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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by 방가房家 2023. 5. 15.

미국에서 노예제를 놓고 벌어진 교회내의 논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교회가 성서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제는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 뉴 멕시코 대학에서 이 문제를 전공한 학자의 책이 나와 있다. [두 얼굴을가진 하나님] (김형인 지음, 살림, 2003). 얇고 쉽게 쓰여진 책이지만 담고 있는 정보는 유용하다. 노예제 찬반을 놓고 미국 종교인들이 어떤 구절을 동원하고 어떤 논리를 구사하였는지를 잘 정리해주고 있고, 아울러 미국 노예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도 요약되어 있다. 게다가 이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답게 노예제와 관련된 학술적 논쟁들을 이야기 중간 중간에 소개해준다. 논쟁 소개가 어떤 독자들에게는 좀 짜증날 수도 있지만(‘그래서 뭐가 맞다는 거야?’라는 식으로) 기본적으로 정직한 글쓰기이고 공부한 것을 베푸는 일이다. 새로 알게 된 논의들이 많았다.

이 책의 결론 부분은 아쉽다. 역사학자라서 그런지 사실 정리로 글을 맺었는데,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이야기하며 좀더 근사하게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제시해주는 것도 좋다. 이 블로그 어딘가에 달린 답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여성 목사 안수 문제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부분에서 모교단에서 거부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분명 19세기 미국에서 태어났다며 노예제도를 지지했을 겁니다.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이다. 노예제도 논쟁은 오늘날 교회 내에서의 쟁점들, 예컨대 여성 성직자 문제라든지 동성애 문제와 같은 이슈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서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찬성하는 사람에게도 모두 전거가 된 텍스트였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같은 이유에서 노예제가 옹호되기도 반대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내의 여성해방론자도 성서를 통해 주장하고 반대론자도 성서를 통해 주장한다.
그렇다면 성서는 ‘똑같이’ 이쪽 편도 들어주고 저쪽 편도 들어준다는 이야기인가? 내가 보기엔 똑같지 않다. (이 책에는 양편이 다 장단점이 있다는 공평한 결론을 내리기는 하지만) 책의 끝부분에 정리된 그 양상의 차이를 보자.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기독교 교회가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관용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흡족하리만큼 항변하지 못했다. 그들이 성서에서 노예해방을 위한 텍스트를 찬성론자만큼 풍부하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히려 개별적인 텍스트보다는 전체적인 컨텍스트나 기독교의 기본 정신에 호소하며 답을 구하려고 하였다…
한편, 노예제도 지지자들은 성서, 특히 구약에서 노예제도를 인정했던 사례들을 풍부히 끌어낼 수 있었다. (89-90)

성서는 고대 사회에 형성된 책이다. 종에게 관용을 베풀고 때로는 풀어주라는 이야기는 있어도 노예 제도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노예제 폐지라는 말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만약 성서 세부의 글자 하나하나를 따지면서 성서가 노예제에 대해 무슨 해답을 제시하냐고 묻는다면, 정녕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솔직히 내가 보기에 성서는 노예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유지하는 책이다. 기독교의 평등정신을 적용할 것을 호소하는 반대론자에게,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한 논박은 노예제 지지자들의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된 건가? 성서에 세상 문제에 대한 모든 답이 있고, 문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성서를 잘 읽는 건가?

교회내 여성 문제의 양상도 매우 유사하다. 고대 사회의 글인 성경에는 여성이 남성 아래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게 전제되어 있다.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평등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추상적이다. 어떻게 하는 게 평등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다. 반면에 성서에서 여자들은 입 닥치고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나 충실하라는 이야기는 술술 뽑아낼 수 있다. 성서에 모든 답이 있다며 여기저기 들춰내며 자기가 옳다는 보수주의자 앞에서 말이 막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이고 기본 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어디 먹히기나 하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성서 자구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일이 아니다. 성서를 대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수용자의 맥락에서 텍스트와 만나 산출되는 것이라는 독서에 대한 평범한 이론을 적용하는데서부터 제대로 된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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