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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도심포교당 학술행사

by 방가房家 2023. 5. 19.

(2004.5.21)

한마음 선원은 지하철 1호선 관악 역에서 내려 서울 방향을 보면 눈에 들어오는, 큼지막한 건물을 가진 초대형 사찰이다. 능인선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도심포교당이다. 오늘 그 곳에서 주최하는 국제 학술 행사에 다녀왔다. (http://home.hanmaum.org/conference/kor_main.asp) 그동안 꽤 많은 종교 연구 관련 행사에 다녀보았지만, 오늘처럼 으리으리한 행사는 첨 보았다. 우선, 국제 학술행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엄청난 수의 외국인 불교연구가들을 초빙하였다는 것. 내가 알기로 한명 한명의 외국 학자들을 불러들이는데 엄청난 초빙 비용이 들었다. 포스터와 팜플렛의 디자인이 다르다. 종이질도 끝내주고. 오천원에 굵직한 자료집 두 권을 주고, 깔끔한 쇼핑백에 넣어준다. 가는 곳마다 불자 도우미들이 인사하는 바람에 부담스러워 다니기가 힘들 정도이고, 콘퍼런스 홀의 의자며 책상들이 예술이다. 결정적으로 점심으로 최고급 채식 부페를 선생님들 사이에 꼽사리껴서 먹었는데, 미국에서 못먹었던 각종 나물과 버섯으로 만든 신기한 음식들을 배터지게 먹었다.

엄청난 재력이 느껴지는 행사였는데, 그게 그냥 돈을 쏟아붓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절이 돈을 투자하는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계적인 학자들 불러다가 극진히 대접하면 분명 남는 것이 있다. 하나 예를 들어 보자. 내가 들은 것 발표 중에 동국대에서 공부하시는 외국 스님이 이 선원 주지인 대행스님에 대해 발표한 것이 있었다. 제목이, “대행 스님의 ‘함이 없이 하는 도리’”이다. 이 행사 기간에서 대행스님을 다룬 논문이 두 세편 더 있다. 논문이 발표되고 석학들에 의해 논의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종교현상이 학계에서 존재하게 됨을 의미한다. 학자들의 인용 체계 안에 포함되는 것이 학문 세계 내에서의 현실성을 담보하게 된다.

그저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미국 학계에서 본 바에 따르면, 매우 드문 한국 기독교 전공자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한국 기독교하면 떠올릴 수 있는 사례는 두 가지이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통일교회. 순복음 교회는 세계 최대의 교회를 소유한 탓에 한국 기독교 성장의 상징처럼 되어 알려진 사례가 되었고, 통일교회는 미국 선교와 미국 내에서 일으킨 몇몇 사건으로 인해 알려졌다. 몇몇 논문에서 이들 교회를 다루었고, 한국 기독교를 언급할 때면 이들 논문을 인용하기 때문에, 이 두 사례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현실과 외국 학계에서 형성된 이미지 사이에는 거리가 생기게 되지만, 이 거리를 알아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 불교를 언급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대 한국 불교를 말하고자 할 때, 인용할 수 있는 전거로서 한마음 선원이 주어져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논문으로 언급되지 않은 다른 많은 한국 불교의 현상들을 제치고.

학계에 자신을 알리고, 영어 인용 체계 안에 자신을 등장시키는 것, 그것은 학문 세계 안에 존재하는 현실로 자신을 빚어내는 것이고,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가 되는 것이다. 한마음 선원이 자신의 이미지를 과대포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마음 선원은 자신의 독특한 위상에 걸맞게 자신을 인지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고, 그것은 한국 불교계에서 보기 드문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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