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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의례와 더불어 보는 동학‘들’의 세계

by 방가房家 2023. 5. 17.

최근에 동학에 관련된 읽을 만한 책들이 부쩍 늘었다. 우선 사회적으로 동학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 김용옥의 <<도올심득 동경대전1>>(통나무, 2004)이 있고, 김용옥에 의해 소개된 표영삼의 꼼꼼한 역사 서술 <<동학 1, 2>>(통나무, 2004, 2005)가 있다. 김용휘의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책세상, 2007)도 깔끔하게 정련된 논의를 담고 있다.

많은 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괜찮은 연구자들이 신구의 조화를 이루며 성과를 내고 있는 이 영역에 종교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최종성의 <<동학의 테오프락시>>(민속원, 2009). 사실 2000년대 중반의 동학 사상에 대한 관심이 일기 이전만 해도 동학은 ‘종교사상’보다는 ‘혁명’으로서 관심을 받았다. 한때 동학이라는 종교적 명칭보다는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사회운동으로서의 명칭이 선호되기도 했고. 이제 최근의 저서들을 통해서 본래 종교사상으로서의 힘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관심이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면, <<동학의 테오프락시>>를 통해서는 사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종교 본연의 모습을 그려내는 쪽으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기존의 연구들과 차별화된 방향성 세 가지를 제시한다. 그 내용은 책에서 반복해서 잘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하게 나열한다. 

(1)기존 연구들은 교조 수운의 종교체험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못난 후계자’들이 현대 사회에 적응하며 종단을 어떻게 꾸려왔는가를 알아야 현재 종교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법. 이 책에서는 ‘후기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수운의 가르침이 전승된 다양한 양상을 살핀다. 
(2)기존 연구는 동학 ‘사상’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종교를 ‘교리+의례+공동체’로 파악하는 종교학의 기본적인 태도에 충실하게 의례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책 제목에 있는 ‘테오프락시’는 신학(테오theo+로지logy)에 의례적 실천(프락시praxy)를 결합해 만든 저자의 신조어이다. 나는 책 제목에 자신의 영어 신조어를 사용한 것은 만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례를 강조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는 십분 공감한다. 
(3)기존 연구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천도교와 관련을 갖는 분들이었고 ‘동학=천도교’라는 대전제 하에 작업을 해왔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의 가장 차별화되는 견해가 제시된다. 이 책은 천도교 외에도 상제교, 동학교, 수운교를 수운의 가르침을 계승한 다양한 형태들로 제시한다. 이들은 각자 다른 도통과 해석을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전승들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동학계 신종교’라는 범주로 묶여 구석에 무의미하게 나열되던 이들 종단들은 이 책에서 동학의 역사를 계승하는 흐름 안에서 생기를 찾고 있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우리는 동학‘’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학문에서 종교학의 위치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이 있다. 종교학의 장점이라면 동서고금의 여러 전통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단일한 전통 연구에 비해 탁월한 시야를 갖고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인데, 나는 그런 시야를 바탕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훈수’나 두는 것으로 종교학이 소임을 다한다는 의견에는 반대다. 기존 연구자와 다른 입장을 가진다면 꼼꼼한 자료 검토를 바탕으로 한 튼실한 연구를 통해서 발언해야 한다. 훈수나 두는 편한 종교학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역사학, 민속학, 신학, 지역학 등 인접한 분야에 공헌할 수 있는 질을 갖춘 연구를 생산하는 것이 종교학이 살아남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 들어 주목할 만한 한국종교학의 성과를 꼽으라면 나는 박규태의 <<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제이엔씨, 2005)을 들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 책 <<동학의 테오프락시>>를 추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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