주님의 오심과 해방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설명인데, “그들의 언어 능력이 부족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부분은 좀 부정확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영어 웹 문서 “What does "kumbaya" mean?”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저자 세실은 이 노래가 미국 남부 조지아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해안 지역에 살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인 걸러(Gullah)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곳 사람들은 서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동부 해안이나 섬 지역의 농장에 끌려와서 노동하던 이들로, 그들이 사용한 걸러 언어는 영어(그냥 영어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 여러 유럽인들의 언어가 혼성이 된)를 기반으로 서아프리카의 여러 언어들이 결합된 크리올 언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크리올 언어에는 여러 언어의 요소를 조합하는 문화적 창조력이 나타난다고 본다. 종교학에 ‘syncretism’이 있다면 언어학에는 ‘creolization'!)

“쿰바야”는 "Come by here"가 걸러 언어의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16-8세기부터 미국 남동부 해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의해 구전되며 불린 노래일 것이다. 19세기 이후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된 후에 적지 않은 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하려 조상들의 땅 서아프리카에 간다. 거기서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쿰바야” 노래를 전했을 것이다. 그렇게 전해진 노래가 (미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192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재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어떤 책에서는 이 노래가 앙골라에서 온 것이라고 기록되기도 한다.) 아프리카로 건너갔던 노래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1960년대 밥 딜런과 같은 미국 운동권 가수들의 민요 부흥 운동을 통해, 특히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특히 이 노래는 보이스카웃, YMCA 등의 캠프파이어 노래로 사랑 받게 된다.

길고 긴 쿰바야의 여행을 정리해보자.
미국 남동부 해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걸러 언어에 의해 노래가 불려짐
--> 19세기 서아프리카에 간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노래가 가르쳐짐
--> 1920년대 앙골라에서 이 노래가 채록되어 세계에 알려짐
--> 1960년대 미국 포크 가수 음반에 취입되어 유행
-->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는 확인 못했으나) 1970년대 서유석이 이 노래를 불렀다.
--> 영어 교육과 복음 전달의 두 효과를 노린 음반기획자와 방송제작자에 의해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전달됨.

구전된 노래는 동요와도 친연성을 갖지만 운동권 노래로서도 친연성을 갖는다. 고난에 처한 상황에 있는 민중들에게 하느님이 오실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저항의 메시지를 실어나르기도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 불릴 때도 그러했으며, 최근에 홍순관이 부른 쿰바야는 그런 맥락을 잘 살리고 있어 듣기에 좋다.
나는 이 노래를 세계에 알린 조안 바에즈의 노래로 듣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지금 듣는 노래는 바에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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