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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신불(神佛) 애니미즘과 트랜스휴머니즘

by 방가房家 2023. 5. 14.

박규태, “‘신불(神佛) 애니미즘’과 트랜스휴머니즘: 가미(神)와 호토케(佛)의 유희”, <<일본비평>> 7 (2017).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기술 시대에도 종교적 이상이 살아있음을 이야기하는, 넓고 깊은 글. 트랜스휴머니즘 논의에서 시작하여 일본 종교사를 관통하는 개념을 논하고 다시 현대 일본의 로봇 산업까지 다룬다. 저자와 토론할 기회가 주어져 메모해둔 내용이다. 인상적인 문장들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정리해보았다.


 

1. 애니미즘

이 글에서는 여러 형태의 애니미즘이 등장한다.
 
(1) 애니미즘: 타일러가 정의한 대로 “만물에 내재하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다. 이 고전적 애니미즘은 종교학사에서 종교기원론이라는 원래 의도대로 통용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 낡은 개념이 일본 맥락에서는 강하게 살아있는 것은 독특한 현상이다. 저자는 애니미즘의 폐기에도 불구하고 “오직 일본에서만은 애니미즘이라는 개념이 일본문화의 독특성을 설명하거나 일본사회의 모델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일본인론, 일본교 논자에 의해 애니미즘의 다양한 버전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2) 네오-애니미즘: 최근 생태학계와 종교학계에서 애니미즘은 관계론적 인식론으로 주목받는다. 종교는 “세계 안에 함께 거주하는 퍼슨(person)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섭, 에티켓”으로 이해된다.
 
(3) 테크노-애니미즘: 최근 일본 연구자들이 과학 시대에 살아있는 애니미즘의 한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 “전체 우주 만물에 스피리추얼리티가 스며들어 있다는 일본의 애니미즘적 종교전통”이 기술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로봇 산업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지극히 애매해진 테크노-애니미즘적 특징”이 있다고 지적된다. 이 글의 분석 대상이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4) 신불-애니미즘: 저자가 고안한 개념. 내가 이해하기로 “신불-애니미즘”은 테크노-애니미즘을 가능케 하는 일본의 종교적 배경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도적 배경, 신도적 모티브를 가리키는 말일텐데, 저자는 일본 종교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였다.
 
 
2. 가미(神)와 호토케(佛)
신불-애니미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미와 호토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미(神), 호토케(佛)는 귀신, 부처로 번역할 수 없는 말인가? 같은 한자이기에 우리 개념으로 옮기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들여다볼수록 일본 개념의 독특성이 두드러진다. 저자는 상황에 따라 귀신/가미, 부처/호토케를 혼용한다고 했다.)
“일본이 애니미즘의 풍부한 유산을 찾아볼 수 있는 나라임은 분명해 보인다.”
 
(1) 가미: 가미의 독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애니미즘적 측면: “바위, 뿌리, 나무 그루터기, 풀과 이파리 등도 모두 가미가 될 수 있다.”
②신인동형론적 속성: 가미는 “사람 같은 인간적인 신”의 모습을 한다.
(내 생각에 네오-애니미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특징을 애니미즘에 연결하는 것은 어색하다. 인간 아닌 퍼슨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와는 다른 세계관이다. 그래서 북미원주민 종교 서술에서 신인동형론이라는 서구적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③변신의 유연성: 가미는 불교, 국가신도, 기독교 등 “새로운 사상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다. 
 
(2) 호토케: 붓다의 일본식 음역을 통해 생긴 말이다. 붓다에 대한 일본식 이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천태종의 ‘초목국토성불론’을 들 수 있다. 내 몸이 곧 진여(眞如)라는 주장으로 더 확장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데 이른다. “초목, 기와, 조약돌, 산하, 대지, 대해, 허공 등 모두가 진여이므로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저자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3) 가미와 호토케는 구별되기는 하지만 구분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일본에서 활동한 선교사(J. Hepburn)는 사전의 ‘God’ 항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God: 신도에서는 가미, 불교에서는 호토케”
저자는 “일본종교사에서 가미와 호토케의 융합이 신불이라는 하이브리드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일본 애니미즘의 서술이 ‘일본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히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글 말미에서 내셔널리즘 담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긴 하지만, 일본적 특수성에 함몰되지 않고 신불-애니미즘을 이해하는 길은 무엇인지 독자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3. 유희
일본의 로봇 산업에서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로봇 안의 불성>이라는 책을 쓴 로봇공학자가 한 말이다. “내가 만드는 기계와 로봇 안에도 불성이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기계를 조작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불성이 불성을 조작하는 것이다.”
일본이 서양과 다른 기술적 양상을 가진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인간 형태의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에 반해, “일본의 경우는 인공지능보다 인간형 로봇을 더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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